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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January, 2013
diez y seis de enero
밤 8시 53분, 달곰을 재우면서 깜깜한 방에 누워 시간때우기 포스팅
반데렐라? 9시가 되면 꿈나라로 귀소본능이 너무 강한 아기
덕분에 하루하루 밤시간이 여유롭다
오빠랑 소파에 늘어져 최신 영화나 드라마 다운 받아 보는 것 외에,
요즘 자유시간엔 주로 유명 육아블로그 구경을 한다
'육아'블로그라곤 하지만 전부 아기옷이나 장난감 얘기인 듯?
그래서 더 재미있는거라능 ㅋㅋㅋ
누군가 "유명 블로거의 아가를 보면서 왠지 내 아이가 초라하게 느껴지더라"고 하던데
정말정말 공감공감
장난감으로 가득찬 큰 집에 사는 비싼 옷을 입은 어여쁜 아가들...
요즘 내가 지른 -예전엔 듣도보도못한 브랜드의- 달곰옷 중 몇 벌 역시
이 블로그 저 블로그 떠다니다 이뻐서 찜한 것들이다
뱁새가 황새 한 번 따라해보는거지
쫒아가려고, 추월하려고 했다간 풍비박산 날 듯
제법 잘 나가는 육아블로거가 된 친구 A의 포스트만 봐도 놀랄 노 자
아, 난 절대 그녀 만큼 정보력 구매력 있는 엄마는 못 될거야
그냥 A가 흘리는 정보 부스러기나 주워먹기로;
여러 사람들이 나보고 블로그를 해보란다
심지어 오빠까지도..
콩깍지 쓴 부모맘으로 딸자랑 좀 하고 싶은가본데..
나? 블로그 하고 있는데?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역시 아무도 모르는구나
아무도 보지 않는 blogspot을 쓰길 잘 했어 ㅋㅋㅋ
예전에 네이년 블로그나 티스토리에서 잠시나마 활동한 적도 있지만..
지금 이 공간은 그냥 개인 일기장일 뿐이다
달곰이 나온 후론 아무래도 '내 일상 = 육아' 이기 때문에
의도치않게 육아일기로 진화해버린게 함정
검색어 지정도 안 해놓았고 구글링 외엔 달리 접근방법이 없으니
내 주변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긴 쉽지 않겠지
그래도 전체공개인데..
오빠한테는 말 할 걸 그랬나?
달곰 얼굴도 공개되고 그러니까?
근데 뭐 보는 사람도 없는데 ㅋ
내 꺼 꾸미고 이웃교류를 위해 이벤트 준비 할 시간에
난 그냥 부지런한 다른 럭셜 블로거들 구경다니며 눈호강이나 하자 ㅎ_ㅎ
25 January, 2012
veinte y cinco de enero
다음주 초진(la primera visita)을 대비해서 <pregnancy journal>을 시작하기로 했다
뭐든지 본격적으로 시작 -하지만 유종의 미는... 그게 뭐지?- 하는 나답게
앞으로 8개월 간 꾸준히 사용할 장비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산모수첩? 이라는 건 주는 것 같던데.. 여기서 받는다고 해도 스페인어로
쓰여 있는 수첩을 사용하기는 좀 귀찮을 듯)
꾸미는 것도 귀찮고 포맷이 정해져있는 것도 싫은 나는
그저 줄만 쫙쫙 쳐진 하드커버의 플레인 노트를 사서 내 맘대로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또 싸구려는 싫으니 딱히 생각나는 게 moleskine 밖에 없네
그리고 희귀한 브랜드로 골라봐야 마드리드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어 -_-
진작부터 써보고 싶었던 것은 moleskine에서 나오는 baby journal
근데 막상 매장에 가서 보니 '임신' 섹션이 너무 작아 지금 실컷 쓰기엔 갑갑해보인다
그리고 2돌이 될 때 까지 쓸 수 있다는데,
대체 한 가지 수첩을 3년 씩 쓰는 사람이 어딨냐 0_0
그래서 그냥 뒤지고 뒤져서 빨간색 하드커버의 ruled note를 찾아냈다
그나마도 중간 사이즈는 없고 라지 뿐이라서 ㅠ.ㅠ 만화책 만한 걸 사왔다능
어쨌거나 수첩 쇼핑은 즐거웠지만.. 사자마자 흥미가 떨어져 대충 소파에 던져놨더니
오빠가 꺼내보고 "어 정말 몰스킨으로 샀네? 여기서도 파나보지?" 라고 하다가
가격표를 보고 얼굴이 굳어진다 ㅋㅋㅋ
미국에서 8-9불이면 살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16유로 ㅋㅋㅋ
비싸게 샀으니까 안 쓰면 눈치 보일 것 같아서 드디어 오늘 비닐 뜯고 개시!
