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December, 2011
treinta y uno de diciembre
2011년의 마지막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어떤 커플? 부부?가 다가오더니 나를 향해 누렇고 커다란 무언가를 던졌다
덥석 받고 보니 거대하고 구멍이 숭숭 난 벌집이 아닌가
얼른 다른 사람에게 토스-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고
다급한 마음에 바둥 대다가 벌집에서 벌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청자켓을 위로 올려 얼굴을 감싸고 도망을 쳤지만 등짝에 벌침을 실컷 맞고 말았다
소동이 가라앉고 누군가가 이 벌은 "XX X벌 Ⅱ"라는 종이라고 설명해줬다
새까맣고 허리가 잘록한, 땅벌처럼 무섭고 독하게 생긴 놈이었다
온갖 개꿈을 쉬지 않고 꾸는 편이지만 벌꿈은 처음인데
스펙터클한 만큼 2012년에 엄청나게 좋은 일을 가져다 주는 벌떼가 되었으면 좋겠다
23 December, 2011
veinte y tres de diciembre
이웃 하나 없을 각오로 온 마드리드에서, 꽤나 풍성한 크리스마스 ♥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카드가 날아오고 초콜렛도 여러 상자 받아서 냉장고에 쟁여두고
며칠 전에는 미국에서부터 서연이가 보내준 yankee candle 디퓨저들이 도착
오늘은 친애하는 A언니에게서 lampe berger의 방향유 램프를 받았다
양쪽 화장실에는 'sun & sand' 디퓨저를 하나씩 놓아두고
작은 wooden tree 앞에 브론즈 컬러 램프를 두고 옆에 초를 켜니 불이 비쳐 반짝 반짝 예쁘다
향덕후(?)라, 온갖 향초에 디퓨저 홈스프레이들을 많이 써봤지만
램프는 비싸기도 하고 사용법이 까다로워서 아직 입문하지 못했었는데
마침 오일이랑 램프를, 그것도 램프계의 샤넬 - 프랑스 브랜드 lampe berger를 받았다
지금 쓰고 있는 디퓨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잔향 빠지고 나면 피워봐야지
낮에는 날이 좋더니 지금은 바람이 무섭게 분다
그래도 따뜻하고 안락한 집안에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아
내일은 christmas eve, 특별한 일정은 없지만 나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기를
19 December, 2011
diez y nueve de diciembre
우습게 되어 버렸다
반신반의 했던 정도였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무려 3일이나 빨리 터져버리면 0_0;;
꼭 흑룡띠를 득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첫 달 째니까 실망이 그리 큰 건 아니지만
절친 J도, 회사 친구 J언니도, dolphin도, SB언니도 마음 먹은 달에 정말 '한방'으로 다 생겼다는데
심지어 A는 계획하지도 않은 혼전임신!!!
근데 왜 나만 '한방'에 안 되냐는 그런 종류의 자괴감이 든다
이젠 신경 쓸 것도 없으니 마음 놓고 진통제를 먹었다
18 December, 2011
diez y ocho de diciembre
정말이지 일반적인 스페인 음식이란,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그냥 보면 투박하며 데코에 있어서는 심하게 야박하다
물론 미슐랭의 별이 빛나는 곳에 가면 과일 퓨레로 구슬을 만들고 그레이비로 그림을 그리겠지만..
옆집 O 패밀리와 함께 principe pio에 있는 스페인 판 영양센터에 다녀왔다
그야말로 아스뚜리아스식 전기구이 통닭집, casa mingo 라고 한다
투박한 접시에 반 가른 통닭, 양철 도시락에 드레싱도 없는 샐러드, 이 나간 접시에 염소젖 치즈
물론 스페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존트 못생긴 딱딱한 빵까지
이 집은 통닭과 함께 sidra가 유명한 바, 그것도 한 병 시켰는데 술잔을 주지 않는 거다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에 놓여 있던 자판기 종이컵 만한 물잔에 따라 마신다;;;
(하지만 콜라에는 커다란 얼음잔이 따라 오더라능)
여튼 생김새는 못나도 초크초크한 닭국물에 queso de cabra를 적셔 먹는 맛은 꽤 괜찮았다
그리고 sidra 하니까 말인데,
영국에서 지낼 때는 정말 cider를 싫어했었는데 여기 와서는 쏠쏠히 마시는 편이다
다만 오빠는 시고 달고 밋밋하다며 정말 싫어함
casa mingo 가는 길에 왠일로!? T군(30개월)이 오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었다
그 모습이 예뻐 사진으로 담아와 들여다보니 오빠도 꽤나 아빠 태가 난다
평생 자기 자신 밖에 모를 것 같았는데 이젠 아기를 안고 다니는 것도 잘 어울릴 듯 ㅋㅋ
어쩔 수 없이 인간에게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이 있나 보다
16 December, 2011
diez y seis de diciembre
드림카에 관한 이야기
주부만화가 마조씨(33세)는 '드림에 그치는 드림카'와 '현실적인 드림카'를 구분했다
나에게는 현실적인 드림카만 있을 뿐이다
