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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December, 2012
once de deciembre
드디어 크리스마스 카드를 부쳤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한국과 미국에 도착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3개월 된 아가 시중 드는 틈틈이 카드 쓰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게 8장을 겨우겨우 완성하고나니 이미 우편 성수기;
우체국에서 족히 1시간 줄을 서야했다
매년 쓰고 부치는 크리스마스 카드라지만,
올해는 특히 손이 많이 가고 -달곰을 참여시키느라- 시간도 오래 걸렸네
하지만 오늘의 메인 미션은 동사무소 가기
반달곰양의 거주등록을 하러 ayuntamiento(=동사무소)에 갔다
렌트 계약서, 우리 부부의 거주증, 여권, 달곰 출생증명서, libro de familia 등등
지참해야 하는 서류만 두께가 3cm
방학을 해도 페이퍼가 밀렸다는 오빠가 아기를 봐줄 것 같지 않아,
또 유모차의 아기를 얼러가며 복잡한 등록 업무를 봐야했다
아, 정말 사는 게 쉽지 않다
가뜩이나 스페인어도 후달리는데 관공서 일이 너무 많다
미국에서는 기껏해야 dmv 가는 것 뿐이었는데
여기선 이민국, 교통관리국, 경찰서, 세무서..
현지인들에 섞여 손짓발짓으로 온갖 업무를 보아야 한다
그럼 아예 10년 짜리 영주권이라도 주던가 ㅠ
어쨌거나 친절한 직원을 만나 일처리는 수월히 되었다
08 December, 2012
ocho de diciembre
어제 첫 예방접종을 받은 -태어나자마자 맞는 B형간염 빼고- 75일 된 달곰은
하루가 지난 지금은 축 늘어져 계속 선잠을 잔다
오전 10시 반에 접종을 마치고 오후 4시 쯤 부터 보채기 시작,
눕히면 기절할 듯 울고 안아주면 끙끙대며 졸기를 반복하며 저녁 나절을 보내고
밤 10시 반에야 침대에 등을 붙이고 잠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밤에는 혼자 잘 자는 그대는 잠만보 ㅋㅋㅋ)
저녁까지 체온이 37.5도 언저리였던 게 새벽이 되자 38.3도까지 치솟았지만,
끙끙대며 깊게 못 자긴 해도 특별히 울며 보채지 않길래
해열제를 쓰지 않고 조금 더 지켜보았다
다행히 아침이 되자 37.2도로 떨어져서 안심!
여전히 기운이 없고 잘 놀란다
(거의 없어졌던 모로반사가 다시 생긴 건 뭐지?!)
아직 주사맞은 부분이 불편한지 로션바르다 건드렸더니 칭얼칭얼 ㅠ
이래저래 안쓰러워 죽겠는데..
하루사이 수척해졌나? 왼쪽 눈에 쌍꺼풀이 잡히기 시작
주사 한 번 더 맞으면 미래의 수술비용을 아낄 수 있을지도 ㅋㅋ
아기 키우기는 공부의 연속
우리나라의 소아보건법이나 접종법과는 좀 차이가 있는 스페인에서
제 때 제대로 예방접종을 받으려면 심도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우선 질병과 백신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고,
육아수첩 상의 접종 스케줄도 외우고 있어야지
멍청해서는 애도 못 키우겠구만 ㅎㅎ
"comunidad de madrid에서 제공하는 육아수첩"
생후 2개월에 맞는 필수접종에는
difteria 디프테리아
tetanos 파상풍
tosferina 백일해
HiB 뇌수막염
polio 폴리오(소아마비)
hepatitis B B형간염
meningcoco C 수막구균
neumococo 13v 폐구균
총 8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폐구균은 아직 유료접종이다
13가 백신인 prevenar 13 을 약국에서 직접 사다 병원에 제출해야 함
가격은 우리나라나 비슷하게 1회분 65유로 줬다
(한국에선 10가 백신도 쓴다지만 스페인에선 13가 백신이 원칙임)
meningcoco C는 영어로 meningitis, 수막구균 백신이다
미국으로 유학가는 한국인 학생들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바로 그 백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갓난 아기일 때 접종하는 필수 백신이지만,
한국에서는 특정 종합병원에서나 개인적으로 약을 사서 맞을 수 있다고 하네
(비용은 10만원 안팎)
한국과는 달리 이 모든 백신을 한꺼번에 접종한다
나눠 맞추면 아기가 덜 아플 것 같지만, 그냥 하루 한 번 놀라고 마는 게 낫다고 ㅋ
DTaP와 HiB, B형 간염 백신이 하나로 합쳐진 infanrix 라는 콤보 백신을 쓰기 때문에
8가지를 하루에 다 맞지만 실제로 주사바늘은 3번 꽂히는 셈
세 번 따끔하고 세 번 '으앙'(이라고 쓰지만 사실 '끄으으으아아악')하고 나서
엄청 달달하고 끈끈한 rotateq 을 한 병 원샷하고 모든 접종 완료
스페인에서는 로타바이러스 백신 중 rotarix 는 판매하지 않는다
로타는 필수가 아니라서 병원 원무과에서 내 돈 내고 -70유로- 샀다
한국 사람들이 스페인을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올리브 따서 기름 짜고 소 잡아 하몽이나 만들어 햇빛 아래서 낮잠이나 잔다고;
아무리 스페인이라도 유럽은 유럽이고 EU 국가인지라
이처럼 예방접종에 대해서 한국보다 훨씬 앞서있듯
사회 보장이나 국민 보건에 대해서는 역시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선진국이다
06 December, 2012
seis de diciembre
제 18대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 부재자 투표를 하고 왔다
(부끄럽게도) 이거슨 나의 첫 대선 투표...;
첫번째 기회엔 절친 언니오빠들과 에버랜드에 가서 사파리를 봤고
두번째 기회엔 현재의 신랑님과 회사 안 가는 기쁨에 별 거 없어도 데이트
그렇게 투표일 마다 깨알같이 공휴일처럼 놀아버리고선,
남의 나라에 와서야 갑자기 나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고 나섰으니...
사실 자의로 재외국민 신고를 하고 투표 신청을 한 게 아니라
대사관에 다른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낚인 케이스 =_=
여튼 기표함 님께서 비행기 타고 귀국하시는 일정 따라
투표는 본국보다 빨리 시작한다
바스크지방이나 그란카나리아 같이 멀리서 오는 교민을 위해
주말을 끼어 일주일에 거쳐 길게 길게 운영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territory에 들어가는 셈"
주 스페인 대한민국 대사관은 우리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영상 5~6도 언저리의 추운 날씨라
달곰이도 곰돌이우주복 입히고 풋머프로 단디 포장해서 출발
가는 길에 한국인들을 여럿 만났다
한국 사람은 커녕 아시안도 보기 힘든 동네인데, 다들 투표에 의외로 열정적
대사관 직원은 영사과에 몇 명 뿐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 지원을 하고 있었다
(물론 몇몇은 선관위일테고, 봉사자 한 명은 다름아닌 서울식품 사장님 ㅋㅋㅋ)
본주소 확인을 하다가 '오리지널 강남스타일' 소리도 듣고;
평생 투표 한 번 안 해본 티를 착실히 내느라
도장 뚜껑 열 생각을 못해 투표용지에 빈 샷 날림 ㅋㅋㅋ
영사과 언니랑 달곰이 여권 만드는 거에 대해 얘기 좀 하고 컴백홈
이렇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다음 투표는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꼭 한국에서 하기를...