줄 간격은 아주 좁지 않아서 쓸만하지만
역시 몰스킨은 가격 대비 명성 대비 종이가 안습이다 - 얇고 눅눅해
뒷장까지 글씨 자국이 눌리기 때문에 뒷면은 포기하고 앞면만 사용하도록 합니다
당장은 쓸 게 별로 없어서 우선 임신/출산 관련 단어를 영어-한국어-스페인어로 정리해보았다
앞면만 쓴다고 해도 페이지가 워낙 많은데,
앞으로는 적을 거리가 더 늘어나겠지? 늘어나야 한다 ㄷㄷㄷ
15 January, 2012
quince de enero
"Having a baby is like having a tattoo on your face"
<eat pray love>에 나오는 명대사
그래, 나는 드디어 두 개의 지울 수 없는 문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 하나는 지울 수도 있고 지워질 수도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렇게 될 리가 있나 ;)
어플에서 일러주는 생리예정일은 어제(14일)
배가 아프긴 한데 허리가 묵직하거나 밑이 빠질 것 같은 PMS 다운 증상이 아니라
배꼽 좌.우.밑이 땡기는, 살갗 밑의 근육을 꼬고 또 꼬는 듯한 근육통이었다
그 외에 다른 증상은 완전 無
아니다, 화장실이 좀 자주 -2시간에 한 번씩?- 가고 싶긴 하다
그래서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꽉 찬 방광을 끌어안고 일회용 컵 하나 들고 화장실 행
목욕재계는 못해도 눈곱은 떼고 하자는 생각에 우선 세수부터 했다
컵에 소변을 받으며 생리가 시작하진 않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
클리어-
좋아 그럼 임테기를 뜯어볼까
소변에 담그고 5초를 기다리니 모래시계가 돈다
내가 사용한 임테기는 clearblue digital
돌고 도는 모래시계를 곁눈질하며 얼굴에 세럼을 바르는데 손가락이 발발 떨렸다
너무 떨려서 parsley seed serum의 스포이드를 병 입구에 제대로 넣을 수가 없었다
나란 사람도 이렇게 떠는구나..
싶다가 표시창에 "embarazada"라고 뜨는 순간 훗!
그럼 그렇지, 나도 한방이다!!!
뚱뚱한(;) 임테기를 다시 박스에 넣고 방으로 돌아가
의기양양하게 오빠에게 내밀었다
어? 오늘 테스트 해볼라구? 내가 뜯어줄게
읭??
이미 뜯은거야?
벌써 한거야?
이거 뭐라고 써있는거야?
이거 뭐라고 써있는거야..
이거 뭐라고 써있는거야..
이거 뭐라고 써있는거야..
왜 읽지를 못하니
왜 까막눈이라 읽지를 못하니
서로 얼싸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따위의 풍경은 펼쳐지지 않았다
낯선 단어 하나가 내 인생을, 내 생활을 바꿔버렸다
어제부터 계속되는 똑같은 복부 통증이라도 오늘은 유난히 신경이 쓰이고
요근래 저녁 나절부터 졸려도 참았었지만 오늘은 낮잠을 푹 잤다
sanitas.es에 들어가 2월 1일에 초진 예약을 해두고
이번 주 중에 한 번 더 테스트를 해본 다음 부모님들께 말씀드리기로 했다
heart-beat를 듣고 나서 알려드리고 싶지만, 혹시 잘못 되더라도 그것도 아셔야 하니까
(당장 몇가지 조언을 얻기 위해서 임신 6개월의 J양에게만 알렸음)
애기씨(앗)의 태명은 고민할 것도 없이 달콤이다, 반달콤
사실 '달곰'이 맞는데 너무 시골스러운데다가 남성성이 강해서 약간 변형했다;
31 December, 2011
treinta y uno de diciembre
2011년의 마지막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떤 커플? 부부?가 다가오더니 나를 향해 누렇고 커다란 무언가를 던졌다
덥석 받고 보니 거대하고 구멍이 숭숭 난 벌집이 아닌가
얼른 다른 사람에게 토스-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고
다급한 마음에 바둥 대다가 벌집에서 벌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청자켓을 위로 올려 얼굴을 감싸고 도망을 쳤지만 등짝에 벌침을 실컷 맞고 말았다
소동이 가라앉고 누군가가 이 벌은 "XX X벌 Ⅱ"라는 종이라고 설명해줬다
새까맣고 허리가 잘록한, 땅벌처럼 무섭고 독하게 생긴 놈이었다
온갖 개꿈을 쉬지 않고 꾸는 편이지만 벌꿈은 처음인데
스펙터클한 만큼 2012년에 엄청나게 좋은 일을 가져다 주는 벌떼가 되었으면 좋겠다
19 December, 2011
diez y nueve de diciembre
우습게 되어 버렸다
반신반의 했던 정도였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무려 3일이나 빨리 터져버리면 0_0;;
꼭 흑룡띠를 득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첫 달 째니까 실망이 그리 큰 건 아니지만
절친 J도, 회사 친구 J언니도, dolphin도, SB언니도 마음 먹은 달에 정말 '한방'으로 다 생겼다는데
심지어 A는 계획하지도 않은 혼전임신!!!
