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임산부'라는 타이틀 덕분에 느긋한 여행을 즐기고(?) 있다
체크인 줄 설 필요도 없고, 게이트에서 탑승 시에도 퍼스트 승객보다 먼저 ㅋ
그저 티켓 내밀며 "estoy embarazada" 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달곰이, 엄마가 진심으로 고마워 ㅋㅋㅋ
제일 먼저 탄 텅텅 빈 비행기에서도.. 승무원이 짐을 들어주고
(세 좌석이 한 줄인데) 옆좌석을 전부 블락해놓아서
팔걸이 올리고 다리 쭉 뻗고 앉아 맥북이나 뚜닥거리니 이리 좋을 수가 +_+
베개를 4개씩이나 챙겨주고 커피니 물이니 지나갔다가도 돌아와서 물어봐준다
sky elite로 체크인 했으니 짐도 빨리 나오겠지 ㅋ
사실 나만 느긋하게 가는 게 아니라, 이 항공편 자체가 참 널럴하다
세 좌석 다 차지하고 앉아가는 게 나 뿐이 아니라죠
유일하게 복닥대는 곳은 맨 뒷쪽에 몰려앉은 단체관광객 지구
앞쪽은 이렇게 텅텅 비는데 저긴 다닥다닥 붙어 앉아있어…
그래도 다들 유쾌한 걸 보니 스페인 여행이 무척 마음에 들었나보다
<beyond>에는 가우디, <morning calm>에는 페루인 쉐프 gastón의 기사가 실렸다
매일같이 놀러다니는 c/ coello에 있는 hotel unico에 대한 기사도 읽었다
여기도 스페인, 저기도 스페인, 스페인 스페인 스페인
스페인에 온 지 꼬박 280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돌아간다기 보단, 잠시 놀러 가는 거지만;)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은 스페인인데, 막상 발을 떼려니 애틋한 마음이 드네
아마도 오빠를 남기고 혼자 가는 귀국길이라 그런 듯 싶다
이륙하기 직전 활주로로 이동하면서 별로 멀지도 않은 거리에
마드리드 북부지구의 고층빌딩 4개 세트가 보이더라
그보다 가까운 곳에 우리집이 있고, 오빠는 이미 집에 도착해서 쉬고 있겠지
어제 마지막 저녁식사를 라면으로 때운게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냉동밥을 10끼니나 - 오곡밥으로!- 만들어놓고 나왔으니까
나 없는 동안에 제대로 챙겨먹었으면 좋겠네
어제 날짜로 결혼한 지 꼭 3년이 되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너무 사이가 좋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서 어서 7월 13일이 되기를
비빔밥을 먹으면서 - 디저트가 찹쌀떡이 아니었어 흥 - 가우디 관련 다큐를 보고
비행기 실내등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어젯밤에 3~4시간 밖에 못 자서 슬슬 드러누워 자고 싶은데
이거 혹시 낮비행기라 불 안 꺼주는 거 아냐?!
아무리 배불뚝이라도 남들 다 보는데 드러눕는 건 좀 부끄럽단 말이야 =_=
앞으로 9시간 남았다
6시간이 조금 못 되게 남은 시점, 카자흐스탄 북부 러시아 상공을 날고 있다
6시간 남았다니 많이 온 것 같은데 이제 러시아.. 읭?
지난 2년 간 14시간 비행거리를 자랑하는 뉴욕 노선에 너무 익숙해졌나보다
베개 4개를 요리조리 배치하고 자보니 생각보다 편하다
특히 ABC열이라 창문으로 머리를 향하면 자연스레 왼쪽으로 누울 수 있다
(임산부는 왼쪽으로 눕는 게 정법이므로 이건 중요체크)
중간에 터뷸런스 때문에 벨트를 메라고 방송이 나오면 일어나야하지만
약 3시간 정도 선잠을 자면서 휴식다운 휴식을 했다
앉은 자세로만 버틴다면 1시간도 채 못 되어 다리가 퉁퉁 부을 것 같다
요즘 들어 팔이 눌리면 곧장 손이 붓는 둥 붓기가 심상치 않거든
매일 밤낮으로 스트레칭과 요가를 열심히 하는 덕에 체중 조절은 되고 있지만
원래 잘 붓는 편인 체질은 어떻게 할 수 없나보다
아 비행기 전체가 신라면 컵 냄새로 짭쪼롬하다
배도 안 고픈데 괜히 나도 먹고싶잖아 'ㅅ'
그치만 임산부라고 이래저래 배려받고 있는데 라면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직 임신이 뭔지 모르는 젊은 승무원들은 날 정신나간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그냥 싸들고 온 크림치즈스틱이나 먹어야겠다
오빠가 맥북에 영화 <mirror mirror>를 넣어줬으니, 이걸로 또 2시간!!!
결국 냄새의 유혹에 위가 각성하고 '배가 고프다'라는 신호를 쏘아대기에
신라면 컵 하나 뚝딱 ㅋㅋㅋ
영화도 다 봤다 ㅋㅋㅋ
그래서 이제 4시간 남았군요.. 이제 다시 좀 자볼까?
착륙 1시간 전
기다리다보면 시계는 잘도 돌아가며 시간은 멈추지 않는 법이다
저녁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밍기적거렸다
모로 누웠다가 똑바로 누웠다가
달곰이가 격한 태동을 할 때 마다 쓰담쓰담 다독여주기도 하고
저녁밥은 - 중화풍 소고기요리를 골랐는데 - 대한항공에서 먹은 중 최악에 당첨
나 정말 기내식 잘 먹는 편인데 말이지...
미리 신라면을 먹어두길 잘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는 그런 맛이었다
이륙이 10분 정도 지연되긴 했었지만
무슨 연유인지 도착 예정시간은 야금야금 늦어져서 이제 6시에 다다랐다
세관에서 별 일 없기를.. 너무 늦어지면 아빠 출근시간이 걸린다
집에 가서 네스프레소를 쨔잔! 하고 꺼내놓을 생각에 즐겁다
아 그 전에 엄마폰을 빌려 오빠에게 전화를 해야지
거지같은 유럽 시차가 드디어 우리의 소통을 방해하는구나 -_-
배가 한번도 안 뭉치고 특별히 불편한 것도 없었다
달곰이는 저도 모르는 새에 스페인에 이태리, 한국까지 잘도 쏘다니는구나
튼튼한 아기라서 장거리 비행 정도는 너끈한가보다
생후에도 줄기차게 비행기 신세를 질테니 미리 적응해두렴
착륙 사인이 뜨기 전까지 좀 더 눈을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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