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October, 2011
treinta y uno de octubre
여기는 metro ciudad lineal 근처 alcalá-norte라는 몰에 있는 까페
중고차 딜러쉽에 왔다가 담당자 부재로 세 시간을 길에서 때워야 하는 상황이다
café con leche 두 잔 시켜놓고 공부가 바쁜 오빠는 수학 공식과 씨름 중
나는 멀뚱히 사람 구경..
하기엔 서울 강북 변두리 쇼핑센터 수준의 가게 몇 개만 있을 뿐이라 볼 게 없다 ㅠㅡㅠ
서울에선 구질구질한 동네에 가는 거 정말 질색했었는데,
여기선 뭐 나 역시 이런 이민자 동네에 어울리는 노오란 유색 인종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latino들보다 못할 지도;
이번 주 중으로는 꼭 차를 샀으면 좋겠다
두 달 남짓 대중교통 타고 '참 잘 다녔지만', 사실 꾹꾹 참는거지 좋아서 했을 리가 있나
달리 방도가 없었을 뿐이다
매일 버스를 두 세번 갈아타며 다니는 것과,
차는 있지만 복잡한 시내 주차를 피하려고 가끔 버스를 타는 건 천지 차이
한국 떠날 때 보다 몸무게가 2kg 빠진 것도 대중교통이 갉아먹은 게 틀림없다
아직 계약을 한 것도, 한국에서 송금이 도착한 것도, 보험 문제가 해결 된 것도 아니지만
벌써부터 rear-view mirror에 다는 fuzzy dice를 어디서 구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dice 사러 런던 가겠다 하면 혼나겠지? ㅋㅋ
지난 두 달 동안
bmw 1, alfa romeo giulietta, mito, vw polo, golf, fiat 500, mini clubman 등
온갖 모델을 넘나들며 새 차를 사네 중고를 사네
(언어적 한계를 커버하기 위해) 컨설턴트를 쓰네 마네
수십 개의 메일을 보내고 영어 메일은 다 씹히고
차를 고르는 데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건 인정
마음을 비우고 seat의 ibiza로 결정했다면 적은 금액에 빨리(9월 중?) 새차를 뽑을 수도 있었다
얄팍한 budget을 가진 주제에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뽕카 1호기에 비교하고 엔진 성능이 어쩌구 저쩌구..
부끄러운 모습임은 잘 알고 있지만
어쩌겠어?
나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동차를 보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살았는 걸
...
그리고 정말 운전 하는 걸 좋아한단 말이에요 ♥
(누구한테 항변하는 건지 ㅋㅋ)
4 hrs later
finalmente, 우리는 차를 예약하는 데에 성공했다
(신차를 계약 하는 게 아니고 중고차 예약금을 치뤘으니까 '예약'이 맞다)
2010 VW golf 1.4 tsi 122cv dsg sport
가솔린을 먹는 1.4리터 미니사이즈 엔진 -클릭이나 아반떼보다 작아!- 에 7단 자동변속기
추가금이 안 드는 정통 흰색(candy white)에 16" 알로이 휠이지만
내장은 무려 가죽이다, 베이지색 가죽 시트!!!
유럽에서 도통 찾아보기 힘들다는 가죽 시트 가죽 시트 º ㅁ º
뒷 범퍼가 좀 까이고 왼쪽 휠 하나가 갈린 것만 빼고는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딜러쉽 매니저를 옆에 태우고 시승에 나섰다
pueblo nuevo 지역은 어찌나 골목 많고 언덕도 많고 길은 좁고 사람이 바글바글 한지
실제로 운전한 시간은 5분? 길에 서 있던 시간은 10분?
그래도 작지만 강하다는 1.4 tsi 엔진은 굉장한 토크빨을 발휘하며
오르막길에서 기본 50cm는 뒤로 밀리는 수동의 나라에서 언덕을 마구 기어올라..
가 아니라 그저 다행히 밀리지는 않고 제 자리에
만족스러운 시승.. 이고 나발이고 빨리 차를 계약해버려야 마음이 편했던 우리는
내리자마자 매니저를 끌고 사무실로 들어가서
현금 박치기 -그래봐야 300유로ㅋㅋ- 로 예약금을 건네고 차량 정보를 받아왔다
이번 주 중으로 재빨리 운전자 보험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면허는 보험 가입 승인이 잘 안 나온다길래 마음이 급하다 ㅠ)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오래 걷고 버스도 몇 번을 갈아타는 강행군 후 집에 돌아오니
손 떨리고 다리도 후들거리고 구역질까지 났지만
그래도 좀 통키통키한 마음으로 청소도 하고 저녁 식사 준비도 했다
두 달 기다린 보람이 이번 주에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다는 설레임에...