사지도 못할 차를 꿈꾸는 건, 가카가 되고픈 초딩의 망상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그런데 현실적인 드림카 목록만 해도 꽤나 자주 바뀐다;;
초호기로 국산 H사의 국민 세단을 간택하며 열린 대망의 뽕카시대
1호기와 2호기를 한 가문 -VW/audi group- 에서 맞이하는 바람에
자연스레 3호기는 B당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사실 3호기로 기대했던 최초의 후보는 Q5: 블랑카가 2호기로 내정되면서 자동 탈락)
segment C-D급 세단을 타봤고 핫해치가 있으니 막연히 다음 차는 SUV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3호기를 탈 때 쯤이면 조금 자란 아이도 있을테니까? ㅋㅋ
VWA의 차들은 사촌지간 답게 구석구석 닮았다
그래서 이젠 대쉬보드만 봐도 너무너무너무 지겹다
이름 한 글자만 틀린 엔진 따위 만이 아니라 새차에서 맡을 수 있는 우레탄 냄새도 닮았다
결국 Q5를 대신해서 좀 더 떡대가 있지만 B당 출신인 X3가 차기 후보로 거론됨
근 10년 동안 B당은 흰색이 진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 아래선 그 집안 특유의 몬테고 블루가 뿜어내는 간지에 눈이 녹는다
차르륵한 펄이 태양빛에 빛날 때면 눈에서 땀이 흐른다
그리하여 시퍼런 X3가 드림카로 등극했다
무조건 B당을 선호하는 오빠의 지지를 업고 X3이 리스트에 안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영원한 짝사랑, rangerover의 evoque 모델 런칭
기본 모델보다 좀 더 작아지고 좀 더 싸.. 싸졌어요 (싸다고 해봐야 X3보다 두 장은 비싸지만)
더군다나 2호기 후보 중 하나였던 MINI에 대한 미련이 rover라는 브랜드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여전히 비싸긴 비싸다
이거 산다고 했다간 엄마한테 먼지나게 맞을 거야 T^T 엄마차보다 (쪼금) 비싸니깐
뽕카시대는 앞으로 40년 정도 남았고
그 사이에 왕성한 사회 생활을 하는 안정적인 40대 젊은 중년 여사님을 위한 jaguar XF라던가
아이들과 애완동물, 짐가방, 쇼핑백 따위를 가득 싣고 다닐 수 있는 B당의 GT
딸래미의 대학 입학 선물로 이탈리안의 감성을 연료 삼아 달리는 cinquecento(500)C
작은 차를 좋아하는 남편의 출퇴근 머신으로 어울리는 A1
속썩이던 애들은 떠나고 연금 받으며 놀러나 다니는 노년의 좋은 친구 panamera 4S
이런 깜찍한 자동차들이 내 손을 한번씩 거쳐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 대에 5~6년씩만 할당해도 시간은 충분한데, 돈이 충분할지는 미지수로구나 ㅎㅎ
그리고 내가 꿈꾸지는 않지만 타보고는 싶은 수퍼몹급 초고가 머신들은..
주변의 누군가 대신 사서 나 좀 test-drive 시켜주세요 ㅋ
12 December, 2011
doce de diciembre
바퀴 달린 건 다 좋아하는 나는 당연(?)스럽게 유모차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의 디럭스 유모차 시장에 stokke의 철옹성을 위협하는 제품이 나왔단다
왠 듣보잡이 S를 대체할 만큼 인기라는 건지 솔직히 체험단이나 업체의 입소문 전략인 것 같지만
길에 널리고 깔린 S를 피하고픈 한국 엄마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겠지
그런데 이름이 너무 구리다: mima xari
듣보잡답게 구리구나 하고 보니 스페인 브랜드;;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 아 이거 뭔지 알겠다
스페인 처음 와서 보니 뭔지 모르겠는 디럭스 유모차가 좀 돌아다니더라고
오빠가 저게 뭐냐고 묻는데 (비싼) 유모차 브랜드는 꿰고 있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좋게 말하면 미래지향적 디자인, 그냥 보면 우주에서 온 삶은 달걀처럼 생겼다
아날로그 감성이 폭발하지만 초신상인 제품을 지향하는 내 눈에는 그냥 구려보였다
저런 게 인기라니, 한국 유모차 시장이 정말 심심한가보다
100만원 넘는 유모차들은 기능면에서는 다 거기서 거기
안전벨트니 시트 라이닝이니 핸들링이니 미세한 차이일 뿐이고 결국 디자인 전쟁이다
내 취향은 무조건 커서 "다 밀어버리겠어!" 정도의 포쓰를 내는 것
자동차로 치자면 네모네모 열매를 듬뿍 먹은 각진 range rover 정도 랄까
그래서 키도 작고 동글 동글한 silvercross surf는 예선 탈락
하지만 아무리 커도 휠체어를 닮은 orbit처럼 생김새에 신경을 안 써주면 곤란하다
사실 orbit의 컬러 구성은 환상인데, 손잡이라던가 무식한 프레임에서 미쿡 냄새가 너무 난다
미쿡놈들은 색감은 뛰어나지만 세세하고 감성적인 디자인에는 꽝
시트를 굳이 360도 돌리겠다고 프레임을 멧돌 모양으로 뽑으면 어떡하냐
또 오로지 미쿡 사람들만 애용하는 uppa baby는 몰개성이라서 탈락
이런 식으로 쳐내고 나면
S와 bugaboo만 남는다
(B를 늘 /버가부/라고 읽어와서 /부가부/라고 발음 하는 걸 들으면 왠지 좀 웃기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흔하지 않은 유모차를 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서는 S가 흔해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B cameleon을 사고 싶었다
근데 왠걸?