근데 왜 나만 '한방'에 안 되냐는 그런 종류의 자괴감이 든다
이젠 신경 쓸 것도 없으니 마음 놓고 진통제를 먹었다
18 December, 2011
diez y ocho de diciembre
정말이지 일반적인 스페인 음식이란,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그냥 보면 투박하며 데코에 있어서는 심하게 야박하다
물론 미슐랭의 별이 빛나는 곳에 가면 과일 퓨레로 구슬을 만들고 그레이비로 그림을 그리겠지만..
옆집 O 패밀리와 함께 principe pio에 있는 스페인 판 영양센터에 다녀왔다
그야말로 아스뚜리아스식 전기구이 통닭집, casa mingo 라고 한다
투박한 접시에 반 가른 통닭, 양철 도시락에 드레싱도 없는 샐러드, 이 나간 접시에 염소젖 치즈
물론 스페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존트 못생긴 딱딱한 빵까지
이 집은 통닭과 함께 sidra가 유명한 바, 그것도 한 병 시켰는데 술잔을 주지 않는 거다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에 놓여 있던 자판기 종이컵 만한 물잔에 따라 마신다;;;
(하지만 콜라에는 커다란 얼음잔이 따라 오더라능)
여튼 생김새는 못나도 초크초크한 닭국물에 queso de cabra를 적셔 먹는 맛은 꽤 괜찮았다
그리고 sidra 하니까 말인데,
영국에서 지낼 때는 정말 cider를 싫어했었는데 여기 와서는 쏠쏠히 마시는 편이다
다만 오빠는 시고 달고 밋밋하다며 정말 싫어함
casa mingo 가는 길에 왠일로!? T군(30개월)이 오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었다
그 모습이 예뻐 사진으로 담아와 들여다보니 오빠도 꽤나 아빠 태가 난다
평생 자기 자신 밖에 모를 것 같았는데 이젠 아기를 안고 다니는 것도 잘 어울릴 듯 ㅋㅋ
어쩔 수 없이 인간에게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이 있나 보다
05 December, 2011
cinco de diciembre
i 며칠 연달아서 바쁘게 돌아다녔더니 몸살이 나다니
운동량이 부족했던 건지, 느긋한 생활에 너무 깊게 젖어있었는지, 그냥 기후가 맞지 않는지
덕분에 주말을 끼고 몸을 눕히고 <뿌나>를 몰아보며 지내고 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나에게는 버거운 드라마이다
꺽쇠라고 믿고 4화를 연달아 봤는데 그 인물이 꺽쇠가 아니었다던가;
ii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망설이던 iphone 4s 주문을 했다
orange online shop에 오더를 넣었는데.. 가입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외국인이 가입을 하려면 3개월치 계좌내역서 따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막상 온라인 오더에서는 그런 서류를 제출하는 절차가 없었다
영 마음에 걸려 다시 웹사이트에 들어가 주문 내역을 보려고 하니 그런 메뉴가 없다 -_-
하아.. 정말 스페인 애들 답다
500유로에 가까운 비싼 물건을 이 따위로 팔다니
iii 폭풍같던 학기가 막바지로 접어들고 드디어 오빠가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소파에 늘어져서 하루종일 뿌쟁이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연초까지 만이라도 이렇게 한가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질 수 있다면
iv 커다란 니트에 꽂혔다
엉덩이를 살짝 덮는 길이로 가오리 소매도 좋고 판초도 좋고
너무 두꺼운 털실로 짜인 건 싫고, 하늘하늘하게 살짝 늘어지는 정도의 톡톡한 니트웨어
물론 '커다랗다'고 했지 - 몸에 붙는 게 아니라 펑퍼짐 해야 한다
여긴 다행히 추위가 혹독하지 않아서 이너만 든든하게 입으면 초겨울까지도 괜찮다
플랫 라이딩 부츠에 스키니진이나 제깅스, 펑퍼짐한 니트에 머플러의 조합이 좋다
28 November, 2011
veinte y ocho de noviembre
와 나의 단기집착증이란 ㄷㄷㄷ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24시간 동안 <danger days>를 적어도 36번은 돌린 것 같다
이제 좋아하는 넘버는 가사도 거의 다 외웠다
(욕 나오게 복잡하긴 한데 요 며칠 영어가 한창 물 올라서 조사 하나까지 따라 부른다 ㅋㅋ)
어처구니 없는 가사를 들여다보며...
어처구니 없다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오늘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연락이 닿은 no군에 대한 믿기지도 않지만 믿고 싶지도 않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고딩 시절 교실에서 (S양과 나만의 은어로) #2를 저질렀다는 거다
동기는 선생에 대한 복수?!?
선생보고 뭘 어쩌라고??
