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April, 2012

diez y seis de abril




故 박완서씨의 단편집 <그 여자네 집>을 읽었다
처음 박완서를 접한 건 대학교 다닐 때였나, 엄마가 가지고 있던 책을 통해서였지만
자식을 출가시키고 인생을 접어가는 장년(또는 노년)층의 시선으로 세상을 훑는 감정선을
20대 초반의 내가 캐치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 후 고작 몇 년 지났다고 얼마나 더 이해하겠나 싶지만,
그래도 곧 할머니가 되는 엄마를 둔, 출가한 딸의 입장이 되니 뭔가 달라지긴 한 것 같다
주로 '육십이 넘고 나면 엄마도 이런 여한을 가질까' 라고 상상하며 읽었다



박완서 -이제부터 故 생략- 씨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H군의 외할머니이다
<한 말씀만 하소서>에 나오는 딸네 가족이 H군의 가족
박완서씨가 결사 반대했던 '촌놈과의 결혼'을 강행하고 부산서 살던 딸이 H의 어머니인 것이다
그 '촌놈'께서 고향 근처에 교수직을 얻으면서 서울 태생의 H는 한동안 부산에서 살았다
그래서 H는 서울말 네이티브지만 부산말에도 능숙한 bi-lingual 이었다
박완서씨의 자녀가 모두 명문대를 진학 한 것 처럼, 손자 H도 서울대 경영학부를 나왔다
H는 나랑 동갑이지만, 연대를 다니다가 2년 만에 때려치고 다시 수능을 보고
두 살 어린 내 동생과 03학번 과 동기가 되었다
출발은 늦었지만 그는 졸업하기 전에 CPA를 따고 유수의 회계법인에 취직했고
오래 사귀던 여자친구는 한 번의 실패 없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주변에서는 그야말로 수재 커플이라며 엄청나게 부러워했다
H는 잘난 만큼 착실하게 잘난 체를 했다
고압적인 말투나 '니가 무어든 내 알 바 아냐'라는 듯 한 자세는 내 신경을 거슬렀다
그러나 우리는 한 다리 건너 아는, 술자리에서나 마주치던 사이라 그 꼴을 자주 볼 것도 없었다
그는 저렴하지만 안주가 맛있는 술집을 꽤 많이 알고 있었는데
덕분에 가보았던 서초동의 이자카야는 몇 년간 내 단골집이 되기도 했다
그 집 명물인 소고기튀김을 먹으면서 H군의 할머니가 박완서씨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얘네 아빠가 OO치과 원장님이야"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들은 나와 달리
(아버지가 문학교수인) 내 친구 E양은 한동안 그에게 불같은 관심을 보였었다
시니컬한 H는 E에게 관심이 0.1g도 없었고..
H를 더 볼 일이 없어진 후에도 나와 E는 소고기튀김에 따뜻한 도쿠리를 참 많이도 마셨다

속표지의 박완서씨 사진을 보니 -여태껏 얼굴을 몰랐다- H군이랑 판박이시네



지난 여름 한국에 갔을 때 지나가며 보니 그 이자카야는 없어진 듯 했다
H가 알려주기도 했지만, 사실 친하게 지내던 서초동 패밀리들도 자주 모이던 집이었다
회사를 다닐 적에 오빠와도 꾸준히 드나들며 온갖 안주를 축냈고
푸근한 분위기의 동네 선술집을 찾던 엄마 아빠까지 고정 손님이 되셨다
우리같은 젊은 애들은 많이 마셔봐야 10만원도 안 나올 술집인데,
엄마 아빠의 패거리가 몰려가서 48만원 어치의 술과 안주를 시킨 적이 있다고 했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아사히 맥주를 들통 째로 시켜버렸다나
대박손님(?)에 황망해진 마스터가 온갖 스페셜 안주를 왕창 서비스하고
의외로 사소한 것에 쉽게 감동하는 아빠가 팁 명목으로 또 몇 장을 뿌리고 왔다고 하니
두런두런하고 소소한 분위기의 술집에서 그게 왠 해프닝인지 ㅎㅎ
일본식 춘화가 많이 걸려있었는데, 얼큰해진 엄마는 그걸 보며 좋아라 깔깔대셨겠지
평소에 소심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극도로 흥분하는 엄마는
그 날 이자카야가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아사히 맥주통 이야기를 하고 하고 또 하셨다

그런 엄마는 환갑이 지난 후 자신의 삶을 어떠한 시선으로 돌아보실까?
엄마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 여자네 집>에 나오는 딸년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결코 나쁜 자식은 아니지만 어딘가 굴비처럼 말라 비틀어진 애엄마가 되어 있을까
할머니 티가 나기 시작하면 젊은 애들이 모이는 술집에 드나들기는 눈치가 보일텐데
그런 소박한 일탈의 욕구는 누가 충족시켜드리나
나나 사위가, 깍듯한 동생이, 누군지도 모를 며느리가 할 수 있을까



오빠와 함께 엄마 아빠를 모시고 소고기튀김이나 한 번 먹으러 갈 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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