미국에 가보니 S를 쓰는 사람은 한국 사람들 뿐이고 대신 B가 널리고 널렸다 'ㅅ'
미국을 떠나 스페인으로 오니... 여기서 B는 그야말로 '국민 유모차'
강남에서 S를 볼 수 있는 횟수보다 마드리드에서 B를 만나는 횟수가 10배는 더 많을 듯
노천 카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10대의 유모차 중 B가 8대, 나머지 2대는 chicco
S는 가끔씩 드문 드문 볼 수 있는 편이다
이렇게 되니 나의 쇼핑 뉴런이 더이상 B를 허락하지 않는다
애기도 없는 사람이 왠 유모차 지론까지 펼치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이건 마치 뭇 남자사람들이 "이게 내 드림카야~ 저건 내 현실적인 드림카지" 하는 것과 같다
디럭스 유모차는 (기저귀 가방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실) 기저귀 가방과 함께
스키니맘의 패션에 화룡점정을 찍는 MH 아이템이다
그러니 어찌 선택에 신중하고 또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 기저귀 가방처럼 보이지 않을 기저귀 가방으로도 찍어놓은 게 있냐고? 당연히 있죠 ㅋㅋ
하지만 S보다 M보다 더 비싼 그 가방은 아직 비밀 ㅋㅋ
11 December, 2011
once de diciembre
요 며칠 간 네이버 카페 <맘XX릭>에서 재미난 글들을 실컷 읽고 있다
재밌다고 읽는 글들이 전부 자극적이다
십대에 사고치고 아이 낳은 리틀맘 이야기라던가 부모에게 혼전임신을 이실직고하는 이야기
인터넷 커뮤니티의 특성상 극단적인 상황이 많아서 매번 우와- 하며 놀라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리틀맘이나 혼전임신이나 내 주변에 없는 이야기도 아니지 않은가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는 남자사람친구의 도망간 여친- 바람나서 만난 남친과
고 3때 첫째 아기 출산, 연년생으로 둘째도 출산했던 #양
대학교 3학년 때였나 길에서 우연히 보니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있었다
회사 다닐 적에는 같은 팀 대리들이 줄줄이 혼전임신을 한 채 결혼을 했고
특히 Y대리(남자, 당시 32세)는 사내커플이었기 때문에 와이프 되는 분과 마주칠 때 마다
나의 요상한 기분을 들킬까봐 눈을 피하곤 했었다 ㅋㅋ
친한 친구인 A양 역시 사고를 치고 무려 아이를 낳은 다음에야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이고 A양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출산 사실을 전부 숨기고
나는 어쩌다보니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아이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꽤 될 듯
10년 전 삼성동 모 닭집에서 #양이 이미 애기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뜨악 -_-
애 낳느라 수능을 못 봤고 졸업하자마자 혼인신고를 했는데 둘째까지 생기는 바람에
남편 @군은 상근 근무를 하고 있다는 먼나라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안드로메다에서 온 ET들이나 그런 삶을 살 것만 같았다
지금보다 훨씬 괄괄하고 독설을 일삼던 어린 시절의 나는,
자신의 찬란한 시절을 다 버리고 책임도 못 질 아기를 줄줄이 낳는 그들의 행동양식이
일반 포유류와 뭐가 다르냐고 어이없다 했었지
이제 @군과 #양은 결혼 10년차 부부에 초딩 학부모가 되었으려나
나이가 들고 보니 '뭐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생각이 정리가 된다
트라우마가 없지 않겠지만 부디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10 December, 2011
diez de diciembre
새벽에 비가 오더니 하루 종일 안개가 짙었다
부슬부슬 뿌연 창밖 풍경이 마치 powder snow가 내리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한밤중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니 눈은 커녕 서리조차 내리지 않는다
눈이 오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해질녘부터 보기만 해도 차가운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있다
기분 나쁜 이야기가 두 가지
i 12월 5일에 주문했던 iPhone 4S에 대해서 8일이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orange españa에서 보낸 문자 : 주문이 접수되었으며 승인이 나려면 48시간이 걸린다
결국 아직도 승인이 나지 않았었다는 얘기
그리고 어제(9일), 뜬금없이 paypal로부터 환불이 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reembolso'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단어는 refund나 rebate를 의미하는 동시에
'지불'이라는 표현에도 쓰기 때문에 해석하기가 무척 애매했다
orange로부터는 아무런 소식도 없이 무작정 돈이 환불되었다고 하더니
막상 카드 잔고를 확인해보니 이미 나갔던 489유로는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승인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는 예상했지만 주문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돈은 미리 빼갔다가 환불이 되는 건지 아닌 건지도 알 수가 없고
스페인어를 못하니 문의 전화를 해볼 수도 없어서 그저 답답 할 노릇
주말이 지나고도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은행에 가서 dispute 신청을 해야 할 것 같다
susana -은행 매니저- 가 나 대신 orange에 전화를 해줘도 좋을텐데
ii 요즘 유난히 몸이 피곤하고 몸살 기운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carrefour에 장 보러 간 길에 안심 스테이크를 사왔다
staub 그릴팬을 천천히 달구면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A씨가 찾아왔다
간식거리를 나눠먹으러 가지고 온 그녀는 감기는 좀 어떻냐고 묻더라
"에이 하루 이틀 만에 떨어졌죠 이젠 괜찮아요~"
라고 했더니 매우 실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왠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몸살이라길래 혹시나 해서 이거 사왔는데..."
이게 뭐에요?
이게 뭐죠?
clear blue?
이건 혹시?!
내가 아는 그, 임테기의 대명사 clear blue는 아니겠죠?