특이한 부분이 1mm²도 없는 그런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이상하고 변태스럽다고 말하기 이전에 도저히 이게 사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나름 나의 학창시절에 나쁘지 않은 추억을 선사해준 친구인데
의무교육을 다 받고 자란 정상 지능의 16세 남자 사람이 교실에서 #2라니
누구더러 믿으라고 만들어진 루머란 말이야?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해명을 들을 수 있을까
기껏 이제야 연락이 닿았는데 괜한 소리 했다가 친구 짤리는 거 아닌가 몰라
19 November, 2011
diez y nueve de noviembre
또 다시 지독한 목감기가 찾아왔다
바보라 감기는 잘 안 걸리는데 스페인에 오고 나서 벌써 두번째
코감기 종합감기 몸살감기 약은 약국 마냥 다양한데 목감기 약은 따로 구비해놓은 게 없다
이 나라는 기본적으로 약값이 비싼데다가 OTC는 효능이 약하기 때문에
급히 약국에서 사다 먹는 건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새벽에 깨서 시커먼 죽염으로 가글을 했는데도 좀처럼 나아지는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스페인 산이 아닌) 다른 나라 와인을 좀 사려고 lavinia에 가기로 한 날이다
아침부터 재빨리 카레를 만들어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오빠와 함께 mall에 나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hakei나 massimo dutti에도 들러 볼 겸
(교복처럼 입던 라이더스가 찢어져서 당장 아우터가 급하다)
곱게 곱게 화장을 하고 나섰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었나, 도착하자마자 대판 싸우고 그 길로 돌아와버렸다
싸우게 된 이유가 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래 오래 기다려왔던 간만의 '함께 외출'인데 완전 망쳐버렸다
매일 매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장 보러 다니고 점심 약속이 잦다고 해서 마냥 즐겁진 않다
오빠는 -아무리 공부 할 게 많아 바빠서 미치겠다고 해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오빠처럼 할 일이 많아 바쁜 게 좋겠다
일주일 내내 놀 시간 없어도 상관 없다
어차피 지금은 시간이 남아돌아도 놀지 못 하는 걸
매일 어두컴컴한 집에 앉아서 오빠를 기다리고 함께 집에 있을 때에도 늘 홀로 거실에 앉아
혼자 책을 보고 혼자 맥주를 마시고 혼자 컴퓨터를 하고
불규칙한 귀가 시간에 맞춰 매일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혼자 장을 봐서 혼자 무거운 생수까지 이고 나른다
혼자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묶고
늘 혼자 있는 기분이 지속되고 외로움에 사무쳐 이런 데다가 하소연 할 뿐이다
메아리조차 치지 않는 혼자 만의 세상에서 말이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단란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가족들을 보면 부럽다
옆 집 D씨 네가 부럽다
부부가 매일 같이 외출을 하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나는 투개월이 넘도록 마드리드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아직 cochinillo asado도 못 먹어봤다
나만 먼저 맛보기 미안해서 오빠를 기다리느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언제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
하루종일 쇼핑하려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두 시간 같이 보내는 것 만으로도 들떴었는데,
40분 만에 돌아와 검은 눈물 범벅이 되어 이불 속에 처박히니 너.무.서.럽.다
달리 갈 데가 없어 보기 싫은 사람이랑 한지붕에 있는 것도 서럽다
14 November, 2011
catorce de noviembre
요즘 즐겨보는 네이년 웹툰 중에 <패션왕>이라는 병맛 만화가 있는데
최근 4주에 걸쳐 연재한 특집편에서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다
(특집편의) 주인공 곽은진은 (실제) 주인공인 우기명을 짝사랑하는 평범한 여고생
좀처럼 우기명에게 접근 할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요즘 아이들답게 카톡으로 메세지를 보낸다
"뭐해?"
이런 거
놀랍게도 우기명에게서 답장이 온다
"걍 있지ㅋ"
답장은 받은 곽은진은 심장이 터져나가는 기쁨에 눈에서 자꾸만 땀을 흘리고
그 이후로 수시로 -또는 매일 매일- 우기명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뭐해?"
"뭐하삼?"
"우기 모해?"
"모행?"
처음 한 두번 간단하고 짧은 -사실 성의와 관심이 담기지 않은- 답장을 날려주던 우기명에게선
더이상 연락이 없고 카톡 대화창에는 곽은진이 보내는 노란 말풍선만 줄줄이 남았다
곽은진과 같은 기분, 누구나 한번쯤 느꼈을 법 하다
전화벨도 푸시도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불쌍한 영혼의 모습
<bridget jones's diary>에서 jude가 그랬다
전화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몰려 있기 때문에 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잠시 정신을 딴 데로 돌리면 그 사이에 분명 새로운 연락이 와 있을 것이라고
이 소설에 맹목적인 사랑을 쏟는 나는 이 말 역시 맹목적으로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관심을 쏟지 않으려고 해도' 요즘 나의 페북 푸시 리스트에는 새로울 게 없다
늘 리플을 달고 반응을 하는 사람들 몇몇 뿐, 새로운 사람의 소식은 없다
그저 새로우면 왠지 반가울 것 같다
곽은진처럼 사랑에 빠진 소녀도 아니면서 그냥 막연히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
몇 년 간 너무 평화로운 삶이 계속 되어서 지루하단 말이다
20대 초반의 매일 밤을 함께하며 리플 놀이를 하던 깐돌이 친구들 같은 이가 쨔쟌! 하고 나타나서
나를 마구 마구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다
가볍고 재미난 사람이 아니라 진지한 몽상가라도 좋다
소재가 고갈된 나의 대화 풀(pool)을 넓혀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 육아, 어린이집, 그릇, 야근, 돈이 배제된 이야깃거리를 가진 이라면 누구든 좋다
대화에 목 마르고 솟아나는 감성을 주체할 수 없는 내가 이 공간에 매달리는 게 당연하다
내 마음대로 타이핑 할 수 없는 이 곳 마저 없으면
나는 언제, 어디에 내면을 토해낼 수 있을까
지칠 줄 모르는 '쓰기 본능'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차라리 cyworld 미니홈피에서 일기를 쓰던 때가 좋았다
내 일기를 매일 매일 보러 오는 팬들도 있었는데...