03 December, 2012
tres de diciembre
팔자도 사납지, 또 마드리드 세관(aduana)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친구 SS양이 달곰이 선물 -옷으로 알고 있었던- 을 보내줬는데
뜬금없이 그게 세관에 잡혔다는 aviso를 받은 것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아, 과자를 넣었단다
서프라이즈로 참치캔까지 ㅋㅋㅋㅋㅋ
(내가 EEVO와 오레가노에 젖은 참치로 김치찌개 끓였다고 페북에 올린 게
그토록 불쌍해보였더냐 ㅋㅋㅋㅋㅋ)
12월 5일까지 오지 않으면 반송한단다 ㅠㅁㅠ
나는 달곰이를 맡기고 가야하고 오빤 한창 시험 준비로 바쁘고
가능한 건 오늘 오전 뿐, 원래 달곰의 예방접종이 있는 날이다
결국 병원 예약까지 바꿨다
정말이지 애 맡길 곳 하나 없는 나는 외롭고 서럽다
힘들게 찾아온 소포상자엔 반가운 마데인코리아 과자들이 잔뜩
맛밤 봉투를 발견한 순간엔 추위에 오그라든 마음이 군밤처럼 따뜻해졌다 ㅋㅋㅋ
오빠는 맛밤 한 봉지를 들고 학교에 가고
나는 닥터유 초코케익을 입에 물고 달곰 앞에서 쪽쪽이 셔틀을 도는 중
(제 손으로 -의도치않게- 쪽쪽이를 낚아채 집어던지기 일쑤)
"SS가 보내준 patagonia의 신칠라 폴리스 점퍼
3m 사이즈라고 되어 있지만 왠지 내년 겨울에도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23 October, 2012
veinte y tres de octubre
짧은 듯 긴 듯 6주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신다
불과 한 달 전인데, 함께 마드리드 관광을 하고 외식하러 다니던 게 아득하다
예정일 새벽 진통이 와서 엄마를 깨우고 밥을 차려달라던
내 인생에서 가장 놀라웠던 그 하루는 더더욱 한참 전으로 느껴진다
복이 많아서,
비행시간만 13시간이 걸리는 먼 타국에서도 엄마에게 의지해서 아기를 낳고
가장 어렵고 소중한 달곰의 신생아 시절을 엄마와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어린 아가를 데리고 공항에 나가는 게 부담스러워
아침 일찍 현관문에서 엄마를 배웅하며 어찌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결혼 전에도 이런 저런 일로 집을 떠나있기도 했고
결혼과 함께 나와 지낸지 벌써 4년 차라 반 년 정도 떨어져 지내는 건 익숙하지만,
그래도 늘 고통스럽고 겪고 싶지 않은 건 '헤어짐'이다
엄마와 오빠가 탄 엘리의 문이 닫히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해가 뜨는 동쪽 하늘의 붉은 빛이 들어오는 방에서 자고 있는 달곰이와
단 둘이 우주 한복판에 떨궈진 그런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12 October, 2012
doce de octubre
한국에서 달곰의 출생신고를 하려면 스페인 출생증명서의 번역이 필요하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고 공증도 필요없는지라,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 ㅎㅎ
오랜만 -몇 년 만..?- 에 ms word를 띄워놓고 테이블질을 하는데,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마구 꼬인다
달곰의 출생국가는 españa, '스페인' 이라고 번역했다
달곰의 출생장소는 hospital la moreleja, '라 모랄레하 병원' 으로 표기
달곰의 집주소는 avenida san luis.. 읭?
avenida는 영어로 avenue
'아베니다 산루이스' 로 적을 것인가, '산루이스 애비뉴' 로 적을 것인가
'아베니다' 를 선택하면 españa 역시 '스페인' 대신 '에스파냐' 라고 해야 맞을 것
그런데 미국에서 출생한 아기들의 경우에는
united states of america를 '유나이티드스테이츠오브아메리카' 가 아니라
'미합중국' 이라고 표기하는 게 정석이란다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거라니...
주스페인 한국대사관은 (하는 일이 없다보니) 가이드라인 따위 있을 리가 없고...
그렇게 치면 스페인은 사실 '스페인왕국' 이란 말이다!!!
그리고 /빠/와 /파/ 같은 된소리와 거센소리 문제까지 겪고 싶진 않으니까
그냥 '스페인' 으로 결정 (쉽게 가자!)
'애비뉴' 나 '아베니다' 를 빼버리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그것도 안 되겠다
lancaster avenue 31을 '랭카스터 애비뉴 #31' 대신 '랭카스터 #31' 이라고 쓴다면
이 랭카스터가 펜실베니아주의 아미쉬들이 사는 랭카스터란 깡촌인지,
필라델피아 근교 메인래인 지역을 관통하는 랭카스터 애비뉴인지 누가 알겠어
결국 고심 끝에 '아베니다 산루이스' 로 낙찰
그럼 아파트 홋수는 어떻게 적지?
'포탈 3 에스칼레라 5 2층 C호' 는 정말 간지도 안 나고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그냥 '3-5-2C호' 라고 간결하게 줄여버렸다
강남구청 호적과 공무원이 스페인식 주소에 대해 알게 뭐람?
26 August, 2012
veinte y seis de agosto
오늘은 el corte inglés goya 지점에 가서 유축기를 사왔다
드디어 "젖 짜는 여자에의 길"로 들어서는구나 ㅎㅎㅎ
내가 구입한 것은 phillips avent의 전동/수동 유축기와 via(240ml) 용기 10개 세트
모두 10%씩 할인을 받아 총 125유로에 구입했다
애초에 주변의 추천을 받았던 제품은 medela swing 이었다
그런데 백화점에 가보니 아벤트 제품들은 10% 세일을 하는 반면에
메델라는 세일도 없고 정가 175유로로 아벤트(120유로)보다 훨씬 비쌌다
당시에는 아벤트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우선 후퇴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메델라에 비해 특별히 나쁠 게 없어 보였다
아벤트에서 나온 보틀워머를 중고로 - 무려 5유로에 - 득템해놓아서,
같은 회사 유축기와 via라는 다목적 용기를 구입하면 전부 호환이 되겠더라
(귀여운 디자인의 suavinex 젖병에 끼워 쓸 셈으로 더블하트 신모유실감 젖꼭지를
몇 개 사왔는데, 아벤트 젖병에도 맞는다고 하니 일석이조!!!)
그래서 며칠 후 다시 백화점을 찾았더니, 전동 유축기가 품절이라는 거다 ㅠ_ㅠ
언제 다시 들어오냐고 물어도 "잘 모르겠다" 는 대답 뿐...