30 October, 2011
treinta de octubre
'마드리드 답지 않은' 우중충한 날씨가 잠시 물러가고
파란 하늘에 작은 구름만 드문 드문 있는 밝고 화창한 주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바람이 세서 창문을 열어놓으면 춥다 =_=
건조한 기후에 주변은 온통 바싹 마른 모래밭이라 바람이 불면 바람 반, 먼지 반 이다
거실과 베드룸 창문은 "창문"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커서
환기 좀 해볼까 하고 문을 열었다간 집 안으로 광풍이 휘몰아친다
더군다나 밝은 햇살 아래 문틈으로 들어오는 미세먼지까지 똑똑히 보이고
□ 모양으로 가운데를 뚫어놓고 여러 유닛이 싸고 도는 이 나라 특유의 건축 구조 때문에
우리집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다 (환풍기도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연풍으로 환기를 시켜 음식 냄새나 화장실 냄새를 뺄 수 없다보니
인공적인 방향 시스템에 더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내가 향초를 처음 접한 건 2005년 런던, ikea에서 무려 무향!인 조그마한 초를 몇 개
사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는 향초를 어떻게 켜는지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을 뿐 아니라
좁아터진 방 안에 초를 올려놓을 자리도 마땋찮아서
행여나 불이 날까봐;; 몇 번 켜보지도 못하고 남은 건 옆방 언니에게 줘버렸다
향초를 다시 만난 건 2009년 미국
양놈초 -yankee candle- 의 나라 답게 어딜 가나 향초, 디퓨저, 에어졸 스프레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브랜드도 수백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좋은) 향초는 비싼 아이템이기 때문에 제 값 주고 큰 사이즈 초를 사는 게 부담스러워서
처음에는 할인 매장까지 굴러 내려온 yankee candle을 애용했다
향초의 노예로 종신 계약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제 값 주고 좋은 걸 사자'라는 주의로
정식 매장에서 favorite fragrance를 정해두고 꾸준히 사다 썼지만 ㅎㅎ
내가 좋아하는 초는 jar가 깊은 것 보다는 옆으로 넓게 퍼지고
wick이 2~3개 쯤 꽂혀 있어서 초의 표면이 골고루 녹아 내려 갈 수 있도록 된 것
이런 모양의 초는 yankee candle(2 wicks)이나 bbw(3 wicks)에 많다
2년 내내 큰 불만 없이 두 브랜드의 초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는데
사실 향이 좀 싸구려..라고 해야 하나 톡 쏘거나 멀미 날 정도로 달달한 게 많아서
향을 고르는 데 굉장히 신중해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렀던 pottery barn에서 방향제 섹션을 구경해보니
은은한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향이 주를 이루는 게 왠지 우아하게 느껴져!!!
패키지 디자인도 고급스럽고!!!
그래서 미국에서 스페인까지 긴 항해를 마치고 내 품에 안긴 이삿짐 속에는
yankee candle의 pink sands 향초와 pottery barn의 pomegranate diffuser,
섬세한 tuber rose 미니 향초들이 즐비했고
환기를 포기한 이 집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거실에는 디퓨저를 놓아서 항상 달콤한 향이 유지가 되도록 하고
냄새가 강한 생선 요리 같은 걸 먹은 날은 큰 사이즈 pink sands를 두시간 정도 켜놓는다
손님이 왔을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부드러운 tuber rose에 불을 붙이고 ♥
이렇게 매일 같이 애용하다보니 쟁여둔 초가 마구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 ㅠ.ㅠ
여기엔 yankee candle이나 bbw는 당연히 없거니와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문화 덕분에(?) 고급 향초 전문점도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남은 초를 다 쓰고나면 isolée에 가서 diptyque를 사게 되지 않을까
300g에 40유로가 넘는 값비싼 몸이지만.. ㅎㄷㄷ
diptyque에서는 타고 남은 심지를 다듬을 때 쓰는 wicktrimer(23유로)도 파는데
이건 누가 선물해줬음 좋겠다 :P
28 October, 2011
veinte y ocho de octubre
한국에서는 x japan이 첫 -그리고 마지막이 될 듯한- 내한 공연이 있었다
그의 팬들에게는 역사적인 날이 되겠지
hide도 없고 taiji도 없지만 그래도 팬들은 we are x 를 외쳐대며 감동했으려나
일음은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는 편이고
더군다나 (내 기준에서) 촌스럽기 그지 없는 비주얼의 x는 '꼭 공연을 보고 싶은' 밴드가
아니긴 했지만 워낙 힘들게 내한했다고 하니 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 하루 전에 검색해보니 s석 티켓이 40%나 할인되어서 올라와 있고..
그래 뭐 대형 밴드이고 전설이긴 하지만, 전설은 전설이니까
이미 그들도 과거로 치워지고 만거다
과거의 밴드로 분류되는 뮤지션들이 현재로 넘어와 공연을 하는 걸 보면
솔직한 심정으로 안쓰럽다
짠하기도 하다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30대 이상이었다는 목격담도 짠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의 영화를 현재까지 유지할 능력이 안된다면 공연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저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건데..