11 November, 2011
once de noviembre
거실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밤하늘이 숨 막힐 듯 아름답다
빠르게 지나가는 길다란 바게뜨 모양의 구름에 가려있던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자
순간 하늘이 환해지고 겹치고 겹친 구름의 입체적인 구조가 드러났다
달빛이 비치는 곳의 밝은 구름과 그림자 진 어두운 부분이 연속적으로 이루어내는
입체감이 대단하다
하늘이 얼마나 높고 넓게 펼쳐져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원근감은 마치, cirque du soleil의 <O>가 보여주는 무대의 깊이만큼 신비롭다
구름이 tony sly의 'stunt double'에 발 맞춰 달린다
글을 쓰는 지금도 구름의 사이 사이로 달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급히 사진을 찍었지만 똑딱이로 이 밤하늘의 광활함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 리 만무하고
이 우주가 느껴지는 순간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다
한국을 떠나 사는 삶은 외롭지만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넓은 하늘의 모습을 실컷 볼 수 있다는 점에 위로를 받는다
오늘의 밤하늘은 웅장해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에
이보다 더 밝을 수 없는 보름달이 하늘 한가운데 떠올라
내가 있는 곳은 그저 하늘 아래 작은 점일 뿐이라고
저 달을 함께 보고 있다면 한 하늘 아래 있는 것이라고
잊고 있던 기쁜 사실을 확인해주는 고마운 하늘이야
또한 나만 홀로 너무 멀리 있다고 알려주는 무서운 하늘이야
지금 당신도 tony sly를 듣고 있다면 좋을텐데
... 라고 누구에게 적어 보내면 좋을까
심지어 함께 달을 볼 수 없는 시간대에 있을 지도 모르는, 있지도 않은 사람
요즘 나를 지배하는 대부분의 감정은 외로움이다
아무도 초록불이 켜지지 않은 페북의 첫 페이지를 멍하니 들여다보는 외로움이다
한 지붕 아래라도 두꺼운 문으로 가른 두 개의 공간에 따로 있을 뿐인 외로움이다
사실 나는 감성적이고 때론 나약하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외로움이다
사람이 그리워서 관심을 보였을 뿐인데 집착이라고 오해 받은 외로움이다
달리는 삶에 지쳐 힘들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느긋히 공상하는 외로움이다
아직은 조금 남아있는 희망에 즐거워하는 tony sly의 모습이
이제 전부 망가져서 "it ends like this"라고 읖조리는 joey cape로 변하는 것과 같다
이 남자는 어찌 이렇게 구슬프게 기타를 칠까
2011년 11월 11일
100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이 날은 정말 doomsday 인지도 모르겠다
10 November, 2011
diez de noviembre
이런 날이 있구나
글도 안 써지고 머리가 붕 떠서 쉽사리 가라앉질 않는다
페북에 간간히 뜨는 푸시만 확인 할 뿐 다른 활자는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지금 나는 무엇이 문제인걸까
09 November, 2011
nueve de noviembre
삶의 모습 하나 하나가 전부 아름다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왠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으니까, 일상이 화보인 셀렙이라도 영국 왕족이라도
off the record의 모습은 별 반 다를 것 같지 않다
고르고 골라 입은 전투복에 화장을 곱게 하고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 마다 드는 생각이다
클러치를 감아쥐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구두를 또각거리던 모습은
현관문을 닫고 킬힐에서 내려오는 순간 유령처럼 사라지고
홈웨어 -라고도 부를 수 없는 그냥 편한 옷- 에 수면양말 차림으로 갈아입고
밀린 설거지와 빨래에 치여 짜증 난 채로 집 안을 부산히 돌아다니는 주부만 남는다
귀찮아서 미처 못 지운 풀메이크업이 홈웨어와 심한 대조를 이루는데;
사는 게 다 그러치
... 그렇지?