(이 나라 점원들은 참 모르는 게 많다)
재고가 있는지 찾아 줄 생각은 없고 뜬금없는 chicco 따위를 추천하질 않나
아기용품 코너의 세일은 8월 31일까지니까
그 전에 다른 지점에 들릴 일이 있겠지 싶어서 다시 후퇴
그리고 오늘에서야 시내 나간 김에 goya에 들러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via 는 180ml(6oz)와 240ml(8oz) 두 가지 사이즈가 나오는데
180ml 짜리는 용기와 뚜껑이 한 박스 안에 10개 씩 들어있고,
240ml 짜리는 용기와 뚜껑을 10개 씩 따로 팔고 있었다
자질구레하게 나눠진 걸 귀찮아하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180ml 세트를 집었는데
오빠가 이왕에 사는 거 조금 큰 게 활용도가 낫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또 깊이 생각하지 않고 240ml 용기 10개와 뚜껑 10개를 구입했다
그런데 왠걸!
집에 와서 뜯어보니 유축기에 연결하는 어댑터가 안 보이는 거다
어댑터는 180ml 짜리 세트 박스에만 2개 씩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댑터만 따로 팔지 않고 ㅡ_ㅡ
유축기에 연결해서 사용하려고 구입한 건데 이런 낭패가 있나
교환하러 나가는 것도 일이지만, 180ml는 좀 작아서 그냥 240ml로 쓰고 싶은데...
라며 또 폭풍 검색!!!
우리나라 인터넷에는 없는 게 없을테니까!!!
그럼 그렇지, 우리나라에는 없는 게 없다
국산브랜드인 베베락의 이유식 용기가 via와 사이즈가 동일해서
베베락에서 파는 어댑터를 구입해서 사용하면 된다는 반가운 후기를 발견한 것이다
그 길로 베베락 쇼핑몰에 접속해서 어댑터 두 개를 친정으로 배송시켰다
가격도 착하지, 하나에 2000원 꼴
(엄마는 영문도 모르고 계속 내 이름으로 된 택배를 받고 있겠지 ㅋ)
이제 한국어로 된 유축기 사용설명서를 구하면 된다
아벤트가 영국 회사라 영문 설명서가 들어있긴 한데,
영 읽기가 귀찮아서 말이지 =_=
19 August, 2012
diez y nueve de agosto
오빠네 학교 앞 스타벅스에 나와있다
이번 주말 내내 덥다고 하더니,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런데도 별다방 안에는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놨다
따뜻한 카라멜마키아또에 딸기 머핀을 시켜놓고 그저 느긋하다
여기서 일하는 애들은 영어를 곧잘 하는 편인데도,
주문 할 때 왠지 스페인어로 해야만 할 것 같은.. 영어로 해도 충분히 친절한데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스페인 완전 구려" 라는 말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사는 게 어떠냐는 질문을 받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갈 때 마다..
그런데 오히려 다시 돌아와서야 스페인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이 엄청 그리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ㅋㅋㅋ
(굳이 그리운 게 있다면.. 역시나 온갖 빵집과 짜장면 정도? ㅋㅋㅋ)
마드리드에 대한 나의 편견이 얼마나 심했던지,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스페인 욕을 했던 게 좀 무안해진다
그래도 내가 선택해서 사는 곳인데 부정적인 이야기만 잔뜩 날리고 왔으니..
비록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내 얼굴에 침 뱉은 기분
막상 와보니 날씨도 좋고 한국에 비해 특별히 불편한 걸 모르겠다
부모님과 지내는 건 좋은 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많은데,
온전한 자유와 독립을 되찾으니 이렇게 홀가분 할 줄이야 ㅋㅋ
날씨가 이렇게 좋은 줄은 몰랐다
매일같이 화창하지만 습하지 않다는 건 날씨가 가진 최고의 축복이다
햇빛은 강렬하지만 그늘에 서면 선선하고, 밤바람은 에어컨보다도 낫다
안방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자면 절로 쾌면이 몰려온다
여전히 시켜먹을 곳 없고, 간단한 외식거리 없고, 커피숍도 스타벅스 뿐이지만
날씨 하나 때문에라도 '여름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 여름엔 너무 고생했다고...
막달을 스페인에서 지내게 된 건 천만다행인 듯 싶다
(대신 너무 건조해서 배가 쉽게 틀까.. 그게 좀 걱정이랄까)
우리집 역시 너무 마음에 든다
역시 좁긴 - 하긴 뭐 그 사이에 갑자기 면적이 늘어날 리가; - 엄청나게 좁지만,
높은 천장과 두꺼운 벽 덕분에 하루종일 서늘하다
온도만 맞춰놓으면 자동으로 on/off를 반복하는 에어컨 역시 잘 돌아간다
비록 너무 좁아서(ㅠㅠ) 달곰이 물건이 여전히 산처럼 쌓여있지만..
우리에겐 ikea가 있으니까.. 수납공간은 천천히 고민해봐야지
작년에는 여름이 막 지나갈 무렵에 들어와서 여름 과일 구경을 못 했는데,
스페인 수박이 이렇게 맛있는 줄 미처 몰랐다
sandia negra 라는 흑피 수박을 샀는데 껍질이 얇고 씨가 없다
속살은 새빨갛다 못해 체리빛 +_+ 정말 달고 시원하다
요즘은 수박과 함께 paraguayo 라고 부르는 '납작 복숭아'에 올인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선 당연히 남미 출신 쯤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이없게도 중국 품종이란다.. 한국에선 본 적도 없는데?!?
황도와 백도 사이, 분명 털복숭아 종족이긴 한데 과육이 흐물거리지 않고 쫀쫀하다
신맛이나 물맛이 전혀 없이 복숭아맛 주스를 굳혀놓은 것만 같아서
물컹거리는 백도를 좋아하지 않는 오빠도 잘 먹는다
참,
lubina라고 부르는 작은 농어(?)를 para fillete로 손질해서 팔길래
밑져야 본전으로 사다가 오븐에 소금구이를 해봤는데 놀랍게 맛있었다
고등어 철이 끝나서 구워먹을 생선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런 촉촉한 흰살 생선이 있을 줄이야 - 농어 철 끝나기 전에 더 사다 먹어야지
30 July, 2012
treinta de julio
어젯밤에는 큰 맘 먹고 영화관에 다녀왔다
시집 건너편 청담 씨네시티 CGV에서 <다크나이트 라이즈> 저녁 9시 25분
만삭 임산부는 길고 긴 영화 도중에 화장실을 가야 할 지도 모르고
오래 앉아있는게 불편하면 일어서기도 해야하니까.. 라며
앞뒤좌우 뻥 뚤린 좌석을 찾다보니 kia cinema의 6층 소파 좌석이 좋을 것 같았다
배트카가 내뿜는 돌비사운드에 달곰이 놀랄까봐 담요까지 챙겨다 배를 덮었다
그치만 소리와 진동을 담요로 막을 수 있을리가 없지
'빵' 소리 한 번 나면 달곰이가 나에게 발차기 어택 한 번 ㅠ_ㅠ
배트맨이랑 베인이 티격태격하는 육탄전 중에는 태동이 너무 심했다
딸곰에게 정말 정말 미안했다
항상 기대치보다 못한 i)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ii)배트맨 시리즈 를 굳이 보겠다고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건 아닌가 싶지만...