하지만 현실에서 뮤지션이란 본디 전성기가 있고,
그 후에 초라해지고 싶지 않으면 요절(혹은 미스테리어스한 죽음)을 택하거나
갑작스런 기자회견과 해체를 감행해야 한다
그리고 잘 쌓아올린 공든 탑을 오랜만의 재결합 따위로 무너뜨리지 말 것
음악의 역사의 흐름과 함께 꾸준히 다져진 관행이니 지키는 편이 좋다
hide는 최고의 전설이 되었지만 혼자 남은 yoshiki는 억지로 애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잖아
<양철북>에 나오는 소년 마냥 그는 무엇을 위해 북을 두드리는 걸까
26 October, 2011
veinte y seis de octubre
chloe's most lovely spots in madrid 리스트에 한 곳 더 추가하련다
"cacao sampaka"라고 하는 chocolatería
평소에는 갈 일이 없는 alonso martinez역 바로 뒤에 있는 유명(?)한 초콜렛 전문점
두바이나 오사카에도 지점이 있다고 하길래 한껏 기대하고 찾아가봤다
사실 가기 힘든 동네까지 굳이 나섰을 리 없지 않나
지난 한 달 반 동안 군말 없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잘 돌아다니긴 했지만
사실 나는 대중 교통 타는 게 너무 너무 싫다 ㅠ.ㅠ
특히나 볼 일을 다 보고 오후 시간 콩나물 버스에 끼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건...
오늘은 n.i.e.를 받으러 무려 aluche라는 남서쪽 동네까지 억지로 가야 했기 때문에
지하철 5호선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cacao sampaka에 들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오빠랑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해서 마음도 통키 통키!
n.i.e. 받은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자면
aluche 메트로 역에서 가까운 노란 건물(정확히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에
도착해보니 한 눈에 '중남미 이민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역에서 건물로 향하는 길 내내 내용을 알 수 없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삐끼들도 많았다
tarjeta de estudiante를 받으러 왔을 뿐인 우리는 이민자 집단과는 다른 통로로
건물에 들어가 5분도 안 되어 카드를 찾아 올 수 있었으니까
분위기가 스산하고 껄끄럽긴 해도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 매년 n.i.e.를 갱신 할 때 마다 이 곳을 찾아와야 한다니
역시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건 그다지 환영받을 만한 일은 아닌가 보다
어쨌거나 고대하던 카드를 손에 쥐고 목적지에 도착
다크 초콜렛 컬러로 통일한 모던한 디자인의 간판과 인테리어
샵과 까페가 분리되어 있는데
샵에서는 초콜렛 뿐만 아니라 달콤한 술(샴페인, PX 쉐리, 소테른 귀부 와인 등등)도 팔고
초콜렛이랑 짝이 되는 다양한 종류의 티와 커피도 준비되어 있었다
카페 메뉴는 단촐한 편
choco caliente, choco frío, 커피, 젤라또, booze, 간단한 음식
아주 thick하고 질감이 풍부한 핫초콜렛을 기대하며 choco caliente tradicional을 주문!
몇가지 종류가 있었지만 점원은 tradicional이 가장 달다고 말해줬다
(초콜렛 전문점에 와서까지 cafe con leche를 시키는 오빠는 무엇인가..)
cacao 함량이 45% 라고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딱 봐도 아주 거무튀튀한 색에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thick! thick!을 외쳤는데 다행히 같이 나온 cucharita로 떠먹어야 할 정도의 농도 ♥
마드리드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핫초콜렛이라고 하면
i) 멀미 날 정도로 기름기가 많거나 ii) 그저 cola cao를 탄 초코우유가 전부였는데
마른 땅에 단 비를 내려주셔서 누군지 몰라도 무척 감사 ㅎㅎ
25 October, 2011
veinte y cinco de octubre
썩 괜찮은 쇼핑 스팟이 없다고 단정 짓고 있었는데
오늘 c/ coello에 있는 isolée에 다녀오고 나서 마드리드를 좀 더 사랑하기로 했다
사실 이 곳은 나중에 natura bissé를 사기 위해서 찾아놓은 가게였는데
오늘 alex언니와 시내 쇼핑을 나갔다가 본격적으로 둘러봤다
"www.isolee.com"
moda shopping 안에 있는 지점은 작아서 그런지 화장품만 취급했지만
여긴 화장품, 옷, 식료품에 생활 소품까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정말 빠지지 않고 다 모아 놓은 게 아닌가
lékué의 실리콘 제품들, 귀여운 bodum과 the laundress new york
de cecco의 파스타와 harney and sons의 홍차 세트
aēsop, natura bissé 몽땅이랑 diptyque와 memo의 부내나는 향초와 퍼퓸
특히나 aēsop은 한국이랑 가격이 비슷해서 다음 화장품 라인은 이걸로 결정했다
(비싼 natura bissé 따윈 집어 치워 ㅋㅋㅋ)
벼르고 있던 tam dao를 시향해보고 - 아 근데 내 취향은 아니네
의류 섹션도 둘러봤는데 오빠에게 꼭 사주고 싶은 너무 예쁜 스니커즈 발견 ♥
점원들도 친절하고 분위기도 편안해서 실컷 구경하다가 나왔다
다른 사람에겐 일러주지 않고 꼭꼭 숨겨뒀다가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은 전부 여기서 해결하면 될 것 같다
아 그리고 bimba y lola에서 다인이에게 보낼 pendant necklace를 하나 샀는데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나는 도저히 좋아할 디자인이 아니지만 그녀에겐 어울릴 듯)
스페인에서 사서 보낼 만한 게 정말 없어서 - 올리브 오일을 보낼 순 없잖아?!
