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September, 2012
veinte y cuatro de septiembre
9월 24일
이 날은 내 인생에 있어, 내 생일인 8월 28일 보다 더 중요한 날로 등극했다
바로 우리 반달곰양이 40주 0일을 꽉 채우고 세상에 나오신 날이기 때문
그렇다, 반달곰이는 치밀하게 40주를 꽉꽉 채우고 예정일에 탄생하였다
어떻게 된 아기가 이렇게 철두철미해 ㅋㅋㅋ
주변에서 단 한 명도 출산예정일에 애를 뿅 하고 낳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예정일 직전까지만 해도 출산이 늦어지는 것 같아 얼마나 마음이 초조했던지...
그런데 24일 새벽 3시 30분
화장실에 갔다가 변기 바닥에서 손가락 세 개 크기의 찢어진 해파리 시체를 보았다
응? 해파리? 여긴 어듸?
거의 무색투명한 해파리 중간에 실같은 핏덩어리가 콕 박혀있었다
아... 이슬이구나!
(이슬은 무슨 이슬?! 예쁜 이름이 아깝다 당장 해파리로 고쳐!!)
제대로 된 이슬을 보고 당일 또는 일주일 내로 분만한댔으니.. 후후 곧 오겠구나
침대로 가 눕는데, 30분 정도 지나자마자 눈뱀이 올 듯한 복통이 지나갔다
다시 변기에 올라탔더니 익숙한 눈뱀은 안 보이고 새빨간 피가 나온다
0_0
피를 본 순간부터 -심리적 현상인 줄 알았지만- 배가 아프다
오빠를 깨워 상당히 심한 수준의 생리통이 자주 느껴진다고 SOS를 치고
시계바늘이 5시를 가리키는 걸 기다려 엄마를 깨웠다
"밥 먹고 병원 가게, 밥 해주세요"
병원에서 튕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밥은 먹자며 소고기무국 한 그릇을 뚝딱했다
(나중에 두 그릇 먹을걸.. 하고 후회했지만 ㅎㅎ)
5~6분 간격으로 오는 진통 중간 중간을 노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그 와중에도 머리를 예쁘게 드라이 하고 ㅋㅋㅋ
출산가방 두 개를 완성한 다음 진통간격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병원에서는 3~4분 간격이 되어 오는 게 좋다고 했었거든
슬슬 해가 뜨는데 진통의 간격이 좀 늘어났지만 강도는 훨씬 세어졌다
출근길 러시아워를 피하자고 8시에 병원으로 출발
신발 신기 직전 마지막 진통을 참아내는데 엄마가 손을 잡아준다
병원 대기실 시스템도 잘 모르고 분만까지 얼마나 걸릴지 기약이 없다보니
막상 멀리서 나의 출산을 보러 온 엄마는 집에 남아있기로 했다
배가 많이 아프긴 했지만 달리 무서운 건 없었는데,
엄마 손을 잡는 순간 무언가 비장한 기운이 전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8시 20분 ER에 도착해서 접수대로 기어가
"estoy embarazada, y tengo contraciones en cada 5 minutos"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라 하더니 털복숭아 남자 간호사가 휠체어를 밀고 왔다
멀쩡한 모습으로 휠체어를 타고 OB까지 가는 건 좀 오글오글
OB 본진에 입성하기 전 자격 여부를 결정하는 검진실에 들어가 굴욕의자에 누웠다
피 터지는 내진을 하고 양수가 샜는지 여부를 검사하더니 10% 진행되었단다
내 자궁문은 왤케 튼튼한 것인가 ㅋㅋㅋ
하지만 NST 그래프에 나오는 내 진통 강도가 이미 100을 찍고 있어
(간격은 엉망진창이었지만) 당장 입원 서류가 준비되고 나는 분만대기실로 모셔졌다
대기실에는 간지나는 병실용 침대가 있고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었다
나 홀로 쓰는 오붓한 방에 들어오니 매우 안락..은 커녕, 진통이 더 세어진다 으아아!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태동기를 달고 왼팔에 정맥주사 시술을 받았다
나는 그 와중에 계속 "cuando puedo tomar epidural?" 만 묻고 있다
11시 쯤 간호사가 들어와 enema(=관장)을 하잔다
아니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도 이렇게 알아서 관장을 해준단 말인가 ㅎㅎ
내심 분만 중의 굴욕을 걱정하고 있던터라 관장이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하지만 5~10분을 참고 볼 일을 두 번 보랬는데
2분 만에 GG를 치고.. 그치만 일은 무려 세 번? 네 번 정도 본 것 같다
다 끝났다고 콜을 하고 12시가 다 되어 드디어 마취과 의사 왕림
내진을 해보더니 여전히 10%.. 4시간 짜리 무통주사와 함께 촉진제를 넣어주겠단다
아 그럼 저야 좋죠 ㅋㅋㅋ
척추에 무통주삿바늘 시술을 마치자마자 시원하게 약이 들어오고...