달곰아, 네가 나오는 순간부터 엄마는 완전히 집에 묶인 몸이야
외할머니에게 널 맡기고 영화 한 편 보고 오는 건 머나먼 한국 이야기일 뿐 ㅠ
그러니까 한 번만 봐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했는데
이토록 서러운 내 맘을 알아주려나 모르겠다 ㅋㅋ
그나저나 kia cinema 6층 좌석은 짱 구렸음 o_O
소파는 이미 쿠션이 푹 꺼져서 높이가 균일하지 못해 어디에 앉아도 불편하고
시뻘건 벨벳 패브릭은 맨살에 까시럽고 덥기도 엄청 더웠다
좌측 P열과 우측 Q열 사이를 영사실이 가로막고 있어서
반대편 음향이 닿질 않는다.. 그야말로 한 쪽 고장난 이어폰 낀 효과 ㅋㅋㅋ
놀란씨는 72분 분량을 IMAX 필름으로 촬영했다는데
이 상영관 스크린은 IMAX의 1/3 사이즈...?
그래도 "아 용산으로 갈 껄" 이라고 후회할 필요가 없었던 건
영화가 생각보다 너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ㅋㅋㅋ
나의 마지막 영화 관람 찬스를 베인 따위의 허접한 악역 캐릭터가 써버리다니!!!
이제 영화는... 티플에서 다운받아 집에서 TV로 보자
11 June, 2012
once de junio
시차 적응도 어느 정도 끝나고 100%까진 아니더라도 체력도 회복했다
한국에 도착한 지 4일 째
언제나 그렇듯이 별로 한 게 없는데도 시간은 휙휙 지나간다
10개월 만에 돌아온 친정집 내 방에는
엄마가 준비해놓은 비오템의 '비오베르제뛰르(-_-)'와 오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일과 크림을 섞어 발라보니 이거슨 신세계!!!
그동안 사용했던 20유로 짜리 weleda 오일이 원망스러웠다
물론 20유로와 14만원을 비교하는 건 무리데스
사서 쓸 돈이 있어도 살 물건이 없는 마드리드의 척박함이 다시 한 번 강조된다
늘 그렇듯이 인터넷도 빠르고 3G도 빠르다
(근데 잠실롯데면세점에 갔더니 SKT의 3G는 안 터지더라고?)
쭉 그리워했던 커피빈의 아이스블렌디드는 생각보다 별로였지만
하겐다즈에서 파는 리얼초코드링크가 올 여름 my fave drink로 급부상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한국 여자들이 정말 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스페인에서 와서 보니, 한국 여자들은 그냥 못 생기고 몸매도 구리다
그녀들은 페넬로페 크루즈가 아니니까
얼굴은 전부 허여멀건하고 옷차림은 묘하게 촌스러워서 눈에 거슬린다
스페인도 결코 세련된 나라가 아닌데, 내 눈이 삔걸까?
며칠 동안 요가와 스트레칭을 쉬었더니 매일 밤 다리가 퉁퉁 붓는다
07 June, 2012
siete de junio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임산부'라는 타이틀 덕분에 느긋한 여행을 즐기고(?) 있다
체크인 줄 설 필요도 없고, 게이트에서 탑승 시에도 퍼스트 승객보다 먼저 ㅋ
그저 티켓 내밀며 "estoy embarazada" 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달곰이, 엄마가 진심으로 고마워 ㅋㅋㅋ
제일 먼저 탄 텅텅 빈 비행기에서도.. 승무원이 짐을 들어주고
(세 좌석이 한 줄인데) 옆좌석을 전부 블락해놓아서
팔걸이 올리고 다리 쭉 뻗고 앉아 맥북이나 뚜닥거리니 이리 좋을 수가 +_+
베개를 4개씩이나 챙겨주고 커피니 물이니 지나갔다가도 돌아와서 물어봐준다
sky elite로 체크인 했으니 짐도 빨리 나오겠지 ㅋ
사실 나만 느긋하게 가는 게 아니라, 이 항공편 자체가 참 널럴하다
세 좌석 다 차지하고 앉아가는 게 나 뿐이 아니라죠
유일하게 복닥대는 곳은 맨 뒷쪽에 몰려앉은 단체관광객 지구
앞쪽은 이렇게 텅텅 비는데 저긴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어…
그래도 다들 유쾌한 걸 보니 스페인 여행이 무척 마음에 들었나보다
<beyond>에는 가우디, <morning calm>에는 페루인 쉐프 gastón의 기사가 실렸다
매일같이 놀러다니는 c/ coello에 있는 hotel unico에 대한 기사도 읽었다
여기도 스페인, 저기도 스페인, 스페인 스페인 스페인
스페인에 온 지 꼬박 280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돌아간다기 보단, 잠시 놀러 가는 거지만;)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스페인인데, 막상 발을 떼려니 애틋한 마음이 드네
아마도 오빠를 남기고 혼자 가는 귀국길이라 그런 듯 싶다
이륙하기 직전 활주로로 이동하면서 별로 멀지도 않은 거리에
마드리드 북부지구의 고층빌딩 4개 세트가 보이더라
그보다 가까운 곳에 우리집이 있고, 오빠는 이미 집에 도착해서 쉬고 있겠지
어제 마지막 저녁식사를 라면으로 때운게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냉동밥을 10끼니나 - 오곡밥으로!- 만들어놓고 나왔으니까
나 없는 동안에 제대로 챙겨먹었으면 좋겠네
어제 날짜로 결혼한 지 꼭 3년이 되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너무 사이가 좋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서 어서 7월 13일이 되기를
비빔밥을 먹으면서 - 디저트가 찹쌀떡이 아니었어 흥 - 가우디 관련 다큐를 보고
비행기 실내등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젯밤에 3~4시간 밖에 못 자서 슬슬 드러누워 자고 싶은데
이거 혹시 낮비행기라 불 안 꺼주는 거 아냐?!
아무리 배불뚝이라도 남들 다 보는데 드러눕는 건 좀 부끄럽단 말이야 =_=
앞으로 9시간 남았다
6시간이 조금 못 되게 남은 시점, 카자흐스탄 북부 러시아 상공을 날고 있다
6시간 남았다니 많이 온 것 같은데 이제 러시아.. 읭?