그나마 bimba나 uterqüe의 악세사리는 희소성도 있고 부피도 작으니까
선물로 보내기엔 좋은 아이디어다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우체국에 갈 생각을 하니 귀차니즘이 ㅠ.ㅠ
산마니의 생일 선물도 찾아봐야 하는데, 당장 더 급한 숙제가 하나 생겼다
tokyo 사는 dobek에게 <어린 왕자> 보내주기
castellano와 catalán, 가능하면 euskera 버전까지
그는 언젠가부터 이 재미없는 철학서의 각 나라 출판본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구했는지 신기할 정도의 아프리카 출신들도 가지고 있으면서
막상 스페인 판이 없더라고
오래 전이지만 신세 진 일도 있고 하니 선물로 보내줘야지
24 October, 2011
veinte y cuatro de octubre
A&J 언니들과 함께 a-1도로 변에 있는 carrefour planet에 가서 장을 봤다
주말 내내 양파, 우유, 과일 따위가 똑 떨어져서 텅텅 빈 냉장고를 보며 한숨을 쉬었는데
언니네 차를 타고 나가는 김에 많이 사야겠다는 생각에 카트까지 끌고 출정
평소에 잘 사지 않는 디저트랑 처음 사 보는 문어, 송어, 홍합 따위도 잔뜩 쟁여 왔다
kaki라고 적힌 커다란 단감도 괜찮아 보이는 걸 몇 개 골라왔다
송어는 버터 바르고 마늘 올려서 화이트 와인 뿌려가며 구우면 되겠지만
혹시 더 화끈한 레시피가 있을까 싶어서 네이버 검색 go go-
마침 스페인에서 어학 연수 중인 아가씨가 올린 레시피가 검색 결과 첫 줄에 떠오른다
바야돌릿이거나 그라나다에 살고 있는 것 같으니 나랑 마주칠 일은 없겠구나
돌아오는 길 alex언니와의 대화 중에
A언니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는 근처에 사는 한국 사람이
alex언니로부터 유아용품을 얻어갔던, ikea에서 카트 바꿔치기를 당한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법관 연수로 왔다고 했으니 한국에 계신 mo family와 아는 사이 일지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드리드 도착 후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어
두뇌 속 인간 관계를 관장하는 뉴런에 과부하가 걸렸다
한국 사람이랍시고 끈끈한 정을 유지하고 상부 상조, 또는 무조건적인 베품을 행하는
분위기라면 학을 떼고 싫어하는 나의 치졸한 개인주의에 위협을 느낀다
그렇지만 마드리드의 한국인 사회는 너무 좁고
나 역시 한 해, 두 해 살다 보면 싫어도 아는 사람이 더 늘어 가겠지
안락한 우리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주말 내내 사람에게 시달려서 신경이 예민해졌나보다
조용한 휴식을 가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초콜렛 무스를 떠 먹으며 침대에 엎드려
<그 후에>를 마저 읽었다
팔꿈치와 어깨가 아파질 때 까지 꼼짝 않고 책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득 방이 어두워진 것 같아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언제 비가 왔는지 땅이 젖어 있다
오전에는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점심 나절에는 파란 하늘에 해가 났었는데..
어느새 다시 추적 추적 비가 내린다
오빠는 우산을 가지고 갔으니 괜찮을 거고, 귀가 시간에 맞춰서 난방을 켜야지
난방을 켜지 않으면 수면 양말을 신어도 발이 시렵다
저녁 메뉴는 trucha(송어) 구이
머리, 지느러미와 내장을 제거한 송어를 반을 갈라 호일을 깐 쿠키롤 팬에 놓고
민물 고기인 만큼 비린내가 심할테니 화이트 와인을 골고루 뿌려야 좋다
감자, 양파, 파프리카, 아스파라거스를 굵직하게 썰어 마구 섞어 올린다
EEVO도 넉넉하게 갖은 허브도 넉넉하게 뿌리고
송어 살에는 녹인 버터를 듬뿍 바른 뒤 소금을 뿌리고 마늘 슬라이스를 얹어 준다
20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20분, broil로 10분 더 구우면 끝
심플하면서도 다이나믹한 요리
나는 손이 너무 많이 가면서 먹을 건 없는 치장만 요란한 요리 보다는
모양새도 푸짐하고 버리는 부분 없이 다 먹을 수 있는 신나는 요리가 좋다
민물 송어의 비릿한 흙내음이 어린 시절을 불러왔다
낚시로 잡은 무지개 송어를 손질하던 아빠의 어깨 너머로 배웠는지
오늘 송어를 손질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시 뭐든 많이 알아두는 편이 좋다 :D)
내일은 집에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오늘의 송어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23 October, 2011
veinte y tres de octubre
어젯밤 guillaume musso(기욤 뮈소)의 <그 후에>를 읽다가 잤다
삼십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졸려 자버렸지만, 사건의 배경이 뉴욕 맨해튼이라는 게 좋았다
5th ave와 52nd st의 교차점이나, park ave 를 가로 막은 메트라이프 빌딩을 싸고 돌며
컨베이어 벨트가 돌 듯 로어맨해튼으로 내려가는 차량 행렬
32nd st에서 내린다고 하자 "아 ESB에 가는 모양이네"라고 딱 찝어 맞출 수도 있고
오랜만에 뉴욕을 떠올리며 즐거웠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퀸즈 사는 diane이 결혼을 할 때? 우리는 안 불러 줄텐데
경진이가 뉴욕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면 졸업식에나? 그런데 뭐 합격을 해야;;;)
맨해튼과 퀸즈 구석 구석을 아이폰도 없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데에는
어쨌거나 뉴욕과 차로 2시간 거리, 필리에 감사해야 하는 모양이다
앗 오늘, 마드리드의 첫 비 ♥
며칠 전 예보부터 비가 온다고 되어 있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헌터부츠를 꺼내 보았다
3개월 동안 관리를 안 했더니 표면이 전부 하얗게 일어났어 ㅠ_ㅠ
당장 오늘 신을 지도 모르니까.. 라며 buffing spray를 가져다가 반짝 반짝 광을 냈다
그런데 정말 비가 오다니!!!