무통 약발이 돌기 시작하면서부터 이후의 시간에 나는 진통이란 걸 모름;;
한 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나니, 진행이 너무 더딘 게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NST 그래프를 보며 진통에 맞춰 아래 힘을 주고
진통이 없는 동안은 부지런히 다리 스트레칭을 했다
3시 쯤 의사가 들어와 또 내진.. 이번엔 무려 60%!!! 만세!!!
길다란 관을 삽입해서 양수를 터뜨렸다
엄청난 양의 물이 빠져나가자 빵빵하던 배가 좀 작아진 듯 싶다?
그리고 또 내진과 힘주기 연습이 반복되는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다가..
기다리다 못한 오빠가 집에 가서 엄마를 모시고 왔다
하지만 ㅠㅠ 엄마는 분만대기실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해서 병원 로비에 방치
5시가 넘자 갑자기 왠 남정네가 들어오더니 분만실로 가잔다
정들었던 완소 무통주사와 인연을 끊고 오빠와도 헤어져.. 혼자 침대에 실린 채 이동
수술실처럼 생긴 -또는 그냥 수술실- 분만실에 혼자 오니 당황스럽다
분만 할 때 남편이 못 보는 거냐고 묻자, 분만하는 그 순간에 올 거란다
아니 니들이 그 순간을 어떻게 알고!!!
나는 산고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주고 추앙받고자 했단 말이다!
저들끼리 "얘는 스페인어 잘 못 해" 라고 수군댄다
태동기를 떼어내고 양다리를 묶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진통이 오면 힘을 주란다
근데 나는 막판에 조금 수치를 올린 에피듀럴 때문에 수축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
할 수 없이 matrona(=midwife/산파) 한 명이 내 배를 촉진하며 신호를 준다
"mas mas mas mas mas, sigue sigue sigue sigue"
근데 나는 내 힘이 어디로 들어가고 있는지 정확히 짚어낼 수가 없고
그 와중에도 얼굴, 손, 이빨에는 힘을 주지 않는데 신경을 집중 할 뿐이다
결국 누군가 팔꿈치로 내 배를 깊게 눌러 쓸어내리는데,
"딱" 하고 왼쪽 갈비뼈가 튕겼다
(이 때 갈비뼈에 실금이라도 간 듯)
그렇게 힘을 두 번 더 주고나니 설명도 없이 흡입기를 준비한다
한 번 더 힘을 주는데! 갑자기 옆에 위생복을 입은 오빠가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내 다리 사이에서 달곰이가 나타났다
아니.. 달곰이로 추정되는 뻘겋고 하얀 찐득찐득한 무언가가...
그렇게 2012년 9월 24일 15시 39분 반달곰 탄생
의사 한 명이 재빨리 탯줄을 끊고 (탯줄을 직접 끊겠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었음)
달곰의 얼굴만 대충 닦아낸 채 앞섶을 풀어헤친 내 맨살에 달곰을 올려주었다
+_+
달곰과 오빠의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면서 절로 흐느꼈다
갓 태어난 신생아는 쭈글쭈글한 보라색 얼굴에 매우 더럽다고 하던데
달곰은 생각보다 뽀얗고 깨끗하고 완숙달걀같이 피부가 탱탱했다
이것이 완숙(40주)의 힘인가!!!
눈을 또렷이 뜨고 고개에 힘을 주며 주변을 둘러보는 예쁜 우리 딸의 첫 모습에
오빠도 나도 입을 딱 벌리고 홀린 듯 바라만 보았다
언제 나왔는지도 모르겠는 흉측한 태반과 피범벅 거즈들이 퇴장하고
의사 한 명만 혼자 남아 끙끙대며 회음부 봉합을 하고 있었다
무통빨이 다 되었는지, 아래가 묵직하고 아프다
20분 정도 후처치를 하고 -5바늘 정도 꿰맸다고- 다시 침대에 실려 대기실로 이동
오빠는 전등을 끄고 실내를 어둑어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세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이...
이 포스트는 일주일이 지난 9월 30일에나 적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순간 순간이 너무 생생하다
자궁에 고인 피를 빼어내고 나와 달곰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 3시간 남짓
우리는 대기실에서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서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우아하게 마친 출산이었지만
분만 후 대기실에서의 3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우리와 만나기 위해 힘든 여행을 했지만 아직 정신이 말똥말똥한 달곰이는
끊임없이 입을 옹알거리며 우리와 눈을 맞추고
나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젖을 물렸다 (공회전 했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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