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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April, 2012
diez y seis de abril
故 박완서씨의 단편집 <그 여자네 집>을 읽었다
처음 박완서를 접한 건 대학교 다닐 때였나, 엄마가 가지고 있던 책을 통해서였지만
자식을 출가시키고 인생을 접어가는 장년(또는 노년)층의 시선으로 세상을 훑는 감정선을
20대 초반의 내가 캐치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 후 고작 몇 년 지났다고 얼마나 더 이해하겠나 싶지만,
그래도 곧 할머니가 되는 엄마를 둔, 출가한 딸의 입장이 되니 뭔가 달라지긴 한 것 같다
주로 '육십이 넘고 나면 엄마도 이런 여한을 가질까' 라고 상상하며 읽었다
박완서 -이제부터 故 생략- 씨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H군의 외할머니이다
<한 말씀만 하소서>에 나오는 딸네 가족이 H군의 가족
박완서씨가 결사 반대했던 '촌놈과의 결혼'을 강행하고 부산서 살던 딸이 H의 어머니인 것이다
그 '촌놈'께서 고향 근처에 교수직을 얻으면서 서울 태생의 H는 한동안 부산에서 살았다
그래서 H는 서울말 네이티브지만 부산말에도 능숙한 bi-lingual 이었다
박완서씨의 자녀가 모두 명문대를 진학 한 것 처럼, 손자 H도 서울대 경영학부를 나왔다
H는 나랑 동갑이지만, 연대를 다니다가 2년 만에 때려치고 다시 수능을 보고
두 살 어린 내 동생과 03학번 과 동기가 되었다
출발은 늦었지만 그는 졸업하기 전에 CPA를 따고 유수의 회계법인에 취직했고
오래 사귀던 여자친구는 한 번의 실패 없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주변에서는 그야말로 수재 커플이라며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H는 잘난 만큼 착실하게 잘난 체를 했다
고압적인 말투나 '니가 무어든 내 알 바 아냐'라는 듯 한 자세는 내 신경을 거슬렀다
그러나 우리는 한 다리 건너 아는, 술자리에서나 마주치던 사이라 그 꼴을 자주 볼 것도 없었다
그는 저렴하지만 안주가 맛있는 술집을 꽤 많이 알고 있었는데
덕분에 가보았던 서초동의 이자카야는 몇 년간 내 단골집이 되기도 했다
그 집 명물인 소고기튀김을 먹으면서 H군의 할머니가 박완서씨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얘네 아빠가 OO치과 원장님이야"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들은 나와 달리
(아버지가 문학교수인) 내 친구 E양은 한동안 그에게 불같은 관심을 보였었다
시니컬한 H는 E에게 관심이 0.1g도 없었고..
H를 더 볼 일이 없어진 후에도 나와 E는 소고기튀김에 따뜻한 도쿠리를 참 많이도 마셨다
속표지의 박완서씨 사진을 보니 -여태껏 얼굴을 몰랐다- H군이랑 판박이시네
지난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지나가며 보니 그 이자카야는 없어진 듯 했다
H가 알려주기도 했지만, 사실 친하게 지내던 서초동 패밀리들도 자주 모이던 집이었다
회사를 다닐 적에 오빠와도 꾸준히 드나들며 온갖 안주를 축냈고
푸근한 분위기의 동네 선술집을 찾던 엄마 아빠까지 고정 손님이 되셨다
우리같은 젊은 애들은 많이 마셔봐야 10만원도 안 나올 술집인데,
엄마 아빠의 패거리가 몰려가서 48만원 어치의 술과 안주를 시킨 적이 있다고 했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아사히 맥주를 들통 째로 시켜버렸다나
대박손님(?)에 황망해진 마스터가 온갖 스페셜 안주를 왕창 서비스하고
의외로 사소한 것에 쉽게 감동하는 아빠가 팁 명목으로 또 몇 장을 뿌리고 왔다고 하니
두런두런하고 소소한 분위기의 술집에서 그게 왠 해프닝인지 ㅎㅎ
일본식 춘화가 많이 걸려있었는데, 얼큰해진 엄마는 그걸 보며 좋아라 깔깔대셨겠지
평소에 소심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극도로 흥분하는 엄마는
그 날 이자카야가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아사히 맥주통 이야기를 하고 하고 또 하셨다
그런 엄마는 환갑이 지난 후 자신의 삶을 어떠한 시선으로 돌아보실까?