(비 오는 날씨는 정말 싫어하지만 오랫만에 헌터는 신고 싶고..)
하지만 비는 5분 만에 그쳐버렸다
22 October, 2011
veinte y dos de octubre
어젯밤 늦게 -정확히는 오늘 새벽 2시- 집에 돌아와보니 새로운 책장이 눈에 띄었다
ikea에 갔던 오빠가 사온, 개당 18유로 짜리 날씬한 책장
미국집에 ikea expedit 라인의 5x5 사이즈 대형 책장을 버려두고 오는 바람에
이삿짐이 도착하고 나서도 책장이 없으니 책 정리를 할 수가 없어 7~8개에 달하는
책 상자들을 그대로 공부방에 쌓아두는 수 밖에 없었다
(공부방 '구석'에 쌓아놨다고 쓰고 싶지만 상자를 쌓고 보니 방 절반을 차지)
차가 없으니 ikea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고
habitat이나 el corte inglés(nuevos ministerios 지점) 가구 섹션을 다 돌아다녀봐도
예쁘면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적절한 가격이면 디자인이 ikea와 별 차이가 없는
뻔하디 뻔한 상황에 치여 내내 책장을 구입하지 못했더니
결국 정신 사나운 공부방 상태를 견디다 못한 오빠가 직접 나서고 말더라는 것 ♥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나 역시 커다란 책장에 책을 잔뜩 갖고 싶다는 로망이 있기는 하다
다만 가구점 카탈로그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간지가 묻어나려면 책장도 책장이지만
꽂아두는 책 역시 디자인과 배열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구비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전집이 효과가 좋다)
조그마한 싸구려 책장 -베이스가 좁아서 흔들흔들 한다 ㅎㅎ- 두 개를 들여놨을 뿐인데
책을 이리 꽂았다가 저리 옮겼다가 새로 한 칸을 들어내고 다른 책으로 채워보고
한참을 고민하면서 조금 더 나은 배열을 찾았지만,
어떻게 해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예쁜 모양새가 나오질 않는다
아무래도 이런 정도로 '서재의 로망'을 실현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을 테니까...
21 October, 2011
veinte y uno de octubre
요즘 아침이나 점심 메뉴로 pan con tomate를 애용하고 있는데
매번 토마토를 으깨는 게 귀찮으니 놔두고 먹을 요량으로 퓨레를 잔뜩 만들어 버렸다 ♥
며칠 전에 사온 토마토가 껍질이 좀 두꺼운 종이라 손으로 으깨기 어렵길래
푸드프로세서를 써서 갈아버리고 나머지 재료 넣어서 완성
(너무 오래 갈아서 죽이 되어 버렸지만 ㅠ)
paleta ibérico 남은 걸 쪽쪽 찢어 올리니까 만족감 두 배!
오늘 밤엔 거의 한 달 전부터 계획하던 ladies' night out이 있는 날이다
오랜만에 차려 입고(?) 나가는 일이나 뭘 입을까 틈틈히 고민을 해놨었는데
고민을 해봤자 사실 차려 입을 만한 옷이 없다보니 답이 안 나온다
더군다나 요 며칠 사이 날씨가 너무 추워져버려서
맨발에 힐을 신고 나가면 발등이 얼어붙고 피부가 갈라지는 꼴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바람막이 삼아 두르려고 LV의 커다란 숄을 꺼냈는데
3개월 동안 이삿짐 구석에 끼어 있느라 구깃구깃해져 당장 다림질이 필요했다
(실크인데다가 크기도 너무 커서 다리느라 무지 고생 ㅠ)
오빠가 늦은 밤에 배고플지도 몰라 beef stew를 끓이고 새로 밥도 짓고
그 사이사이 화장 하고 드라이 하고 옷 꺼내 입어 보고
이렇게까지 했는데 오늘 가는 레스토랑이 별로거나 입고 간 옷이 마음에 안 들면
완전 우울해질텐데...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지요
...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

astrid y gastón
페루가 낳은 가장 유명한 셰프인 gastón acurio가 이름을 걸고 만든 레스토랑
물론 메뉴는 peruvian이지만 상당히 현대화되고 퓨전에 가깝다
레스토랑 내부 인테리어는 깨끗하기만 할 뿐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입구 한 편으로 있는 waiting bar는 작지만 모던하고 조명을 잘 쓴 것 같았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물이 -sparkling을 따로 주문하지 않는다면- solán de cabras라서
그 부분에서부터 합격점!