07 November, 2011
siete de noviembre
대충 해먹으려고 했던 저녁 메뉴가 콜라 찜닭이 되고
남은 닭뼈 쓰레기 치우고 제일 큰 사이즈 all clad 팬까지 설거지하고 나니 녹초가 되었다
찜닭하고 남은 콜라캔을 들고 작전 본부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부터야 내 시간 ♥
lamucca에서 먹은 런치는 너무나도 맛있었지만
그 전에 들른 favorit에서 크림을 과하게 올린 choco caliente를 먹어 속이 불편하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페북 패스워드를 바꿨는데도
여전히 무언가 빠뜨린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든다
부디 café bómbon과 콜라의 카페인 콤보 공격 때문이기를...
긴 긴 저녁 시간을 외롭게 만드는 한국과의 시차가 불만이다
미국에서 있을 때 보다 백배 천배 불편해! 더군다나 day light saving이 끝나면서 더더욱!
오후 6시가 지나가면서부터 페북의 초록불도 점멸등처럼 껌벅거리다 서서히 사라지고
카톡의 푸시도 드문 드문하게 되어서
마드리드 한 구석에 혼자 남은 처지를 강조한다
나는 저녁밥을 먹고 부엌을 치우고 난 후에 얻어지는 이 적막한 시간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채팅을 하며 온갖 썰을 풀고 싶은데
이리 저리 궁리를 해봐도 깨어 있는 사람이 없다
5년 전만 해도 서로 '북극곰'이라고 자칭하는 폐인들과 서로의 밤을 위로하며 즐거웠는데
그 사람들도 이젠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고 직장인이 되어
밤 10시가 되면 TV를 끄고 (싫어도) 잠자리에 드는 일반인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역시나 나만 홀로 남겨진 기분이다
이제 나도 그만 일반인이 되는 편이 맞을까
06 November, 2011
seis de noviembre
얼마 전에 강사장이 '아이러브스쿨'과 동창회는 난잡하고 위험하다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페북에서 우연히도 아니고 의도적인 것도 아니게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일부러 그 이름을 검색한 건 아니지만 다른 친구를 찾다가 낚은 부산물(미안;;;)이니까
우연도 필연도 아닌 재회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no군과 새로이 페북 친구가 되면서
깊숙히 봉인해뒀던 어린 시절의 원천 기억의 일부가 밑바닥에서부터 가물 가물 피어올랐다
no군과 나는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담임 선생이 누구였는지도 뭔가 특별한 사건이 있었는지도 이젠 알 수가 없지만
반평생을 아웅다웅 하면서 지내는 JY군과도 같은 반이었던 시절이다
나와 JY는 워낙 각별(?)했던 터라 나란히 앉아 노는 -수업을 듣는- 시간이 많았고
no군은 종종 내 뒷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을 그려보자면 창가 쪽 1분단 뒤에서 두번째가 본래 내 자리
뒤에서 네번째였던 JY가 내 짝을 내쫒고 옆자리로 놀러와 같이 앉았고
1분단 맨 뒷자리에 키다리 no군이 잔뜩 웅크리고 앉아 나랑 쪽지 돌리기를 했었다
no군의 자리가 원래 그 곳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나와 놀기 위해 일부러 바꾼 건지 알 길이 없고
어렴풋이 늘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JY와 알력이 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no군은 중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냐고 했지만
내 기억엔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잠깐 그를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역시 확인 불가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기도 뭣하니 영영 미확인 사실로 남겠지
온통 뿌옇게 안개 낀 추억 뿐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no군은 반갑다
어디서 뭘 하고 잘 지내는지 문득 문득 궁금한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there are some people you may know 라며 바람나 도망친 구남친이나
회사에서의 웬수덩어리, 친구의 구남친의 새 여친 등등 쓸데 없는 인간 관계를 조장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페북이지만,
가끔 이렇게 재밌는 일을 만들어주니 기특하기도 하다
사실 no군과 친구를 맺은 것 뿐 긴 대화를 하며 서로 추억을 나눈 것도 아닌데도
오늘 하루 잊고 지냈던 오래된 일들을 떠올리며 잠시 설레였다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03 November, 2011
tres de noviembre
어제가 좋은 날이었다면 오늘은 "미친날"
(부제 : 날씨 너 때문에 내가 미쳐)
weather.com 앱에 뜨는 열흘에 걸친 떼비구름을 보고 겁에 질려
뽕카 2호기를 데리고 오는 데 관련된 일이 아니고선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손도 근질근질 발도 근질근질
오늘도 역시 90%에 육박하는 비 예보에 일찌감치 시내 나들이를 접고
집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걸린 닭 마냥 꾸벅 거리고 있었다
무심코 '영화나 한 편 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처음으로 혼자 티플 웹사이트에 들어가 영화 다운로드를 걸었다
고화질 블루레이면 다 좋은 거겠지?
arc 파일이라고 올라와 있는데 이게 뭐지?
우리 TV로 볼 수는 있는 건가?
압축 못 풀면 680포인트는 버리는 거야?