엄마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 여자네 집>에 나오는 딸년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결코 나쁜 자식은 아니지만 어딘가 굴비처럼 말라 비틀어진 애엄마가 되어 있을까
할머니 티가 나기 시작하면 젊은 애들이 모이는 술집에 드나들기는 눈치가 보일텐데
그런 소박한 일탈의 욕구는 누가 충족시켜드리나
나나 사위가, 깍듯한 동생이, 누군지도 모를 며느리가 할 수 있을까
오빠와 함께 엄마 아빠를 모시고 소고기튀김이나 한 번 먹으러 갈 껄 그랬다
06 March, 2012
seis de marzo
컴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아서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볼까 하고 눈을 돌려보지만
읽을 책도 마땅치 않고, 격렬하게 청소나 운동을 할 수도 없으니 이내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몇 권 안 되는 태교 및 임신/출산 관련 서적은 이미 다 뗀 지 오래되었고,
아이패드에 받아놓은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도 다 읽었다
소싯 적에 1,200번은 읽은 터라 대사까지 알고 있는데도 또 읽었음 ㅠ
선물받은 <심야식당> 여덟 권도 세 번 씩 정독한 것 같다
폰 끼고 누워서 뒹구는 것 보다 차라리 TV를 보는 게 더 '생산적'일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집엔 TV는 모니터 일 뿐, 채널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
42인치 사이즈 LED, 비싼 모니터
미국에서 모셔오는 바람에 전송방식이 유럽 기준에 맞지 않아 (미국: NTSC, 유럽: PAL)
방송을 수신하려면 AV 컨버터를 구입해서 설치해야 했지만
'어차피 들리지도 않는 스페인어 방송, 비싼 돈 주고 뭐하러 봐'라고 판단해서 반려
비싼 TV군께서는 다운받은 영상 파일만 돌리는 모니터군으로 제 역할을 변경하셔야 했다
축구채널이라도 볼 수 있으면 가입을 할까 했지만,
약아빠진 스페인 방송국들은 la liga를 비롯한 주요 리그 경기를 한 채널에 몰아놓고
기본 채널도 아닌,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선택 채널로 편성을 해놓았다
더군다나 위성 채널!!! 접시를 달아야 해!!!
그래서 '스페인에 가면 축구를 실컷 보겠지~'라던 우리의 부푼 꿈은 물거품이 되고...
신의 은총으로 인터넷은 제법 빨라 다운 받는 건 문제 없다
(막상 난 제대로 할 줄 모르지만 오빠가 빼놓지 않고 다 받아주니까 ㅋㅋㅋ)
수요일엔 <라스> <해품달>, 목요일엔 <해투3>, 금요일엔 <보코>, 토요일엔 <무도>,
일요일엔 <케이팝스타> <런닝맨>...