지난 2년 간 14시간 비행거리를 자랑하는 뉴욕 노선에 너무 익숙해졌나보다
베개 4개를 요리조리 배치하고 자보니 생각보다 편하다
특히 ABC열이라 창문으로 머리를 향하면 자연스레 왼쪽으로 누울 수 있다
(임산부는 왼쪽으로 눕는 게 정법이므로 이건 중요체크)
중간에 터뷸런스 때문에 벨트를 메라고 방송이 나오면 일어나야하지만
약 3시간 정도 선잠을 자면서 휴식다운 휴식을 했다
앉은 자세로만 버틴다면 1시간도 채 못 되어 다리가 퉁퉁 부을 것 같다
요즘 들어 팔이 눌리면 곧장 손이 붓는 둥 붓기가 심상치 않거든
매일 밤낮으로 스트레칭과 요가를 열심히 하는 덕에 체중 조절은 되고 있지만
원래 잘 붓는 편인 체질은 어떻게 할 수 없나보다
아 비행기 전체가 신라면 컵 냄새로 짭쪼롬하다
배도 안 고픈데 괜히 나도 먹고싶잖아 'ㅅ'
그치만 임산부라고 이래저래 배려받고 있는데 라면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직 임신이 뭔지 모르는 젊은 승무원들은 날 정신나간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그냥 싸들고 온 크림치즈스틱이나 먹어야겠다
오빠가 맥북에 영화 <mirror mirror>를 넣어줬으니, 이걸로 또 2시간!!!
결국 냄새의 유혹에 위가 각성하고 '배가 고프다'라는 신호를 쏘아대기에
신라면 컵 하나 뚝딱 ㅋㅋㅋ
영화도 다 봤다 ㅋㅋㅋ
그래서 이제 4시간 남았군요.. 이제 다시 좀 자볼까?
착륙 1시간 전
기다리다보면 시계는 잘도 돌아가며 시간은 멈추지 않는 법이다
저녁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밍기적거렸다
모로 누웠다가 똑바로 누웠다가
달곰이가 격한 태동을 할 때 마다 쓰담쓰담 다독여주기도 하고
저녁밥은 - 중화풍 소고기요리를 골랐는데 - 대한항공에서 먹은 중 최악에 당첨
나 정말 기내식 잘 먹는 편인데 말이지...
미리 신라면을 먹어두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는 그런 맛이었다
이륙이 10분 정도 지연되긴 했었지만
무슨 연유인지 도착 예정시간은 야금야금 늦어져서 이제 6시에 다다랐다
세관에서 별 일 없기를.. 너무 늦어지면 아빠 출근시간이 걸린다
집에 가서 네스프레소를 쨔잔! 하고 꺼내놓을 생각에 즐겁다
아 그 전에 엄마폰을 빌려 오빠에게 전화를 해야지
거지같은 유럽 시차가 드디어 우리의 소통을 방해하는구나 -_-
배가 한번도 안 뭉치고 특별히 불편한 것도 없었다
달곰이는 저도 모르는 새에 스페인에 이태리, 한국까지 잘도 쏘다니는구나
튼튼한 아기라서 장거리 비행 정도는 너끈한가보다
생후에도 줄기차게 비행기 신세를 질테니 미리 적응해두렴
착륙 사인이 뜨기 전까지 좀 더 눈을 붙여야겠다
06 June, 2012
seis de junio
내일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짐을 싸기 전에 대강 헤아려보니 가지고 갈 옷이나 신발이 턱없이 적었다
맞는 바지가 두어 벌 뿐이고 힐이나 웻지샌들은 무용지물이니...
밀라노 peck에서 구입했던 cannubi boschis를 들고가야해서 가방을 꽉 채워야하는데
(가방에 빈 공간이 있으면 와인병이 고정되지 않아 아무래도 위험하다)
대체 "있는 것이 없는" 스페인에서 무얼 사가는 것이 좋을까?
라고 고민하다가 긴급히 엄마 선물로 nespresso를 사겠다고 마음 먹었다
캡슐이 아니라, 심지어 머신까지 ㅋㅋㅋ
급히 동네 el corte inglés에 가보니 캡슐 바우처를 주는 행사는 무려 이틀 전에 끝났단다
하하하하 이렇게 해서 40유로 어치의 캡슐은 가뿐히 날아가고 -_-
그러거나 말거나 이왕에 마음을 먹은 거,
c/ velazquez에 있는 부티크에 가서 krups pixie 머신과 캡슐을 구입했다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것 보다 부티크로 가는 편이 택스 환급 받기 쉽다
머신 가격이 149유로, 캡슐은 10개 들이 한 박스에 3.55~3.95유로 선
(유럽이나 미국 가격에 비해 한국은... 폭리 폭리)
엄마가 어떤 캡슐을 마음에 들어할지 알 수 없으니
intensity가 센 녀석들을 위주로 한 줄 씩, 이번 한정인 naora도 끼워넣었다
어차피 머신을 사면 캡슐 16개로 구성된 샘플러가 있으니까
그 중에 취향이 결정되면 한 달 뒤에 후발대로 오는 오빠 편에 왕창 공수해야지
스페인에서 싼 건 아무것도 없어!!!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는데
네소 머신만 구비하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상자를 전부 뜯어내고 뾱뾱비닐로 싸서 기내용 캐리어에 넣어보니 가뿐히 들어간다
엄마는 "아니 뭐 이런 걸 다!" 라던지 "돈 아껴야지 이런 건 왜!"
라고 하면서도 내심 속으로 좋아할 게 분명하다 ㅋㅋㅋ
우리집 illy는 여전히 쌩쌩하지만
연말 즈음에 네소머신 세일을 많이 하니까 그 때 우리 것도 하나 질러볼까
illy 캡슐의 유일한 단점인 'tiny variations'를 커버할 수 있을지도 ㅎㅎ
20 May, 2012
veinte de mayo
출산준비물 리스트를 완성했다 (물론 끊임없이 revise 되겠지만)
손에 익지 않은 맥 OS용 엑셀로 작성하느라 오후시간을 꼬박 써야했다
사실 도구적인 문제보다, 생각보다 작성 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구입처에 따라서 한국 / 스페인 / 미국으로 시트를 각각 나눠야 하고
그에 따라 currency 역시 3가지로 분류해야 한다
한국에서 구입해야 하는 품목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스페인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젖병 젖꼭지 같은 것 조차도
여기서 chicco를 사기보다는 한국에서 피죤 신모유실감을 공수하고 싶은 게 내 욕심
영국 브랜드인 tubtrugs라는 친환경 고무바구니를 스페인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거대한 바구니를 두 개 씩이나 한국에서 이고 오게 생겼다
(amazon UK에 있긴 있는데 셀러가 스페인으로는 못 보내준단다!!!)