아니긴 뭐가 아냐
A씨는 정말로 임테기를 사왔다
임테기를 선물로 받게 될 줄이야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다
당시엔 그냥 웃긴다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나쁘다
굉장히 사적인 영역을 침범 당한 기분이랄까
07 December, 2011
siete de diciembre
1차 크리스마스 쇼핑
우선 isolée에 가서 나를 위한 선물 -aēsop의 mandarin cream- 을 샀다
매장녀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듯 했지만 뷰티 용어가 거기서 거기인지라 별로 어렵진 않았다
중성+복합성 피부(piel normal y mixta)라고 하니 만다린을 추천해줬다
앞으로 사볼까 하는 다른 제품들 샘플도 얻어오고
스페인의 화장품 매장들은 백화점이나 로드샵이나 샘플 인심이 후한 것 같다
고메 섹션에서 6인 모임 멤버들에게 선물 할 미니사이즈 kusmi tea도 다섯개 구입
아마 마드리드에서 가장 희귀한 브랜드를 모아놓은 곳이 이 isolée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꾸준히 애용 할 테니까 절대 없어지면 안돼
zara home을 둘러보니 크리스마스 용품이 시원찮다
butlers는 역시나 평소처럼 싼티가...;; 심지어 이미 물건이 많이 나가 텅텅 비어 있었다
큰 기대를 안 하고 들른 habitat이 의외로 대박
줄줄이 전구들이 너무 너무 예뻤는데 누진세가 적용되는 전기 요금이 무서워 패스
서랍장 위에 올려둘 자그맣고 심플한 (판자로 만든) 트리와 장식을 샀다
kusmi tea와 함께 줄 크리스마스 카드 세트도 사고
이번 겨울 내내 줄기차게 켜놓으려고 무향 tea light candle도 50개나 샀다 - 겨우 4.50유로!
같이 나간 A언니는 줄줄이 전구에 커다란 사슴 오브제까지, 150유로 넘게 지른 듯
둘 다 짐이 너무 버거워서 옷가게들은 둘러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2차 쇼핑을 나갈 핑계가 생겼다고나 할까 ㅎㅎ
06 December, 2011
seis de diciembre
임신과 출산 등에 관련된 어플들을 다운 받았다
주로 한국어 어플을 쓰겠지만, 병원에서는 영어로 -또는 스페인어로?!?-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하니
영어 표현을 알아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영어 어플도 하나 추가
얼마 전에 친구 S양에게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서 어떤 책을 보는 게 좋겠냐고 물었는데
앗차! S에게 물은 건 엄청난 실수였다
'속도위반'으로 결혼 전에 아들을 낳은 S가 미리 책을 읽었을 리 만무하잖아
그녀는 그저 땅콩은 '앨러지를 유발'하니 피하고 호두는 '뇌발달'에 좋다고 많이 먹으랬다
(있지도 않은 애기에게 뇌가 어딨어 0_0)
이제 배가 나오기 시작했을 J에게도 물어봤지만 그 역시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J는 어떠한 일에도 스스로 + 열심히 준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슬 교보문고 해외배송을 통해서 관련 서적들을 구입 할 생각이지만
당장은 이런 어플들만 훑어봐도 충분 할 듯 ㅎㅎ
괜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임신 초기에 먹으면 안 되는 것이라던가
하면 안 되는 운동 같은 것들을 피하지 못할까봐 막연히 걱정이 되어서 그렇다
... 정말 날 음식은 먹으면 안 되는 걸까?
스시나 생굴은 그렇다 쳐도 왜 jamón은 안 되는 걸까
나이를 먹고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주변에 아기 엄마 아빠라는 신 종족이 생겨났다
평생 나이 먹지 않고 철 없이 살 것 같았던 사람들도 역시나 부모가 되었다
(물론 부모가 된다는 것과 철이 든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철 없는 부모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 모 밴드의 프론트맨이자 디자이너 6씨
6씨는 2006년에 첫번째(로 추정되는) 결혼을 했다
속도위반이었고, 하와이 신행 사진에서 와이프는 이미 배가 불렀었다
그리고 같은 해 태어난 아기는 내 기억에 따르면 분명 딸이었다
그리고 현재 6씨는 2010년에 태어난 두살 짜리 아들이 있다
2006년에 태어났던 딸과 2010년에 태어난 아들은 이름이 같다
현재의 6씨에게는 딸이 없다
페북에서 보니 6씨의 와이프는 2006년 하와이로 신행을 갔던 사람이 아니다
새로운 인물도 아니고 예전부터 6씨와 친구로 알고 지내던 여자사람
말이 안 되지만, 6씨의 와이프와 자녀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말이 되겠지
6씨의 안부를 모르고 지낸 3~4년 동안 그는 이혼을 하고 두번째 장가를 간 듯 하다
그리고 새로 낳은 아기에게.. 헤어진 아기와 같은 이름을 붙였다;;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애아빠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나보다
그렇지만 아무리 아까워도 그렇지 그걸 또 쓰다니, 정말 6씨 답다!
