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April, 2012

veinte y seis de abril




마드리드의 봄은 썩 아름답지 못한 봄인가보다
꽃나무가 없는 사막 한복판이니 꽃놀이는 바라지도 않지만 어찌 이리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지
메마른 사막에도 우기가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여기에서야 진실이 된다
유럽다운 두꺼운 구름이 빈틈없이 깔려 하루종일 어둑어둑하니
'태양의 나라'에 산다며 부러워하는 속 모르는 지인들에게는 답답할 뿐 이다
아침 일찍 세무서에 볼 일을 나갈 작정이었지만 푹 젖은 바깥 모습에 질려 다시 드러누웠다
연한 라떼를 한 잔 만들고 아점 시간이 되도록 책만 읽었다
아점상으로 근대된장국을 덥히고 달걀프라이를 지져냈다
왠지 어릴 적 부터 아침 된장국엔 달걀프라이거나 슬라이스치즈여야만 하니까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떠먹을 뜨끈한 국을 미리 끓여놓은 야물딱진 나에게 감탄했다
냉동 식빵 조각을 토스트해서 잼 발라 먹기엔 너무 어둡다
브레드머신을 사서 아침마다 갓 구운 솜살식빵을 먹을 수 있다면 좀 나으려나?
(이참에 검색해보니 필립스 것이 100유로.. 나쁘지 않네)



저녁 설거지에 치여 허우적대는 중에 오빠가 담배를 피러 나가는 소리가 났다
"D가 뭐 줄 거 있다고 만나자고 하네?"
한국 다녀온 D씨의 와이프가 뭔가 들고 왔나보다
미리 부탁해뒀던 세탁조 청소 세제 외에 뭐가 더 있으려나-
하고 마치 어린 시절 출장 다녀오는 아빠를, 아니 아빠의 선물을 기대하던 것 마냥 조금 설렜다
나가놀지도 않고 집에 진득히 들어앉아 언제 올 지 모를 아빠를 기다리는 만큼
아빠는 결코 나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법이 없었다
(지금도 비싸서 쉬이 못 사먹는) 린트 초콜렛이 여러 통, 온갖 치즈에 자잘한 장난감
출장가방에서 나오지 않고선 도통 볼 수 없는 린트를 그토록 기다렸나보다
오빠가 들고 올 J의 봉투에는 어떤 린트가 들어있을까?
이렇게 거창한 기대는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지만, 그만 거기까지
봉투가 소박해서는 문제가 안 되지만, 내용물에 웃음이 났다
얼었던 것이 막 녹은 듯한 나폴레옹(& 조세핀) 빵집의 카스테라 하나, 크림빵 두 개가 들어있었다
소라모양 초코크림빵과 조개모양 슈크림빵에 오빠는 웃어버렸다
나는 철저히 김영모 과자점 토박이로 컸다
그 외에는 논현동 이모댁에 갈 때 마다 들리는 wien 정도가 있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아이들처럼 나폴레옹을 숭배하지 않았다
나폴레옹 팥빵이 맛있다고 한들, wien 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련된 정통 프랑스 파티쉐리로 발전한 영모아저씨네 가게와 달리
나폴레옹은 여전히 젤리 뿌린 팥빙수와 소라빵을 판다
그 토종스러움과, 그에 반하는 사악한 가격대에 나폴레옹을 싫어하는데
6개월이 넘도록 한국빵을 그리워하는 내 앞에 초코크림으로 구멍을 메운 소라빵이 나타난 게다
사실 나는 초코크림도 슈크림도 전연 먹지 않는데 ㅎㅎㅎ
프랑크푸르트에서 오는 린트를 기다리는 내 앞에 누가 가나초콜렛을 드민 기분은
왠지 모르게 웃기고 웃기고 또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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