달곰이를 데리고 여행을 많이 할 생각인데다 장거리 비행기 탈 일도 많은 터라
일회용 젖병이 필수 아이템인데 유럽에선 그런 거 안 팔아요
너희들, 환경을 생각하는건가 -_-
그래서 또 한국에서 upis의 휴대용 젖병 + 라이닝을 대량으로 구입 예정
"가능하면 현지 조달" 이 내 외국 생활의 모토였는데,
나도 오빠도 아닌 달곰이를 위하다보니 도저히 포기 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26 April, 2012
veinte y seis de abril
마드리드의 봄은 썩 아름답지 못한 봄인가보다
꽃나무가 없는 사막 한복판이니 꽃놀이는 바라지도 않지만 어찌 이리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지
메마른 사막에도 우기가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여기에서야 진실이 된다
유럽다운 두꺼운 구름이 빈틈없이 깔려 하루종일 어둑어둑하니
'태양의 나라'에 산다며 부러워하는 속 모르는 지인들에게는 답답할 뿐 이다
아침 일찍 세무서에 볼 일을 나갈 작정이었지만 푹 젖은 바깥 모습에 질려 다시 드러누웠다
연한 라떼를 한 잔 만들고 아점 시간이 되도록 책만 읽었다
아점상으로 근대된장국을 덥히고 달걀프라이를 지져냈다
왠지 어릴 적 부터 아침 된장국엔 달걀프라이거나 슬라이스치즈여야만 하니까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떠먹을 뜨끈한 국을 미리 끓여놓은 야물딱진 나에게 감탄했다
냉동 식빵 조각을 토스트해서 잼 발라 먹기엔 너무 어둡다
브레드머신을 사서 아침마다 갓 구운 솜살식빵을 먹을 수 있다면 좀 나으려나?
(이참에 검색해보니 필립스 것이 100유로.. 나쁘지 않네)
저녁 설거지에 치여 허우적대는 중에 오빠가 담배를 피러 나가는 소리가 났다
"D가 뭐 줄 거 있다고 만나자고 하네?"
한국 다녀온 D씨의 와이프가 뭔가 들고 왔나보다
미리 부탁해뒀던 세탁조 청소 세제 외에 뭐가 더 있으려나-
하고 마치 어린 시절 출장 다녀오는 아빠를, 아니 아빠의 선물을 기대하던 것 마냥 조금 설렜다
나가놀지도 않고 집에 진득히 들어앉아 언제 올 지 모를 아빠를 기다리는 만큼
아빠는 결코 나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법이 없었다
(지금도 비싸서 쉬이 못 사먹는) 린트 초콜렛이 여러 통, 온갖 치즈에 자잘한 장난감
출장가방에서 나오지 않고선 도통 볼 수 없는 린트를 그토록 기다렸나보다
오빠가 들고 올 J의 봉투에는 어떤 린트가 들어있을까?
이렇게 거창한 기대는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지만, 그만 거기까지
봉투가 소박해서는 문제가 안 되지만, 내용물에 웃음이 났다
얼었던 것이 막 녹은 듯한 나폴레옹(& 조세핀) 빵집의 카스테라 하나, 크림빵 두 개가 들어있었다
소라모양 초코크림빵과 조개모양 슈크림빵에 오빠는 웃어버렸다
나는 철저히 김영모 과자점 토박이로 컸다
그 외에는 논현동 이모댁에 갈 때 마다 들리는 wien 정도가 있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아이들처럼 나폴레옹을 숭배하지 않았다
나폴레옹 팥빵이 맛있다고 한들, wien 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련된 정통 프랑스 파티쉐리로 발전한 영모아저씨네 가게와 달리
나폴레옹은 여전히 젤리 뿌린 팥빙수와 소라빵을 판다
그 토종스러움과, 그에 반하는 사악한 가격대에 나폴레옹을 싫어하는데
6개월이 넘도록 한국빵을 그리워하는 내 앞에 초코크림으로 구멍을 메운 소라빵이 나타난 게다
사실 나는 초코크림도 슈크림도 전연 먹지 않는데 ㅎㅎㅎ
프랑크푸르트에서 오는 린트를 기다리는 내 앞에 누가 가나초콜렛을 드민 기분은
왠지 모르게 웃기고 웃기고 또 우스웠다
16 April, 2012
diez y seis de abril
故 박완서씨의 단편집 <그 여자네 집>을 읽었다
처음 박완서를 접한 건 대학교 다닐 때였나, 엄마가 가지고 있던 책을 통해서였지만
자식을 출가시키고 인생을 접어가는 장년(또는 노년)층의 시선으로 세상을 훑는 감정선을
20대 초반의 내가 캐치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 후 고작 몇 년 지났다고 얼마나 더 이해하겠나 싶지만,
그래도 곧 할머니가 되는 엄마를 둔, 출가한 딸의 입장이 되니 뭔가 달라지긴 한 것 같다
주로 '육십이 넘고 나면 엄마도 이런 여한을 가질까' 라고 상상하며 읽었다
박완서 -이제부터 故 생략- 씨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H군의 외할머니이다
<한 말씀만 하소서>에 나오는 딸네 가족이 H군의 가족
박완서씨가 결사 반대했던 '촌놈과의 결혼'을 강행하고 부산서 살던 딸이 H의 어머니인 것이다
그 '촌놈'께서 고향 근처에 교수직을 얻으면서 서울 태생의 H는 한동안 부산에서 살았다
그래서 H는 서울말 네이티브지만 부산말에도 능숙한 bi-lingual 이었다
박완서씨의 자녀가 모두 명문대를 진학 한 것 처럼, 손자 H도 서울대 경영학부를 나왔다
H는 나랑 동갑이지만, 연대를 다니다가 2년 만에 때려치고 다시 수능을 보고
두 살 어린 내 동생과 03학번 과 동기가 되었다
출발은 늦었지만 그는 졸업하기 전에 CPA를 따고 유수의 회계법인에 취직했고
오래 사귀던 여자친구는 한 번의 실패 없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주변에서는 그야말로 수재 커플이라며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H는 잘난 만큼 착실하게 잘난 체를 했다
고압적인 말투나 '니가 무어든 내 알 바 아냐'라는 듯 한 자세는 내 신경을 거슬렀다
그러나 우리는 한 다리 건너 아는, 술자리에서나 마주치던 사이라 그 꼴을 자주 볼 것도 없었다
그는 저렴하지만 안주가 맛있는 술집을 꽤 많이 알고 있었는데
덕분에 가보았던 서초동의 이자카야는 몇 년간 내 단골집이 되기도 했다
그 집 명물인 소고기튀김을 먹으면서 H군의 할머니가 박완서씨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얘네 아빠가 OO치과 원장님이야"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들은 나와 달리
(아버지가 문학교수인) 내 친구 E양은 한동안 그에게 불같은 관심을 보였었다
시니컬한 H는 E에게 관심이 0.1g도 없었고..