'스키니맘'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애기를 낳고 나서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자기관리가 투철한 초현대의 엄마들을 가리킨단다
직장맘, 전업맘이나 애 이름을 갖다 붙여 OO맘, ∆∆맘이라고 하는 건 딱 질색인데
'스키니맘'은 왠지 마음에 든다
미칠듯이 노력해서 꼭 스키니맘이 되어야겠다
05 December, 2011
cinco de diciembre
i 며칠 연달아서 바쁘게 돌아다녔더니 몸살이 나다니
운동량이 부족했던 건지, 느긋한 생활에 너무 깊게 젖어있었는지, 그냥 기후가 맞지 않는지
덕분에 주말을 끼고 몸을 눕히고 <뿌나>를 몰아보며 지내고 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나에게는 버거운 드라마이다
꺽쇠라고 믿고 4화를 연달아 봤는데 그 인물이 꺽쇠가 아니었다던가;
ii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망설이던 iphone 4s 주문을 했다
orange online shop에 오더를 넣었는데.. 가입이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외국인이 가입을 하려면 3개월치 계좌내역서 따위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막상 온라인 오더에서는 그런 서류를 제출하는 절차가 없었다
영 마음에 걸려 다시 웹사이트에 들어가 주문 내역을 보려고 하니 그런 메뉴가 없다 -_-
하아.. 정말 스페인 애들 답다
500유로에 가까운 비싼 물건을 이 따위로 팔다니
iii 폭풍같던 학기가 막바지로 접어들고 드디어 오빠가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소파에 늘어져서 하루종일 뿌쟁이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연초까지 만이라도 이렇게 한가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질 수 있다면
iv 커다란 니트에 꽂혔다
엉덩이를 살짝 덮는 길이로 가오리 소매도 좋고 판초도 좋고
너무 두꺼운 털실로 짜인 건 싫고, 하늘하늘하게 살짝 늘어지는 정도의 톡톡한 니트웨어
물론 '커다랗다'고 했지 - 몸에 붙는 게 아니라 펑퍼짐 해야 한다
여긴 다행히 추위가 혹독하지 않아서 이너만 든든하게 입으면 초겨울까지도 괜찮다
플랫 라이딩 부츠에 스키니진이나 제깅스, 펑퍼짐한 니트에 머플러의 조합이 좋다
30 November, 2011
treinta de noviembre
오늘은 '우유' 이야기
스페인의 먹거리 사정은 미국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종종 당황하고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한국 사정에는 까막눈이라 세 나라를 비교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달걀, 빵, 밀가루, 과일, 소스나 향신료 등등
그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여전히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것이 '우유' 사정
나는 무지방이나 저지방 우유는 먹지 않는다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항상 whole milk를 사서 마셨다
skimmed는 말 할 것도 없고 semi-skimmed도 절대 사지 않는다
쉽게 살이 찌지 않는 축복받은(푸풋) 체질 덕분에 지방 함량 따위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지방을 줄인 맹맹한 우유는 더이상 진정한 우유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흰 우유를 벌컥 벌컥 마셔대는 우유 매니아도 아니다
흰 우유는 한약 만큼이나 싫어하는 걸 'ㅅ'
나는 cafe latte나 milk tea, smoothie 종류를 통해서 우유를 섭취한다
이런 음료들은 주원료에 진하고 고소한 우유가 부스터가 되어 완전한 새로운 맛을 내기 때문에
우유의 (지방) 맛이 진할 수록 좋다
이곳의 우유 코너는 미국이랑도 영국이랑도, 심지어 한국이랑도 너무 다르다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파는 우유는 '멸균 우유'다
냉장 상태로 팔지 않는 팩우유, 한국에서는 하늘색 팩에 든 "매일우유"를 생각하면 된다
스페인 마트의 우유 코너는 3~4가지 브랜드에서 나오는 멸균우유 상자로 가득하다
냉장고에서 파는 일반 우유(=생우유)는 puleva라는 브랜드가 거의 유일한 듯
멸균우유는 지방 함량, 추가 성분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가 있다
내가 애용하는 whole milk는 entera라고 쓰여 있고, skimmed는 desnatada라고 한다
칼슘(calcio)이나 omega-3 성분을 추가한 것도 있고 애들용도 있고
생우유의 경우에는 entera/semi-desnatada/desnatada 세 가지로만 나뉠 뿐이다
누구나 "매일우유"의 맛을 기억하듯, 멸균우유는 분명 맛이 다르다
처음 장을 보러 간 날 우유 코너에서 당황한 나는 고르고 골라 puleva의 칼슘 우유 6팩을 사왔다
그리고 오빠는 그 우유로 만든 라떼를 무척 싫어했다
스페인에서 마시는 cafe con leche의 맛이 왜 죄다 별로인지 원인을 알아낸 것
6팩을 꾸역 꾸역 다 마시고 나서 puleva의 생우유를 사왔다
이 귀한 우유는 유통기한이 채 지나기도 전에 상해버렸다
다시 한 번 같은 브랜드의 생우유를 사왔다
이번에는 유통기한을 일주일이나 남겨두고 상해버렸다
생우유는 멸균우유보다 거의 3배는 비싼 가격인데...
어찌 된 일인지 스페인의 생우유는 금방 금방 상해버린다
몽글몽글 치즈처럼 되어버린 병맛 우유를 두 번 버리고 나서 나는 다시 멸균우유를 샀다
멸균우유 중에서는 제일 좋고 생우유처럼 상하지는 않을 우유로
organic -스페인어로는 agricultura ecológica- 코너에서 파는 puleva의 멸균우유
물론 entera!
가격은 일반 멸균우유의 2배 정도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맛은 보통 멸균우유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완벽한 해결책은 못 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왜 생우유를 애용하지 않는 걸까?
이 나라의 생우유는 어떤 공정을 거치길래 쉽게 상하는 걸까?
우스운 건, 3개월에 걸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입맛이 지쳤는지
이젠 멸균우유도 맛있게 느껴지고 멸균우유로 만든 라떼도 맛있게 느껴진다
... 생우유는 어떤 맛이지?
28 November, 2011
veinte y ocho de noviembre
와 나의 단기집착증이란 ㄷㄷㄷ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24시간 동안 <danger days>를 적어도 36번은 돌린 것 같다
이제 좋아하는 넘버는 가사도 거의 다 외웠다
(욕 나오게 복잡하긴 한데 요 며칠 영어가 한창 물 올라서 조사 하나까지 따라 부른다 ㅋㅋ)
어처구니 없는 가사를 들여다보며...
어처구니 없다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오늘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연락이 닿은 no군에 대한 믿기지도 않지만 믿고 싶지도 않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고딩 시절 교실에서 (S양과 나만의 은어로) #2를 저질렀다는 거다
동기는 선생에 대한 복수?!?
선생보고 뭘 어쩌라고??