훗- 내 돈도 아닌데 버리라지 뭐 ㅋㅋ
더듬 더듬 다운로드 버튼을 클릭하고 어쩌고 있는데 창문에서 무언가 푸드득 푸드득 했다
순간 떠오른 생각은 '비둘기?'
...비둘기일 리가 있나 이 동네는 까치네 구역인데
범인은 BB탄 만한 우박이었다
'ㅅ'
아 그래 여긴 유럽이었지
우박의 나라 유럽
유럽의 나라들은 모두 우박의 나라
푸드득 푸드득 비둘기가 몸 털 때 탈출하는 벼룩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우박에 신이 나서
옆집 지윤에게 카톡을 날렸지만,
미처 send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우박 종료
다시금 해가 납니다
-_-
아 그래 여긴 유럽이었지
변화무쌍한 날씨를 가진 유럽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유럽의 경제
"우박이다 우박이 온다아아아" 하고 헛뻐꾸기를 날린 양치기 소년이 된 듯 하여
살짝 의기소침해지려는데 이번엔 돌풍과 함께 엄청난 소나기가!
또 다시 신이 나서 새로 바른 창고 벽의 비닐이 충분히 역할을 다 하는지 확인도 하고
집 구석 구석을 뛰어다니며 비 구경을 했지만 또 5분 후 종료
=_=
아 나 오늘 정말 심심한가봐요
01 November, 2011
uno de noviembre
11월의 첫 날은 all saints' day
마치 내가 '죽은 자'인 것 마냥 집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하루를 보냈다
halloween도 없는 듯이 보냈는데 가톨릭의 휴일 조차 특별한 일이 없구나
쉴 새 없이 공부에 치이는 오빠가 밉고 자동차니 보험이니 나한테 떠넘기는 오빠도 밉다
그리고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엔 당연히 밥 하기도 싫은 법이다
수십 개의 자동차 보험 회사 웹페이지를 읽고 gps 리뷰를 검색하다보니
훌쩍 해가 지고 벌써 저녁을 먹을 우중충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 전에 딱 30분 만 내 시간을 갖기로 하자
뭐가 좋을까? 책을 읽을까?
요즘은 <비밀의 요리책>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빨리 읽히는 편은 아니다
환상 스릴러라고 믿고 펴들었더니 잔잔한 감동이 있는 뻔한 이야기
맛있는 요리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컨셉인데
누가 지금 나에게 배배 꼬인 속을 풀어낼 수 있는 멋진 요리를 좀 해주면 딱인데
24 October, 2011
veinte y cuatro de octubre
A&J 언니들과 함께 a-1도로 변에 있는 carrefour planet에 가서 장을 봤다
주말 내내 양파, 우유, 과일 따위가 똑 떨어져서 텅텅 빈 냉장고를 보며 한숨을 쉬었는데
언니네 차를 타고 나가는 김에 많이 사야겠다는 생각에 카트까지 끌고 출정
평소에 잘 사지 않는 디저트랑 처음 사 보는 문어, 송어, 홍합 따위도 잔뜩 쟁여 왔다
kaki라고 적힌 커다란 단감도 괜찮아 보이는 걸 몇 개 골라왔다
송어는 버터 바르고 마늘 올려서 화이트 와인 뿌려가며 구우면 되겠지만
혹시 더 화끈한 레시피가 있을까 싶어서 네이버 검색 go go-
마침 스페인에서 어학 연수 중인 아가씨가 올린 레시피가 검색 결과 첫 줄에 떠오른다
바야돌릿이거나 그라나다에 살고 있는 것 같으니 나랑 마주칠 일은 없겠구나
돌아오는 길 alex언니와의 대화 중에
A언니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는 근처에 사는 한국 사람이
alex언니로부터 유아용품을 얻어갔던, ikea에서 카트 바꿔치기를 당한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법관 연수로 왔다고 했으니 한국에 계신 mo family와 아는 사이 일지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드리드 도착 후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어
두뇌 속 인간 관계를 관장하는 뉴런에 과부하가 걸렸다
한국 사람이랍시고 끈끈한 정을 유지하고 상부 상조, 또는 무조건적인 베품을 행하는
분위기라면 학을 떼고 싫어하는 나의 치졸한 개인주의에 위협을 느낀다
그렇지만 마드리드의 한국인 사회는 너무 좁고
나 역시 한 해, 두 해 살다 보면 싫어도 아는 사람이 더 늘어 가겠지
안락한 우리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주말 내내 사람에게 시달려서 신경이 예민해졌나보다
조용한 휴식을 가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초콜렛 무스를 떠 먹으며 침대에 엎드려
<그 후에>를 마저 읽었다
팔꿈치와 어깨가 아파질 때 까지 꼼짝 않고 책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득 방이 어두워진 것 같아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언제 비가 왔는지 땅이 젖어 있다
오전에는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점심 나절에는 파란 하늘에 해가 났었는데..