H를 더 볼 일이 없어진 후에도 나와 E는 소고기튀김에 따뜻한 도쿠리를 참 많이도 마셨다
속표지의 박완서씨 사진을 보니 -여태껏 얼굴을 몰랐다- H군이랑 판박이시네
지난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지나가며 보니 그 이자카야는 없어진 듯 했다
H가 알려주기도 했지만, 사실 친하게 지내던 서초동 패밀리들도 자주 모이던 집이었다
회사를 다닐 적에 오빠와도 꾸준히 드나들며 온갖 안주를 축냈고
푸근한 분위기의 동네 선술집을 찾던 엄마 아빠까지 고정 손님이 되셨다
우리같은 젊은 애들은 많이 마셔봐야 10만원도 안 나올 술집인데,
엄마 아빠의 패거리가 몰려가서 48만원 어치의 술과 안주를 시킨 적이 있다고 했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아사히 맥주를 들통 째로 시켜버렸다나
대박손님(?)에 황망해진 마스터가 온갖 스페셜 안주를 왕창 서비스하고
의외로 사소한 것에 쉽게 감동하는 아빠가 팁 명목으로 또 몇 장을 뿌리고 왔다고 하니
두런두런하고 소소한 분위기의 술집에서 그게 왠 해프닝인지 ㅎㅎ
일본식 춘화가 많이 걸려있었는데, 얼큰해진 엄마는 그걸 보며 좋아라 깔깔대셨겠지
평소에 소심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극도로 흥분하는 엄마는
그 날 이자카야가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아사히 맥주통 이야기를 하고 하고 또 하셨다
그런 엄마는 환갑이 지난 후 자신의 삶을 어떠한 시선으로 돌아보실까?
엄마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 여자네 집>에 나오는 딸년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결코 나쁜 자식은 아니지만 어딘가 굴비처럼 말라 비틀어진 애엄마가 되어 있을까
할머니 티가 나기 시작하면 젊은 애들이 모이는 술집에 드나들기는 눈치가 보일텐데
그런 소박한 일탈의 욕구는 누가 충족시켜드리나
나나 사위가, 깍듯한 동생이, 누군지도 모를 며느리가 할 수 있을까
오빠와 함께 엄마 아빠를 모시고 소고기튀김이나 한 번 먹으러 갈 껄 그랬다
06 March, 2012
seis de marzo
컴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아서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볼까 하고 눈을 돌려보지만
읽을 책도 마땅치 않고, 격렬하게 청소나 운동을 할 수도 없으니 이내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몇 권 안 되는 태교 및 임신/출산 관련 서적은 이미 다 뗀 지 오래되었고,
아이패드에 받아놓은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도 다 읽었다
소싯 적에 1,200번은 읽은 터라 대사까지 알고 있는데도 또 읽었음 ㅠ
선물받은 <심야식당> 여덟 권도 세 번 씩 정독한 것 같다
폰 끼고 누워서 뒹구는 것 보다 차라리 TV를 보는 게 더 '생산적'일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집엔 TV는 모니터 일 뿐, 채널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
42인치 사이즈 LED, 비싼 모니터
미국에서 모셔오는 바람에 전송방식이 유럽 기준에 맞지 않아 (미국: NTSC, 유럽: PAL)
방송을 수신하려면 AV 컨버터를 구입해서 설치해야 했지만
'어차피 들리지도 않는 스페인어 방송, 비싼 돈 주고 뭐하러 봐'라고 판단해서 반려
비싼 TV군께서는 다운받은 영상 파일만 돌리는 모니터군으로 제 역할을 변경하셔야 했다
축구채널이라도 볼 수 있으면 가입을 할까 했지만,
약아빠진 스페인 방송국들은 la liga를 비롯한 주요 리그 경기를 한 채널에 몰아놓고
기본 채널도 아닌,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선택 채널로 편성을 해놓았다
더군다나 위성 채널!!! 접시를 달아야 해!!!
그래서 '스페인에 가면 축구를 실컷 보겠지~'라던 우리의 부푼 꿈은 물거품이 되고...
신의 은총으로 인터넷은 제법 빨라 다운 받는 건 문제 없다
(막상 난 제대로 할 줄 모르지만 오빠가 빼놓지 않고 다 받아주니까 ㅋㅋㅋ)
수요일엔 <라스> <해품달>, 목요일엔 <해투3>, 금요일엔 <보코>, 토요일엔 <무도>,
일요일엔 <케이팝스타> <런닝맨>...
여기에 <walking dead>, <spartacus>, <hawaii five-0> 등등 미드 몇 편
간간히 영화나 다큐를 다운 받아서 보는 게 우리 부부의 낙이다
그래도 가끔, 혼자 있어 집이 너무 적막할 때 TV 소리라도 들리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전기 잡아먹는 2kw 변압기를 하루종일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
btw, 방송국들이 죄다 파업을 해서 TV군이 무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요즘은 너무 슬프다
재방도 본방도 광고도 없는 우리는 너무 외로워요 ㅠ_ㅠ
02 March, 2012
dos de marzo
"baby on board" (아기가 타고 있음)
"bebé a bordo" (아기가 타고 있음)
"baby in (the) car" (차 속에 들어있는 아기)
미국에 있을 때 미쿠에서 "baby in the car" 패러디 게시물을 보고 빵 터졌다가
한국에 갔을 때 정말로 저렇게 써붙인 차들이 돌아다니는 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물론 아기가 있는 내 친구들 중에도 저 표지를 붙이고 다니는 이들이 있겠지마는..
웃긴 건 웃긴 거고 틀린 건 틀린 거지 =_=
safety 1st에서 나오는 미국 정식 규격 "baby on board" 표지판을 구입했다
노란 마름모 꼴에 검은 글씨, 미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것
(핑크나 하늘색도 파는데, 달곰이 성별을 모르니 원..)

콩글리쉬 "baby in car" 역시 디자인은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베낀 거니까 당연하겠지
이게 왜 틀렸나고 반문한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냥 이상한 표현이니까
"차 속에 있는 아기", 물론 이걸로도 차 속에 아기가 있다는 의미는 전달 할 수 있겠지만
우리말로도 "차 속에 아기"가 아니라, "아기가 타고 있어요" 라고 표현하잖아
그런 차이다
"baby in car"는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상황에 적합한 표현은 아니라는 것
이런 웃기는 표지판을 만들어 낸 건 다름아닌 방사능국 원숭이들이다
일본식으로 뒤틀린 영어표현이 우리나라로 그대로 들어온 것
영어에 취약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baby on board"라는 관용어구 표현 보다는
"baby in car"라는 직관적(?)이고 저차원적인 표현이 더 빨리 눈에 들어왔던 거지
근데, 영어권에서 오리지널 표지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baby in car"의 표현 자체의 오류는 간파하지 못하면서 자꾸 문법을 들먹이더라 ㅋㅋㅋ
왜 baby 앞에 a가 없냐고
car 앞에 the를 붙이는 게 옳으냐
안쓰럽다, 중학교 때 성문기초영어 관사편을 너무 열심히 공부하셨어 들 ㅠ_ㅠ
(네이년에서 검색해봤다가 빵 터졌음 ㅋㅋㅋ)
스페인어 표현으로는 "bebé a bordo", 영어 표현과 동일하다
여기서 주로 쓸테니까 스페인어로 쓰인 걸 사는 편이 덜 위험할 것 같지만
(i 영어를 해석하지 못하는 운전자를 만난 경우, ii 한눈에 외국인으로 낙인 찍히는 경우?)