특이한 부분이 1mm²도 없는 그런 아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이상하고 변태스럽다고 말하기 이전에 도저히 이게 사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나름 나의 학창시절에 나쁘지 않은 추억을 선사해준 친구인데
의무교육을 다 받고 자란 정상 지능의 16세 남자 사람이 교실에서 #2라니
누구더러 믿으라고 만들어진 루머란 말이야?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해명을 들을 수 있을까
기껏 이제야 연락이 닿았는데 괜한 소리 했다가 친구 짤리는 거 아닌가 몰라
27 November, 2011
veinte y siete de noviembre
얼마 전 영국 hmv.com에 주문했던 음반들 중 하나가 MCR의 네번째 full length
제목 하고는.. marvel의 만화 시리즈같은 포스를 풍긴다
아 그래서인가?
전작에서의 전형적인 gothic character를 버리고 MCR은 B급 우주만화 속 히어로가 되었다
제라드 -gerard way(34세)- 는 새빨간 머리에 삐에로 같은 쉐이드를 끼고
"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보다 밝아진 얼굴에 경쾌한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보컬이 더 좋아진 것 같다
(제라드는 라이브가 형편 없다고 욕을 많이 먹지만 내가 본 라이브에서는 꽤 괜찮았다)
신작의 sci-fi적이고 소년만화적인 감성은 말하나 마나, 만화가 출신 제라드의 것이다
NJ에서 태어난 그는 외가가 이탈리안 이민자 후손이라는데
그러고보니 <jersey shore>
집에 처박혀 만화나 그리고 cartoon channel 인턴을 하던 허여멀건한 뚱뚱보*는
어느날 살을 쪽 빼고 머리를 시꺼멓게 염색하면서 지방에 묻혀 있던 정체성을 찾았다
아이라인을 그리고 검은 옷을 입으니 더 간지가 사네?
속눈썹도 붙여볼까? 이번엔 은발을 해봐?
은발이고 빨강머리고, 하는 것 마다 다 예쁘다니 역시 사람은 본판이 좋아야 한다
이번 캐릭터 컨셉의 일부분에서 jap comic 냄새가 솔솔 나지만
어차피 MCR은 골수 일빠 일덕;
언젠가 '일본의 모 인디 밴드 출신 녀성이랑 결혼한다' 따위의 기사가 뜰 만도 했는데
일본어로 뭐라 나불거리는 party poison 만 쏙 빼고 듣고 있다
참, 오늘은 오랜만에 AI를 돌렸다
전시회가 잡혀있는 D양이 급히 새로운 개인 명함이 필요하다고 디자인을 달라잖아
몇년 전에 작업했던 시안 파일은 당연히 어디있는지 모르겠고 -_-
'생애 첫 전시'라며 열심히 준비하는데 참석하지 못 하는 게 좀 미안하게 느껴져서
어제는 컬러 정하고 기준선 잡고 손그림 뜨고
오늘은 typo 완성하고 수정에 수정, 또 수정, 한번 더 수정을 거쳐 대충 완성
스케치도 없이 급히 한 거라 아무리 뜯어봐도 마음에 안 들지만 나중에 또 해주면 되겠지
25 November, 2011
veinte y cinco de noviembre
우리집은 쾌적하다
신나게 외출했다가도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집에 왔다'라는 안도감, 아니 기쁨(!)이 솟구친다
항상 24.5도를 유지하는 우리집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reed diffuser의 은은한 향기만 맴돌 뿐 음식 냄새나 먼지 냄새도 나지 않는다
매일 쓸고 닦는 마룻바닥은 뽀얗고 보송보송하며 가구 위의 먼지도 늘 말끔히 치워져 있다
침실은 좁지만 정돈이 잘 되어 있고 큰 창문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ipod docking speaker로 기분에 맞는 음악을 틀어놓고 읽을 만한 책도 책장에 한가득
요리를 하고 나면 즉시 청소를 하기 때문에 부엌에도 기름 튄 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냉장고와 (창고로 쓰는) 다용도실에는 항상 맥주와 와인, 안주가 떨어지지 않고
illy 커피 캡슐이나 tea 종류도 다양하게 구비해놓았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맛있는 커피와 과자를 예쁜 그릇에 즐길 수 있어서 좋은 우리집
60년이나 나이를 먹은 벌레가 나오는 목조 아파트에서 살다 온 우리와
한국의 최신식 새 아파트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가지는 기대치는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다
나에게는 충분히 넓은 이 아파트 부엌도 J양에게는 좁고 답답할 뿐이다
개인 세탁기 없이 2년이나 지낸 나에게 다용도실에 딸린 세탁기와 건조기는 은혜롭다
브랜드가 무엇인지, 세탁기 용량이 너무 작은 게 아닌지 고민해본 적 조차 없다
세탁만 잘 되면 되지 않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거운 세탁 바구니를 들고 지하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었단 말이다
아파트 주차장이 어둡고 좁다고 싫다는 고귀한 분도 계시던데,
엘리베이터 타고 곧바로 내려 갈 수 있는 지하주차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cctv가 24시간 감시하는 한국의 아파트 주차장에만 익숙한 사람은 모른다
미국에서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얼마나 열악했는지 돌아보면 눈에서 땀이 흐른다
사실 당시에는 잘 몰랐다
컨디션은 병맛이었지만 렌트는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아파트라도 더 다를 것 같지 않았고
세탁 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비 새는 천장 아래 바께쓰를 놓아두는 생활도 은근 재미있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에서 오는 막연한 설레임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재미야 몇 달 가지 못하고 신세 한탄으로 변질되었지만..)