여기에 <walking dead>, <spartacus>, <hawaii five-0> 등등 미드 몇 편
간간히 영화나 다큐를 다운 받아서 보는 게 우리 부부의 낙이다
그래도 가끔, 혼자 있어 집이 너무 적막할 때 TV 소리라도 들리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전기 잡아먹는 2kw 변압기를 하루종일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
btw, 방송국들이 죄다 파업을 해서 TV군이 무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요즘은 너무 슬프다
재방도 본방도 광고도 없는 우리는 너무 외로워요 ㅠ_ㅠ
09 February, 2012
nueve de febrero
polaramine 주사를 맞고 피가 흥건히 묻었던 팬티는 빨고 나니 흔적도 없이 깨끗해졌다
내 몸도 그렇게 깨끗히 씻궈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두드러기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올라와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는 중
간신히 흰밥에 김, 귤, actimel, 씨리얼 만으로 버티고 있는데
오늘로 꼬박 일주일이 되니 이젠 좀 너무하다.. 슬슬 정상의 생활을 잊어가고 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다 읽었다
이 책은 2010년 G사장이 생일선물로 보내준 십수권의 책 사이에 끼어 있었다
신경숙이 <엄마를 부탁해>를 쓰고 필리에까지 왔던 건 알고 있지만
이 작가가 우리나라 문단에서 얼만큼의 자리를 차지하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도통 소설에는 관심이 없다
어쨋거나 이 책은 다 읽고 나니 괜히 읽었다
나는 청춘의 낭만과 방황 -어이없이 잦은 죽음과 잠수를 그렇게 부른다면- 이 없는 시대
를 겪은 사람이고 주변에 누구 하나 낭만을 부르짖는 사람이 없었다
강북의 도심을 매일매일 몇 시간 씩 걷고
굳이 의미를 부여한 시집 한 권을 여러 명이 돌림노래 하듯 낭독하는
그런 풍경은 상상도 되지 않을 뿐더러 나에겐 감동이 없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실을 겪은 젊은이들이 모여 기억을 공유하다 새로운 상실을 불러내고
거기서 또 살아남은 이들은 당시를 고통스럽게 추억하며 어른이 된다.. 뭐 그런 것이겠지
세상에 시집을 읽고 편지글에 글귀를 적어 보내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다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다 내 카톡 대화상대에서 쫒겨난 D
그녀는 여전히 시를 쓰고 청춘을 노래하지만, 뭐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그저 내가 상실한, 평소의 생활이 정말 그립다
06 December, 2011
seis de diciembre
임신과 출산 등에 관련된 어플들을 다운 받았다
주로 한국어 어플을 쓰겠지만, 병원에서는 영어로 -또는 스페인어로?!?-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하니
영어 표현을 알아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영어 어플도 하나 추가
얼마 전에 친구 S양에게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서 어떤 책을 보는 게 좋겠냐고 물었는데
앗차! S에게 물은 건 엄청난 실수였다
'속도위반'으로 결혼 전에 아들을 낳은 S가 미리 책을 읽었을 리 만무하잖아
그녀는 그저 땅콩은 '앨러지를 유발'하니 피하고 호두는 '뇌발달'에 좋다고 많이 먹으랬다
(있지도 않은 애기에게 뇌가 어딨어 0_0)
이제 배가 나오기 시작했을 J에게도 물어봤지만 그 역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J는 어떠한 일에도 스스로 + 열심히 준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슬 교보문고 해외배송을 통해서 관련 서적들을 구입 할 생각이지만
당장은 이런 어플들만 훑어봐도 충분 할 듯 ㅎㅎ
괜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임신 초기에 먹으면 안 되는 것이라던가
하면 안 되는 운동 같은 것들을 피하지 못할까봐 막연히 걱정이 되어서 그렇다
... 정말 날 음식은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스시나 생굴은 그렇다 쳐도 왜 jamón은 안 되는 걸까
나이를 먹고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주변에 아기 엄마 아빠라는 신 종족이 생겨났다
평생 나이 먹지 않고 철 없이 살 것 같았던 사람들도 역시나 부모가 되었다
(물론 부모가 된다는 것과 철이 든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철 없는 부모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 모 밴드의 프론트맨이자 디자이너 6씨
6씨는 2006년에 첫번째(로 추정되는) 결혼을 했다
속도위반이었고, 하와이 신행 사진에서 와이프는 이미 배가 불렀었다
그리고 같은 해 태어난 아기는 내 기억에 따르면 분명 딸이었다
그리고 현재 6씨는 2010년에 태어난 두살 짜리 아들이 있다
2006년에 태어났던 딸과 2010년에 태어난 아들은 이름이 같다
현재의 6씨에게는 딸이 없다
페북에서 보니 6씨의 와이프는 2006년 하와이로 신행을 갔던 사람이 아니다
새로운 인물도 아니고 예전부터 6씨와 친구로 알고 지내던 여자사람
말이 안 되지만, 6씨의 와이프와 자녀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말이 되겠지
6씨의 안부를 모르고 지낸 3~4년 동안 그는 이혼을 하고 두번째 장가를 간 듯 하다
그리고 새로 낳은 아기에게.. 헤어진 아기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애아빠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나보다
그렇지만 아무리 아까워도 그렇지 그걸 또 쓰다니, 정말 6씨 답다!
