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May, 2012

dos de mayo




이태리에 가기 한 주 전에 깎았던 머리가 덥수룩해져 오빠의 꼴이 엉망인지 좀 되었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편인 나는, 본인이 머리 깎고 싶다 라는 의사를 내비칠 때 까지 기다렸고
5주 만에야 휴일을 틈타 미용실, 아니 미용집? 미용하는 가정집을 찾았다
미용집은 atocha renfe station보다 더 남쪽 동네에,
찾아갈 만한 다른 용건이 전혀 생기지 않는 곳에 있다
미용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말 그대로 정식 가게가 아니라 가정집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여자미용사가 사는 가정집
원베드 피소의 살롱에 미용의자와 벽거울, 각종 열처리 기구를 세워두고 영업을 한다
컷만 하는 정도라면 별로 문제 될 건 없다
뭐 한국의 친구들에겐 우중충하고 좁은 아파트와 추레한 시설이 굴욕적으로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필라델피아 이가자 어퍼더비점이나 마드리드 송 미용실을 거친 우리는 이제 감정이 무뎌졌다
(컷 한 번에 55,000원 씩 내던 도산공원 앞 6년 단골 헤어샵 -미용실이 아니라- 은
그냥 우리 삶의 서울쥐버전, 또 다른 단면일 뿐이다)
미용집에는 욕조와 샤워기가 딸린 화장실이 하나 있고, 샴푸는 그 곳에서 손님이 알아서 처치한다
그래서 난 머리를 자르고 나서 샴푸를 하지 않고 돌아온다
마드리드의 동네 미용실 가격이 컷 20유료, 샴푸 5유로 인데 반해 여기는 15유로다
불법영업이니 IVA가 포함되었을리 없고 현금만 받고, 따라서 팁을 따로 낼 필요도 없다

마드리드에서 유일하게 버젓이 장사하는 한국인 미용실은 'peluquería song'이라는 곳이다
나이 지긋한 부부가 1/4 반지하 가게에 진분홍빛 비닐 의자 세 개를 놓고 영업을 한다
헤어디자인이니 패션, 미용과는 백만광년이나 떨어진 무뚝뚝한 아줌마가 머리를 깎는데,
정말 가위로 '자르는' 행위보단 바리깡으로 '깎아올리는' 게 태반이다
그렇게 기교없이 쳐올려진 머리는 해군과 초딩의 기묘한 결합이랄까, 깎인 사람만 환장할 노릇이다
에쓰빠뇰보다야 한국 아줌마가 낫겠지 라는 편견이 잘못이었다 ㅠ.ㅠ
머리빨이 외모의 90%인 남자로 태어난 오빠가 머리에 바른 돈이 깎여나가는 꼴에 기겁해
"대체 가위는 언제 쓰세요?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바리깡으로 쳐올리다뇨!"
내가 정색을 하며 대든 덕분에 우리는 송 미용실에 다시는 갈 수 없게,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한국에서 윤미쌤이 출국선물이라며 정성스레 붙이고 말고 영양까지 듬뿍 줬던 머리카락은
그렇게 불쾌하게 송씨 아줌마네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그 뒤로 여기저기 로컬 이묭실을 들락거리며 손짓발짓으로 거의 반 년을 버텨오다가
한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영업을 재개한 미용집 언니 덕분에 상황이 십분 나아졌다
그럴싸하게 잘 깎는 편은 아니지만 가슴 속에 열불이 나는 경우는 피할 수 있으니



사실 근 3년 간 가장 늘은 건,
두 달 넘게 길어버린 머리도 고데기와 아베다 왁스로 제법 제 자리를 찾아주는 오빠의 요령과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뱅 앞머리 길이를 유지하는 나의 쪽가위 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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