나도 한국에서는 최신 시설로 무장한 좋은 아파트에 살았다
그리고 그 때는 그게 얼마나 편하고 소중한 것인지 미처 몰랐던거지
세상에는 다람쥐가 벽을 긁어 부수고 부엌 찬장에 생쥐가 뛰어다니며 마루 밑에 실버피쉬가 사는
납성분이 함유된 페인트로 칠해진 천장 여기 저기서 물이 새는 집도 있더라
70s 스타일의 가스레인지에선 항상 미량의 가스가 새고
부엌에는 환풍기나 환풍구가 없어 음식 연기가 거실로 날아가 소파에 냄새가 밴다
낡은 마룻바닥에 숱하게 구멍이 나 있고 철이 되면 그 안에서 딱정벌레가 올라오는 집
떠나온 지 4개월 정도가 지났구나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픈 안락한 새집에 자리잡고 돌이켜보니 아뜨윽-하게 느껴진다
내일 오전에는 베큠을 돌리고 물걸레질을 한 번 해야겠다
청소를 좋아하는 성격이 결코 아닌데, 집이 하얗고 밝다보니 더러움이 눈에 잘 띄기도 하고
옆집 A언니가 유난히 깔끔한 성격이라 부끄러운 일 없으려고 더 열심히 쓸고 닦는다
23 November, 2011
veinte y tres de noviembre
따돌림 / bullying / イジメ
따돌려 보기도 하고 따돌림 당해 보기도 했던 나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은 역시 그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급우 전체에게 왕따를 당하던 Y양 이야기
(내가 당한 일은 따돌림이라고 보기엔 너무 사소하고 하루 이틀에 지나지 않아 순위에서 밀림)
초딩 6학년과 중1 내내 같은 반이었던 Y양은 좀 못생겼지만 평범했다
무작정 당하지만 않고 성깔도 좀 부릴 줄 알았던 것 같은데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15년이나 지난 지금 내가 그 이유를 기억할 리가 없지
원래 이지메는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시작하는 게 아니다
이 이야기의 포인트는 그녀가 따돌림을 당한 사실이 아니라 그로부터 5년 후 Y양의 모습이다
당시에는 웹캠이 보편화되고 '하두리'라는 일종의 SNS가 유행이었다
(나는 하두리를 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뭘 하는 곳이었는지는 모르겠다)
PC방에 가면 IE 첫페이지가 하두리로 설정이 되어 있는 컴퓨터들이 꽤 많았다
crazy arcade(b&b)에 푹 빠져있던 나는 엄마 눈을 피해서 종종 PC방에 놀러 가곤 했는데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을 하자 하두리의 메인 페이지가 열렸다
화면 중간 부분에 월간 베스트 회원 리스트가 있었다
클릭하니 신천 즈음에 가면 흔해빠진 양아치 종족의 45도 각도 과다노출 얼짱식 사진이 주루룩
그 중간에 머리를 지푸라기처럼 탈색하고 아이라인을 짙게 그린 Y양이 있었다
역삼동 인근의 한 PC방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심심해서 찍는다는 친절한 자기소개까지
주변에 알바를 하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알바를 해서 용돈을 벌어야 할 만큼 쪼들리는 친구도 없었고 공부에 치이는 고2 였으니까
기껏해야 기타나 prada 백팩 -엄마가 쉽게 사주지 않는 것들- 을 사려고 단기로 뛰면 모를까
머리를 그렇게 물들이고는 학교를 다닐 수 없다
그녀는 마냥 착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비뚤어진 아이는 아니었는데
편모 슬하라던가 소녀 가장, 그런 불우한 가정 환경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 Y가 비행 청소년이 되어버렸다
Y가 어긋난 것과 우리의 따돌림에 인과 관계가 없다고 하면 이기적이다
이제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고 나도 차츰 그 사실을 잊어갔지만
책이나 뉴스에서 따돌림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 마다 오래된 바늘이 박힌 양심이 욱신거린다
그런 내가 새로운 따돌림을 행하고 있다
"나는 이 사람을 따돌리겠어!"라고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따돌림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고 있는 걸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이를 30살이나 먹고 사람이 싫다고 일부러 피하는 나나,
나이를 35살이나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따돌림을 당하는 그 사람이나
좁디 좁은 마드리드의 유학생 사회에서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상황은 왜 시간이 지날 수록 나아지지 않고 더 악화되기만 하는지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아 외로운 그녀의 모습을 우연히 본 날이면 마음이 짠하다가도
그 다음날 들려오는 그녀의 또다른 기행에 넌덜머리가 나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한 사람만 빠진 아파트 주민 모임에 괜시리 미안하다가도
저녁 무렵 안 좋은 이야기를 또 듣고 나면 더이상 답을 낼 수가 없다
22 November, 2011
veinte y dos de noviembre
시할머니의 부고를 들은 것은 오전 11시 반이었고
유일하게 발인 전까지 시간을 맞출 수 있었던 항공편은 오후 2시에 떠나버렸다
직항도 아닌 대한항공이 일주일에 세 번만 뜨는 이 곳의 물리적 거리가 오늘따라 버겁다
뭐든 하고 싶은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니
기분전환을 해볼까 하고 깎은 단감이 너무 떫어 흙을 집어 삼킨 듯 입 안이 껄끄럽다
오늘은 인생의 수많은 날 중 '떫은 날'이다
20 November, 2011
veinte de noviembre
요 며칠 -한참 뒷북이지만- <짝> 노총각 노처녀 특집편을 보고 있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나이인 40대 중반의 철벽같은 싱글들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난다
남자 1호부터 7호까지, 여자 1호부터 7호까지
왜 여태껏 짝을 만나지 못했는지 연애를 많이 하지 못했는지 쉽게 수긍이 간다
다섯 누나 밑에서 귀하게 자란 도끼남부터 학벌지상주의녀, 싸이코 페어, 그냥 병신까지
이럴 때 마다 적령기 안에 결혼이라는 숙제를 해치웠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안도감 이상의 여유?