'스키니맘'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애기를 낳고 나서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자기관리가 투철한 초현대의 엄마들을 가리킨단다
직장맘, 전업맘이나 애 이름을 갖다 붙여 OO맘, ∆∆맘이라고 하는 건 딱 질색인데
'스키니맘'은 왠지 마음에 든다
미칠듯이 노력해서 꼭 스키니맘이 되어야겠다
01 November, 2011
uno de noviembre
11월의 첫 날은 all saints' day
마치 내가 '죽은 자'인 것 마냥 집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하루를 보냈다
halloween도 없는 듯이 보냈는데 가톨릭의 휴일 조차 특별한 일이 없구나
쉴 새 없이 공부에 치이는 오빠가 밉고 자동차니 보험이니 나한테 떠넘기는 오빠도 밉다
그리고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엔 당연히 밥 하기도 싫은 법이다
수십 개의 자동차 보험 회사 웹페이지를 읽고 gps 리뷰를 검색하다보니
훌쩍 해가 지고 벌써 저녁을 먹을 우중충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 전에 딱 30분 만 내 시간을 갖기로 하자
뭐가 좋을까? 책을 읽을까?
요즘은 <비밀의 요리책>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빨리 읽히는 편은 아니다
환상 스릴러라고 믿고 펴들었더니 잔잔한 감동이 있는 뻔한 이야기
맛있는 요리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컨셉인데
누가 지금 나에게 배배 꼬인 속을 풀어낼 수 있는 멋진 요리를 좀 해주면 딱인데
25 October, 2011
veinte y cinco de octubre
썩 괜찮은 쇼핑 스팟이 없다고 단정 짓고 있었는데
오늘 c/ coello에 있는 isolée에 다녀오고 나서 마드리드를 좀 더 사랑하기로 했다
사실 이 곳은 나중에 natura bissé를 사기 위해서 찾아놓은 가게였는데
오늘 alex언니와 시내 쇼핑을 나갔다가 본격적으로 둘러봤다
"www.isolee.com"
moda shopping 안에 있는 지점은 작아서 그런지 화장품만 취급했지만
여긴 화장품, 옷, 식료품에 생활 소품까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정말 빠지지 않고 다 모아 놓은 게 아닌가
lékué의 실리콘 제품들, 귀여운 bodum과 the laundress new york
de cecco의 파스타와 harney and sons의 홍차 세트
aēsop, natura bissé 몽땅이랑 diptyque와 memo의 부내나는 향초와 퍼퓸
특히나 aēsop은 한국이랑 가격이 비슷해서 다음 화장품 라인은 이걸로 결정했다
(비싼 natura bissé 따윈 집어 치워 ㅋㅋㅋ)
벼르고 있던 tam dao를 시향해보고 - 아 근데 내 취향은 아니네
의류 섹션도 둘러봤는데 오빠에게 꼭 사주고 싶은 너무 예쁜 스니커즈 발견 ♥
점원들도 친절하고 분위기도 편안해서 실컷 구경하다가 나왔다
다른 사람에겐 일러주지 않고 꼭꼭 숨겨뒀다가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은 전부 여기서 해결하면 될 것 같다
아 그리고 bimba y lola에서 다인이에게 보낼 pendant necklace를 하나 샀는데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나는 도저히 좋아할 디자인이 아니지만 그녀에겐 어울릴 듯)
스페인에서 사서 보낼 만한 게 정말 없어서 - 올리브 오일을 보낼 순 없잖아?!