(혹시 solán 물통에 탭워터를 채워뒀을까 잠깐 의심했지만 물맛은 옳았다 ㅎㅎ)
6명이 cava 한 병, 애피타이저 3, 메인 6(각각), 디저트 3 종류를 주문
메뉴 하나하나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welcome dish : 크림치즈가 들어간 캘리포니아 롤
쌀이 쫀득 쫀득한 게 찰밥에 가깝고 겉에는 깨가 발라져 있었다
causas clásicas : 매쉬드 포테이토로 만든 타워에 참치살과 달걀 조각, 소스로 모양을 냈다
감자는 약간 신맛이 나고 소스와 참치와의 궁합이 좋다
한 접시를 시켰더니 3 unidades라고 친절히 일러주길래 곧장 한 접시 추가 ㅎ
cebiche clásico : 페루식 회무침
코리앤더+레몬 드레싱에 흰살 생선살(회!)과 각종 해물을 섞은 것인데
생선살이 탄력있고 고소한데다 상큼한 드레싱이 식욕을 마구 자극
anticuchos : 꼬치구이, 보기엔 무난해 보였지만 무려 소 염통! 소 심장!
saltado de otoño : see bass를 구워서 quinoa를 뭉친 크러스트에 얹은 요리
lomo saltado : 바싹 구워진 스테이크를 생각했는데 야채와 함께 끓인 스튜 스타일이었다
alex 언니의 주문으로 많이 익혀 나왔지만(hecha bien) medium 정도?
고기가 부드럽고 소스도 좋았는데 배불러서 야채는 손도 못 댔다
asado de tira : beef rib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한국의 찜갈비와 일맥 상통
고기 밑에 깐 감자가 신기했는데, 얇게 저며서 레이어처럼 층층이 쌓았다
버터향이 많이 나고 각 층끼리 딱 붙어있던데 어떻게 요리한거지?
ají de ganilla : 아랍 돋는 닭고기 요리 (그냥 닭고기 커리)
밥이랑 같이 나오는데, 분명 길쭉한 쌀인데 찰지고 끈끈한게 대체 뭔지...
(J언니가 먹은 돼지고기 요리는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페루 음식이라는 걸 처음 먹기도 했지만, 낯선 식재료가 많아서 이것 저것 신기해하며
식사를 하느라 사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옥수수알은 엄지 손톱 만큼 컸고 바나나도 고구마도 아닌 맛을 내는 것도 있었고
여기에도 quinoa, 저기에도 quinoa
뭐 먹고 왔냐고 묻는다면 "김밥, 회무침, 꼬치구이, 갈비찜에 밥 먹었어"라고 할 만큼
한국 음식과 일맥상통한 점이 많다
그리고 이 집이 postre를 정말 잘 하더라고
다른 사람에게 여길 추천한다면 디저트 메뉴 하나쯤은 꼭 시켜보라고 해야지
19 October, 2011
diez y nueve de octubre
18일 어제는 축구 경기를 보러 다녀왔다
물론, 당연히, estadio santiago bernabeú에서 열리는 real madrid의 경기
champs 조별리그, 홈으로 olympique lyonnais가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la liga 경기 중 인기 없는 팀과의 대전이나 champs 초반의 조별리그 경기라야
표값이 싼 편이다 - affordable한 가격이라고나 할까
... 총알이 넉넉하다면 왜 el clásico를 못 보겠어
TV로 축구 보는 걸 썩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특히 한국 축구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신기하게도 유럽 축구에 대해서는 꽤° 아는 편이다
어떻게 아는 걸까... 게임?
(° 꽤는 '보편적인' 한국 여성이 가진 축구에 대한 지식의 평균 이상이라는 얘기)
그리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시리 마음을 주는 팀은
barcelona, manchester united, bayern münchen, inter milan
좋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르샤는 잘 해서, 맨유는 가봤으니까, 뮌헨은 옷이 예뻐서, 인테르는 피렐리 ♥
축구 매니아들이 보기엔 얼토당토 않겠지만
원래 호감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꽃 피는 법이다
호감형 리스트에 real madrid가 없다
바르샤가 좋다고 하면서 레알도 좋아요 라고 하기 어렵거니와
유니폼에 박힌 스폰서 bwin의 무식한 로고가 심한 시각적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맨유 스폰서가 더이상 vodafone이 아니라는 사실이
맨유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을 좀먹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마드리드 이주를 계기로 좀 더 연고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축구를 사랑하는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kaká의 이름을 새긴 공식 져지도 구입했다
사실 연고팀이 별 볼 일 없는 팀이었다면 과연 응원할 수 있었을까?