붙이고 다니는 차들은 간간히 보이는데 막상 어디서 파는지 모르겠다
이럴 땐 그냥 만만하게 미국 아마존에서 주문을 하는 거다 ㅋㅋㅋ
정 스페인어 표지가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면, 미국에서 파는 히스패닉 용을 사면 되겠지?
31 January, 2012
treinta y uno de enero
A언니네 집에 여럿이 모여 수제비를 나눠먹던 중, A언니가 떠나버리면 어쩌나.. 싶었다
작년 4월 intake 멤버들은 4월 말 졸업식이 끝나는대로 5월 중에 떠난다고 하고
A언니는 예정대로 4월 초에는 이미 폴란드로 가버리고 없겠지
결국 왕래 없는 이웃 하나 빼고는 J랑 나랑 둘이 남아버릴텐데
요즘 A언니가 나서지 않아 'IE 부인회(?)'는 이미 해산 상태가 되어 버렸고
매주 가지던 모임이 없어져버리니 생활이 좀 더 무료해 진 것도 사실이다
아주 가깝게 지내진 않아도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떠난 후의 공허함을 또 느끼긴 싫은데 -_-
한국으로 완전히 귀국하기 전까지, 또 몇 해를 더 견디며 지내려나
한국 가는 시기를 5월 초로 잡고 7월 중순 즈음 돌아오는 걸로 해야겠다
혼자 가 있는 중간에 오빠가 들어와 함께 지내다가 함께 돌아오는 걸로
(IE 여름방학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6월 중순엔 시작하겠지?)
NIE 갱신 예약이 8월부터 가능하니까 그 전에는 오는 게 좋겠고
텅 빈 5월의 마드리드를 느낄 새도 없이 나도 한국으로 가서 호강 좀 하다 오는 거다 ㅋㅋ
아, artisee 모카쉬폰케익이 꿈에 보일 정도로 먹고 싶었는데
나 들어갔을 때 이미 아띠제 문 다 닫는 거 아냐 혹시?! 망할 놈의 나라 같으니라고..
28 October, 2011
veinte y ocho de octubre
한국에서는 x japan이 첫 -그리고 마지막이 될 듯한- 내한 공연이 있었다
그의 팬들에게는 역사적인 날이 되겠지
hide도 없고 taiji도 없지만 그래도 팬들은 we are x 를 외쳐대며 감동했으려나
일음은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는 편이고
더군다나 (내 기준에서) 촌스럽기 그지 없는 비주얼의 x는 '꼭 공연을 보고 싶은' 밴드가
아니긴 했지만 워낙 힘들게 내한했다고 하니 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 하루 전에 검색해보니 s석 티켓이 40%나 할인되어서 올라와 있고..
그래 뭐 대형 밴드이고 전설이긴 하지만, 전설은 전설이니까
이미 그들도 과거로 치워지고 만거다
과거의 밴드로 분류되는 뮤지션들이 현재로 넘어와 공연을 하는 걸 보면
솔직한 심정으로 안쓰럽다
짠하기도 하다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30대 이상이었다는 목격담도 짠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의 영화를 현재까지 유지할 능력이 안된다면 공연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저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건데..
하지만 현실에서 뮤지션이란 본디 전성기가 있고,
그 후에 초라해지고 싶지 않으면 요절(혹은 미스테리어스한 죽음)을 택하거나
갑작스런 기자회견과 해체를 감행해야 한다
그리고 잘 쌓아올린 공든 탑을 오랜만의 재결합 따위로 무너뜨리지 말 것
음악의 역사의 흐름과 함께 꾸준히 다져진 관행이니 지키는 편이 좋다
hide는 최고의 전설이 되었지만 혼자 남은 yoshiki는 억지로 애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잖아
<양철북>에 나오는 소년 마냥 그는 무엇을 위해 북을 두드리는 걸까
19 October, 2011
diez y nueve de octubre
18일 어제는 축구 경기를 보러 다녀왔다
물론, 당연히, estadio santiago bernabeú에서 열리는 real madrid의 경기
champs 조별리그, 홈으로 olympique lyonnais가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la liga 경기 중 인기 없는 팀과의 대전이나 champs 초반의 조별리그 경기라야
표값이 싼 편이다 - affordable한 가격이라고나 할까
... 총알이 넉넉하다면 왜 el clásico를 못 보겠어
TV로 축구 보는 걸 썩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특히 한국 축구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신기하게도 유럽 축구에 대해서는 꽤° 아는 편이다
어떻게 아는 걸까... 게임?
(° 꽤는 '보편적인' 한국 여성이 가진 축구에 대한 지식의 평균 이상이라는 얘기)
그리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시리 마음을 주는 팀은
barcelona, manchester united, bayern münchen, inter milan
좋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르샤는 잘 해서, 맨유는 가봤으니까, 뮌헨은 옷이 예뻐서, 인테르는 피렐리 ♥
축구 매니아들이 보기엔 얼토당토 않겠지만
원래 호감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꽃 피는 법이다
호감형 리스트에 real madrid가 없다
바르샤가 좋다고 하면서 레알도 좋아요 라고 하기 어렵거니와
유니폼에 박힌 스폰서 bwin의 무식한 로고가 심한 시각적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맨유 스폰서가 더이상 vodafone이 아니라는 사실이
맨유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을 좀먹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마드리드 이주를 계기로 좀 더 연고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축구를 사랑하는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kaká의 이름을 새긴 공식 져지도 구입했다
사실 연고팀이 별 볼 일 없는 팀이었다면 과연 응원할 수 있었을까?
연고팀이 real betis라면 과연 누가 나를 부러워할까?
그런 만큼, real madrid인 만큼, 무조건적인 응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여름 한 술자리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citizens bank stadium(phillies 전용 구장)
사진을 꺼내 자랑 한 적이 있었다
축구 못지 않게 야구도 좋아하는 G사장과 S집사는 그 작은 사진 한 장에 감동해서
곧 santiago bernabeú에까지 입성할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사실 다른 이들의 부러움은 그다지 대수로운 건 아니지만
가끔은 오랜 떠돌이 생활에 부스터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경기 관람 소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미치도록 재미나고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지는 감동이 있었다
85,000명이 가득 들어찬 푸른 빛깔의 대형 구장
짧게 깎인 파란 잔디에 깔린 거대한 champs 로고
각각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을 등에 새긴 깨알같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가장 저렴한 좌석에는 '내려다본다'라는 동사가 적합하다)
"드디어 왔다"라는 성취감에 도취되었지만
시작 휘슬과 종료 휘슬 사이의 100분 남짓한 시간은
우와아 아아 앜 꺄아아아 우우우 아후 와아 하악하악 에이 으아아아아
의 메아리만 남기고 공기 중에 분해되어 버렸다
경기를 보는 내내 자잘한 이야깃거리 하나 하나까지 다 기록해야지 라고 다짐했는데도
경기장을 떠나는 사이에 두리뭉실한 감동과 흥분만 남아버려서
무언가 자세히 적고 싶어도 적을 거리가 없다
엄청나게 좋은 공연이나 장면을 보고 '할 말을 잃는다'라는 게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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