그나마 bimba나 uterqüe의 악세사리는 희소성도 있고 부피도 작으니까
선물로 보내기엔 좋은 아이디어다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우체국에 갈 생각을 하니 귀차니즘이 ㅠ.ㅠ
산마니의 생일 선물도 찾아봐야 하는데, 당장 더 급한 숙제가 하나 생겼다
tokyo 사는 dobek에게 <어린 왕자> 보내주기
castellano와 catalán, 가능하면 euskera 버전까지
그는 언젠가부터 이 재미없는 철학서의 각 나라 출판본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구했는지 신기할 정도의 아프리카 출신들도 가지고 있으면서
막상 스페인 판이 없더라고
오래 전이지만 신세 진 일도 있고 하니 선물로 보내줘야지
23 October, 2011
veinte y tres de octubre
어젯밤 guillaume musso(기욤 뮈소)의 <그 후에>를 읽다가 잤다
삼십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졸려 자버렸지만, 사건의 배경이 뉴욕 맨해튼이라는 게 좋았다
5th ave와 52nd st의 교차점이나, park ave 를 가로 막은 메트라이프 빌딩을 싸고 돌며
컨베이어 벨트가 돌 듯 로어맨해튼으로 내려가는 차량 행렬
32nd st에서 내린다고 하자 "아 ESB에 가는 모양이네"라고 딱 찝어 맞출 수도 있고
오랜만에 뉴욕을 떠올리며 즐거웠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퀸즈 사는 diane이 결혼을 할 때? 우리는 안 불러 줄텐데
경진이가 뉴욕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면 졸업식에나? 그런데 뭐 합격을 해야;;;)
맨해튼과 퀸즈 구석 구석을 아이폰도 없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데에는
어쨌거나 뉴욕과 차로 2시간 거리, 필리에 감사해야 하는 모양이다
앗 오늘, 마드리드의 첫 비 ♥
며칠 전 예보부터 비가 온다고 되어 있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헌터부츠를 꺼내 보았다
3개월 동안 관리를 안 했더니 표면이 전부 하얗게 일어났어 ㅠ_ㅠ
당장 오늘 신을 지도 모르니까.. 라며 buffing spray를 가져다가 반짝 반짝 광을 냈다
그런데 정말 비가 오다니!!!
(비 오는 날씨는 정말 싫어하지만 오랫만에 헌터는 신고 싶고..)
하지만 비는 5분 만에 그쳐버렸다
22 October, 2011
veinte y dos de octubre
어젯밤 늦게 -정확히는 오늘 새벽 2시- 집에 돌아와보니 새로운 책장이 눈에 띄었다
ikea에 갔던 오빠가 사온, 개당 18유로 짜리 날씬한 책장
미국집에 ikea expedit 라인의 5x5 사이즈 대형 책장을 버려두고 오는 바람에
이삿짐이 도착하고 나서도 책장이 없으니 책 정리를 할 수가 없어 7~8개에 달하는
책 상자들을 그대로 공부방에 쌓아두는 수 밖에 없었다
(공부방 '구석'에 쌓아놨다고 쓰고 싶지만 상자를 쌓고 보니 방 절반을 차지)
차가 없으니 ikea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고
habitat이나 el corte inglés(nuevos ministerios 지점) 가구 섹션을 다 돌아다녀봐도
예쁘면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적절한 가격이면 디자인이 ikea와 별 차이가 없는
뻔하디 뻔한 상황에 치여 내내 책장을 구입하지 못했더니
결국 정신 사나운 공부방 상태를 견디다 못한 오빠가 직접 나서고 말더라는 것 ♥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나 역시 커다란 책장에 책을 잔뜩 갖고 싶다는 로망이 있기는 하다
다만 가구점 카탈로그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간지가 묻어나려면 책장도 책장이지만
꽂아두는 책 역시 디자인과 배열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구비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전집이 효과가 좋다)
조그마한 싸구려 책장 -베이스가 좁아서 흔들흔들 한다 ㅎㅎ- 두 개를 들여놨을 뿐인데
책을 이리 꽂았다가 저리 옮겼다가 새로 한 칸을 들어내고 다른 책으로 채워보고
한참을 고민하면서 조금 더 나은 배열을 찾았지만,
어떻게 해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예쁜 모양새가 나오질 않는다
아무래도 이런 정도로 '서재의 로망'을 실현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을 테니까...