어느새 다시 추적 추적 비가 내린다
오빠는 우산을 가지고 갔으니 괜찮을 거고, 귀가 시간에 맞춰서 난방을 켜야지
난방을 켜지 않으면 수면 양말을 신어도 발이 시렵다
저녁 메뉴는 trucha(송어) 구이
머리, 지느러미와 내장을 제거한 송어를 반을 갈라 호일을 깐 쿠키롤 팬에 놓고
민물 고기인 만큼 비린내가 심할테니 화이트 와인을 골고루 뿌려야 좋다
감자, 양파, 파프리카, 아스파라거스를 굵직하게 썰어 마구 섞어 올린다
EEVO도 넉넉하게 갖은 허브도 넉넉하게 뿌리고
송어 살에는 녹인 버터를 듬뿍 바른 뒤 소금을 뿌리고 마늘 슬라이스를 얹어 준다
20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20분, broil로 10분 더 구우면 끝
심플하면서도 다이나믹한 요리
나는 손이 너무 많이 가면서 먹을 건 없는 치장만 요란한 요리 보다는
모양새도 푸짐하고 버리는 부분 없이 다 먹을 수 있는 신나는 요리가 좋다
민물 송어의 비릿한 흙내음이 어린 시절을 불러왔다
낚시로 잡은 무지개 송어를 손질하던 아빠의 어깨 너머로 배웠는지
오늘 송어를 손질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시 뭐든 많이 알아두는 편이 좋다 :D)
내일은 집에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오늘의 송어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23 October, 2011
veinte y tres de octubre
어젯밤 guillaume musso(기욤 뮈소)의 <그 후에>를 읽다가 잤다
삼십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졸려 자버렸지만, 사건의 배경이 뉴욕 맨해튼이라는 게 좋았다
5th ave와 52nd st의 교차점이나, park ave 를 가로 막은 메트라이프 빌딩을 싸고 돌며
컨베이어 벨트가 돌 듯 로어맨해튼으로 내려가는 차량 행렬
32nd st에서 내린다고 하자 "아 ESB에 가는 모양이네"라고 딱 찝어 맞출 수도 있고
오랜만에 뉴욕을 떠올리며 즐거웠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퀸즈 사는 diane이 결혼을 할 때? 우리는 안 불러 줄텐데
경진이가 뉴욕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면 졸업식에나? 그런데 뭐 합격을 해야;;;)
맨해튼과 퀸즈 구석 구석을 아이폰도 없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데에는
어쨌거나 뉴욕과 차로 2시간 거리, 필리에 감사해야 하는 모양이다
앗 오늘, 마드리드의 첫 비 ♥
며칠 전 예보부터 비가 온다고 되어 있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헌터부츠를 꺼내 보았다
3개월 동안 관리를 안 했더니 표면이 전부 하얗게 일어났어 ㅠ_ㅠ
당장 오늘 신을 지도 모르니까.. 라며 buffing spray를 가져다가 반짝 반짝 광을 냈다
그런데 정말 비가 오다니!!!
(비 오는 날씨는 정말 싫어하지만 오랫만에 헌터는 신고 싶고..)
하지만 비는 5분 만에 그쳐버렸다
22 October, 2011
veinte y dos de octubre
어젯밤 늦게 -정확히는 오늘 새벽 2시- 집에 돌아와보니 새로운 책장이 눈에 띄었다
ikea에 갔던 오빠가 사온, 개당 18유로 짜리 날씬한 책장
미국집에 ikea expedit 라인의 5x5 사이즈 대형 책장을 버려두고 오는 바람에
이삿짐이 도착하고 나서도 책장이 없으니 책 정리를 할 수가 없어 7~8개에 달하는
책 상자들을 그대로 공부방에 쌓아두는 수 밖에 없었다
(공부방 '구석'에 쌓아놨다고 쓰고 싶지만 상자를 쌓고 보니 방 절반을 차지)
차가 없으니 ikea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고
habitat이나 el corte inglés(nuevos ministerios 지점) 가구 섹션을 다 돌아다녀봐도
예쁘면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적절한 가격이면 디자인이 ikea와 별 차이가 없는
뻔하디 뻔한 상황에 치여 내내 책장을 구입하지 못했더니
결국 정신 사나운 공부방 상태를 견디다 못한 오빠가 직접 나서고 말더라는 것 ♥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나 역시 커다란 책장에 책을 잔뜩 갖고 싶다는 로망이 있기는 하다
다만 가구점 카탈로그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간지가 묻어나려면 책장도 책장이지만
꽂아두는 책 역시 디자인과 배열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구비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전집이 효과가 좋다)
조그마한 싸구려 책장 -베이스가 좁아서 흔들흔들 한다 ㅎㅎ- 두 개를 들여놨을 뿐인데
책을 이리 꽂았다가 저리 옮겼다가 새로 한 칸을 들어내고 다른 책으로 채워보고
한참을 고민하면서 조금 더 나은 배열을 찾았지만,
어떻게 해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예쁜 모양새가 나오질 않는다
아무래도 이런 정도로 '서재의 로망'을 실현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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