연고팀이 real betis라면 과연 누가 나를 부러워할까?
그런 만큼, real madrid인 만큼, 무조건적인 응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여름 한 술자리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citizens bank stadium(phillies 전용 구장)
사진을 꺼내 자랑 한 적이 있었다
축구 못지 않게 야구도 좋아하는 G사장과 S집사는 그 작은 사진 한 장에 감동해서
곧 santiago bernabeú에까지 입성할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사실 다른 이들의 부러움은 그다지 대수로운 건 아니지만
가끔은 오랜 떠돌이 생활에 부스터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경기 관람 소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미치도록 재미나고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지는 감동이 있었다
85,000명이 가득 들어찬 푸른 빛깔의 대형 구장
짧게 깎인 파란 잔디에 깔린 거대한 champs 로고
각각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을 등에 새긴 깨알같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가장 저렴한 좌석에는 '내려다본다'라는 동사가 적합하다)
"드디어 왔다"라는 성취감에 도취되었지만
시작 휘슬과 종료 휘슬 사이의 100분 남짓한 시간은
우와아 아아 앜 꺄아아아 우우우 아후 와아 하악하악 에이 으아아아아
의 메아리만 남기고 공기 중에 분해되어 버렸다
경기를 보는 내내 자잘한 이야깃거리 하나 하나까지 다 기록해야지 라고 다짐했는데도
경기장을 떠나는 사이에 두리뭉실한 감동과 흥분만 남아버려서
무언가 자세히 적고 싶어도 적을 거리가 없다
엄청나게 좋은 공연이나 장면을 보고 '할 말을 잃는다'라는 게 이런 걸까
18 October, 2011
diez y ocho de octubre
이웃 언니들 -A여사와 J여사- 을 따라 처음 가보는 마트에 다녀왔다
이름은 mercadona
스페인어로 시장을 mercado라고 한다
그러므로 무의미한 어미 변형을 한 mercadona는 '마트'나 별 반 다를 게 없다
5분에 한 번씩 "mer-ca-do-o-na, merca-dona-a"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내 귀에는 "마트으 마아트으~"로 들린다
미국보다 규모도 적고 물품의 가짓수도 적지만
구석 구석에 진동하는 jamón 냄새 때문에 나는 스페인의 마트를 좋아하게 됐다
jamón과 salchichón, chorizo 등을 파는 코너를 지날 때 마다
콤콤하고 짭짜름한 냄새가 두텁게 깔리면서 콧속을 마구 자극하는데
주렁 주렁 줄지어 매달린 수백 마리 돼지 뒷다리들의 시각적 자극까지 더해져
왠지 오늘 하몽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라고 세뇌가 된다
물론 마트를 나오는 장바구니에 한 팩 정도 담겨 있게 마련이다
쉬운 내용도 어렵게 쓰기 으뜸인 알랭 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 중에
학회 참석 차 마드리드를 여행 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몇 장 읽다 말고 묵혀 두었던 것인데
여기 와서 너무 심심한 나머지 이틀 만에 다 읽어 버렸다)
... 호텔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 주변에 식당들이 있었지만
소심한 나는 나무 널을 댄 어두컴컴한 식당에 혼자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식당에는 천장에 햄까지 대롱 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런 식당에 들어가려면 호기심과 연민의 대상이 될 위험을 각오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호텔 방 냉장고에 들어 있는 파프리카 맛이 나는 감자 칩 한 봉을 먹고
위성 방송의 뉴스를 본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
이 곳의 마트나 바, 레스토랑에 거대한 돼지 뒷다리들이 삭은 기름을 떨구며
벽이나 나무 서까래에 박쥐 떼 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풍경은 가히 스페인적이다
거칠고 물론 예쁘지 않고
(jamón 특유의) 칙칙한 색감에
그 앞에는 밍밍한 café con leche를, 또는 작은 mahou 맥주잔을 앞에 둔 노인이
삐걱대는 철제 스툴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것이다
예민하고 섬세한 보통씨에게는 두려운 자극이겠지
마트에 진열된 jamón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는데
처음에는 등급이나 분류법도 잘 모르고 관련 단어의 뜻도 잘 모르다보니
슬라이스 한 팩을 사기 위해 코너를 수십 번 맴돌면서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이제는 de bellota(도토리)가 표기되어 있으면 상급이구나 하고
paleta는 정식 jamón이 아닌 앞다리로 만든 생햄
jamón serrano는 이베리코 흑돼지가 아닌 평범한 흰돼지...