16 October, 2011
diez y seis de octubre
일요일이니 만큼 느지막히 일어나고 싶었지만
(고장난 persiana가 막아주지 못하는) 강렬한 아침 태양빛으로 9시 반쯤 눈을 떴다
하루를 여는 집청소를 해치우고 샤워를 한 뒤
아침 식사로 pan con tomate와 potato rösti를 요리하고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이 곳의 대표적인 아침 메뉴인 pan con tomate(토마토 빵)를 만드는 건 간단하다
까끌거리는 바게뜨나 프렌치롤 슬라이스를 바싹 굽고
생마늘을 손으로 집어 빵에 가볍게 문지른다
생토마토의 껍질과 가운데 심지를 분리하고 대강 대강 으깨서
EEVO를 뿌리고 가볍게 소금이랑 허브를 치고
쓱싹쓱싹 섞어서 마늘을 문지른 빵 위에 올리면 완성
마늘, 올리브 오일, 토마토
간단한 조리법, 예쁘지 않은 모양새
어느새 상당히 "spainized"한 우리의 일상에서 마늘과 올리브 오일 냄새가 난다
오늘로 마드리드에 도착한 지 꼭 한 달 하고 열흘이 되었다
인간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를 감탄하기 보다는
분위기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강력한 관성의 힘에 놀란다
españa, madrid, hortaleza, pinar del rey, avenida san luis 27번지
구름 한 점 없는 마드리드 하늘 아래 유럽식 구조를 가진 아파트에 앉아 있지만
손때 묻은 2009년식 imac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는
이 공간이 서울 도곡동의 어디라도,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 마을이라도,
설사 바깥 세상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알래스카라도 괘념치 않을 것이다
다른 언어가 들려오지 않는 이 고요함이 유지되는 한
내가 있는 곳은 나라와 대륙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일정할 수 있다
빵에 문지른 마늘이 좀 매웠는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입 안이 얼얼하다
다인이에게서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라는 에세이집을 샀다는
메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스페인어 공부 중이었다
(스페인에 있으나 스페인에 있는 줄 모르겠다고 적은 건 내가 맞지만,
짬 나는 대로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건 나의 생존 본능이다)
antoni gaudi의 고향
투우의 고장
온 천지에 올리브가 자라는 땅
태양과 정열의 이베리아 반도
나를 알기 위해 800km를 걷는다는 camino de santiago가 있는 나라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전부 스페인에서 살다니 부럽다 라고 하는 이 나라
나는 아직 스페인이 좋다거나 싫다고 말 할 수 없다
여전히 버스를 타고 닿을 수 있는 거리 내에서만 돌아다니고
미국 물건으로 가득찬 집에 들어와서 한국 브랜드 라면을 먹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생활은 어때? 라던가 미국이 좋아, 스페인이 좋아? 라던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또는 그저 그런 인사치레인 이런 물음에는
정말 좋아
아주 잘 살고 있어
porque todavía no conozco españa
그리고 다인이는
내년 즈음 나를 만나러 온다며 무작정 여행 에세이집을 사고 꿈에 젖었다
"누군가 스페인에 대해 안좋게 말한다면, 그건 스페인 사람이다"
꿈을 꾸는 친구를 위해
다른 이들의 꿈을 대신 충족시켜주기 위해
나는 항상 좋은 이야기를 하고 항상 잘 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업로드 한다
하기야,
내가 사는 공간이 항상 일정하게 행복 할 수 있다면
그 곳이 마드리드인지 필라델피아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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