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니 만큼 느지막히 일어나고 싶었지만
(고장난 persiana가 막아주지 못하는) 강렬한 아침 태양빛으로 9시 반쯤 눈을 떴다
하루를 여는 집청소를 해치우고 샤워를 한 뒤
아침 식사로 pan con tomate와 potato rösti를 요리하고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이 곳의 대표적인 아침 메뉴인 pan con tomate(토마토 빵)를 만드는 건 간단하다
까끌거리는 바게뜨나 프렌치롤 슬라이스를 바싹 굽고
생마늘을 손으로 집어 빵에 가볍게 문지른다
생토마토의 껍질과 가운데 심지를 분리하고 대강 대강 으깨서
EEVO를 뿌리고 가볍게 소금이랑 허브를 치고
쓱싹쓱싹 섞어서 마늘을 문지른 빵 위에 올리면 완성
마늘, 올리브 오일, 토마토
간단한 조리법, 예쁘지 않은 모양새
어느새 상당히 "spainized"한 우리의 일상에서 마늘과 올리브 오일 냄새가 난다
오늘로 마드리드에 도착한 지 꼭 한 달 하고 열흘이 되었다
인간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를 감탄하기 보다는
분위기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강력한 관성의 힘에 놀란다
españa, madrid, hortaleza, pinar del rey, avenida san luis 27번지
구름 한 점 없는 마드리드 하늘 아래 유럽식 구조를 가진 아파트에 앉아 있지만
손때 묻은 2009년식 imac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는
이 공간이 서울 도곡동의 어디라도,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 마을이라도,
설사 바깥 세상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알래스카라도 괘념치 않을 것이다
다른 언어가 들려오지 않는 이 고요함이 유지되는 한
내가 있는 곳은 나라와 대륙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일정할 수 있다
빵에 문지른 마늘이 좀 매웠는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입 안이 얼얼하다
다인이에게서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라는 에세이집을 샀다는
메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스페인어 공부 중이었다
(스페인에 있으나 스페인에 있는 줄 모르겠다고 적은 건 내가 맞지만,
짬 나는 대로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건 나의 생존 본능이다)
antoni gaudi의 고향
투우의 고장
온 천지에 올리브가 자라는 땅
태양과 정열의 이베리아 반도
나를 알기 위해 800km를 걷는다는 camino de santiago가 있는 나라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전부 스페인에서 살다니 부럽다 라고 하는 이 나라
나는 아직 스페인이 좋다거나 싫다고 말 할 수 없다
여전히 버스를 타고 닿을 수 있는 거리 내에서만 돌아다니고
미국 물건으로 가득찬 집에 들어와서 한국 브랜드 라면을 먹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생활은 어때? 라던가 미국이 좋아, 스페인이 좋아? 라던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또는 그저 그런 인사치레인 이런 물음에는
정말 좋아
아주 잘 살고 있어
porque todavía no conozco españa
그리고 다인이는
내년 즈음 나를 만나러 온다며 무작정 여행 에세이집을 사고 꿈에 젖었다
"누군가 스페인에 대해 안좋게 말한다면, 그건 스페인 사람이다"
꿈을 꾸는 친구를 위해
다른 이들의 꿈을 대신 충족시켜주기 위해
나는 항상 좋은 이야기를 하고 항상 잘 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업로드 한다
하기야,
내가 사는 공간이 항상 일정하게 행복 할 수 있다면
그 곳이 마드리드인지 필라델피아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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