더듬 더듬 라벨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jamón을 고르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이렇게 사 온 jamón은 그냥 손가락으로 죽죽 찢어 먹어도 맛있지만
지방이 적어 빳빳한 부분은 EEVO를 뿌려주거나
가위로 잘게 썰어 EEVO와 perejil(파슬리)에 살짝 버무려 토스트 위에 얹어도 좋다
참, 염분이니 콜레스테롤이니 하는 건 귀찮으니 따지지 말자고
17 October, 2011
diez y siete de octubre
이 곳에서의 아침은 미국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미국 살던 시절엔 늘 10~11시 까지 늦잠을 자는 편이었는데
9시 부터 들려오는 잔디 깎는 소리에 잠을 방해받기 일쑤,
잔디 깎는 소리 뿐 만 아니라 흙이 섞인 풀내음과 먼지를 함께 흩뿌리기 때문에
싫어도 몸을 일으켜세워 온 집안을 돌며 창문을 닫아야 했다
(물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 썼지만 ㅎㅎ)
san luis 25번지는 잡지사 또는 케이블 방송을 제작하는 회사인 것 같다
업의 특성 상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아 아침이고 밤이고
끊임 없이 차가 드나들고 걸어서 통근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침 해는 8시가 지나야 스물 스물 올라오지만
회사 정문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도로는 출근자들을 위해 불을 환히 밝히기 때문에
커튼도 없고 persiana가 고장나 침실 창문을 가리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그 불빛이 번거롭다
시끄럽다 싶을 정도의 새 울음소리에 풀내음이 진동을 하던 그 곳과
밤새 자동차 전조등 불빛으로 검은 벽이 순간 순간 환하게 빛나는 이 곳의 거리감은
도시 여행을 떠난 시골쥐가 낯선 호텔에서 잠을 청할 때의 기분이 들게 한다
16 October, 2011
diez y seis de octubre
일요일이니 만큼 느지막히 일어나고 싶었지만
(고장난 persiana가 막아주지 못하는) 강렬한 아침 태양빛으로 9시 반쯤 눈을 떴다
하루를 여는 집청소를 해치우고 샤워를 한 뒤
아침 식사로 pan con tomate와 potato rösti를 요리하고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이 곳의 대표적인 아침 메뉴인 pan con tomate(토마토 빵)를 만드는 건 간단하다
까끌거리는 바게뜨나 프렌치롤 슬라이스를 바싹 굽고
생마늘을 손으로 집어 빵에 가볍게 문지른다
생토마토의 껍질과 가운데 심지를 분리하고 대강 대강 으깨서
EEVO를 뿌리고 가볍게 소금이랑 허브를 치고
쓱싹쓱싹 섞어서 마늘을 문지른 빵 위에 올리면 완성
마늘, 올리브 오일, 토마토
간단한 조리법, 예쁘지 않은 모양새
어느새 상당히 "spainized"한 우리의 일상에서 마늘과 올리브 오일 냄새가 난다
오늘로 마드리드에 도착한 지 꼭 한 달 하고 열흘이 되었다
인간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를 감탄하기 보다는
분위기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강력한 관성의 힘에 놀란다
españa, madrid, hortaleza, pinar del rey, avenida san luis 27번지
구름 한 점 없는 마드리드 하늘 아래 유럽식 구조를 가진 아파트에 앉아 있지만
손때 묻은 2009년식 imac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는
이 공간이 서울 도곡동의 어디라도,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 마을이라도,
설사 바깥 세상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알래스카라도 괘념치 않을 것이다
다른 언어가 들려오지 않는 이 고요함이 유지되는 한
내가 있는 곳은 나라와 대륙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일정할 수 있다
빵에 문지른 마늘이 좀 매웠는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입 안이 얼얼하다
다인이에게서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라는 에세이집을 샀다는
메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스페인어 공부 중이었다
(스페인에 있으나 스페인에 있는 줄 모르겠다고 적은 건 내가 맞지만,
짬 나는 대로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건 나의 생존 본능이다)
antoni gaudi의 고향
투우의 고장
온 천지에 올리브가 자라는 땅
태양과 정열의 이베리아 반도
나를 알기 위해 800km를 걷는다는 camino de santiago가 있는 나라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전부 스페인에서 살다니 부럽다 라고 하는 이 나라
나는 아직 스페인이 좋다거나 싫다고 말 할 수 없다
여전히 버스를 타고 닿을 수 있는 거리 내에서만 돌아다니고
미국 물건으로 가득찬 집에 들어와서 한국 브랜드 라면을 먹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생활은 어때? 라던가 미국이 좋아, 스페인이 좋아? 라던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또는 그저 그런 인사치레인 이런 물음에는
정말 좋아
아주 잘 살고 있어
porque todavía no conozco españa
그리고 다인이는
내년 즈음 나를 만나러 온다며 무작정 여행 에세이집을 사고 꿈에 젖었다
"누군가 스페인에 대해 안좋게 말한다면, 그건 스페인 사람이다"
꿈을 꾸는 친구를 위해
다른 이들의 꿈을 대신 충족시켜주기 위해
나는 항상 좋은 이야기를 하고 항상 잘 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업로드 한다
하기야,
내가 사는 공간이 항상 일정하게 행복 할 수 있다면
그 곳이 마드리드인지 필라델피아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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