아니, 우월감 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선도 보지 않았고 주말 마다 잡힌 소개팅에 넌더리가 난 적도 없으며
검증되지 않은 만남의 자리에서 이름도 알고 싶지 않은 병마티스트들을 마주보지 않아도 되니까
결혼 적령기의 한복판에 있는 나이라 싱글 친구들 앞에서 우월감을 갖는 일은 아직 없지만
가까운 친구들 중 몇몇이 과연 언제 어떻게 결혼을 할지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불안하고 걱정이 되더라도 "남의 인생이기 때문에" 절대 이러쿵 저러쿵 하지는 않는다
다만 해가 바뀌는 체감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친구들이 좀 더 현실을 직시하고 시장의 흐름을 읽어줬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조금 이르게(?) 결혼 한 탓인지 결혼은 언제 하는 게 좋겠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되는데
남자에겐 30대에 접어들고 생각해도 늦지 않고
여자에겐 30대 초반을 넘기지 말라고 대답하곤 한다
말도 안 되지
지금 내 나이가 벌써 (한국 나이로) 30인데 2011년은 한 달 하고 열흘 밖에 남지 않았다
동갑내기 여자친구들에게는 이미 노란 경고등이 켜졌다는 말이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겨냥하고 지금 급히 남친을 만드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보자
적어도 6개월은 사귀어야 결혼 이야기가 나올 터이고 합의 후 최소 3개월
천생연분을 만나거나 양가의 절대적인 서포트가 있지 않고서야 2012년에 결혼 할 가능성은 0%
다음 해로 넘어가면 이미 32세, 마지노선이다
현재 남자친구가 있기는 한데 그가 동갑이거나 30대 초반이라면?
그는 결코 급하지 않지만 그녀는 이미 조급해져서 서로의 needs가 맞지 않게 된다
실제로 '번듯한 직장에 성격도 무난하지만 동갑인' 남자친구와 영 진전이 없는 E양도 있으니까
BFF라 칭하는 D양은 안좋은 기록을 매년 갱신하고 있다
20대 초반부터 꿈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였던 그녀는 지치지도 않고 남자친구를 만든다
남자마다 꽤 오랜 기간 교제를 하고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되는가.. 싶다가도 금새 뒷통수를 맞고 버려지기를 반복
거절 당하는 이유도 가지가지
성격이 안 맞아서, 돈을 많이 쓸 것 같아서, 건강한 2세를 출산하지 못 할 것 같아서
나 스스로도 D의 취향이나 결혼관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니까 놀랄 일도 아니다
다만 주변과 스스로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그녀의 성격이 마음의 병을 키우는 것 같다
예전보다 훨씬 신경질적으로 변했으며 피해망상이 생겼다
한마디 툭 던지는 것도 snobbish married의 잘난 척 섞인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엄청난 기적 없이 D가 2014년 이전에 결혼 성공하기는 1억 모으기 보다 어려워 보인다
(1억을 모으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는데;)
오전에 카톡으로 대화했던 no군도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변에 여자는 많다고 했다
별로인 여자는 많다고 했다
'별로인 여자'가 뭔가 했더니 결국 얼굴이 별로인, 예쁘지 않은 여자란다
얼굴이 예쁜 여자는 옆에서 징징대는 것도 귀엽게 보인다고 했다
no군은 징징대고 비논리적인 여자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얼굴이 예쁘면 용서가 되나 보다
이의는 없다
모든 여자는 징징대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왕이면 얼굴이 예쁜 편이 낫겠지
그렇지만 예쁜 여자는 희귀종이고 그런 종자를 얻으려면 뭔가 획기적인 장점이 필요하다
no군은 아직 그만한 장점을 개발하지 못했는지 5년 째 여친이 없으시단다
30대 중반이나 되면 결혼할까 생각 중이라고 하길래
그 나이에 예쁜 -그리고 어린- 여자를 만나고 싶으면 carrera 4s 정도는 필요하다고 해줬다
19 November, 2011
diez y nueve de noviembre
또 다시 지독한 목감기가 찾아왔다
바보라 감기는 잘 안 걸리는데 스페인에 오고 나서 벌써 두번째
코감기 종합감기 몸살감기 약은 약국 마냥 다양한데 목감기 약은 따로 구비해놓은 게 없다
이 나라는 기본적으로 약값이 비싼데다가 OTC는 효능이 약하기 때문에
급히 약국에서 사다 먹는 건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새벽에 깨서 시커먼 죽염으로 가글을 했는데도 좀처럼 나아지는 기색이 보이질 않는다
(스페인 산이 아닌) 다른 나라 와인을 좀 사려고 lavinia에 가기로 한 날이다
아침부터 재빨리 카레를 만들어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오빠와 함께 mall에 나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hakei나 massimo dutti에도 들러 볼 겸
(교복처럼 입던 라이더스가 찢어져서 당장 아우터가 급하다)
곱게 곱게 화장을 하고 나섰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었나, 도착하자마자 대판 싸우고 그 길로 돌아와버렸다
싸우게 된 이유가 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래 오래 기다려왔던 간만의 '함께 외출'인데 완전 망쳐버렸다
매일 매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장 보러 다니고 점심 약속이 잦다고 해서 마냥 즐겁진 않다
오빠는 -아무리 공부 할 게 많아 바빠서 미치겠다고 해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오빠처럼 할 일이 많아 바쁜 게 좋겠다
일주일 내내 놀 시간 없어도 상관 없다
어차피 지금은 시간이 남아돌아도 놀지 못 하는 걸
매일 어두컴컴한 집에 앉아서 오빠를 기다리고 함께 집에 있을 때에도 늘 홀로 거실에 앉아
혼자 책을 보고 혼자 맥주를 마시고 혼자 컴퓨터를 하고
불규칙한 귀가 시간에 맞춰 매일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혼자 장을 봐서 혼자 무거운 생수까지 이고 나른다
혼자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묶고
늘 혼자 있는 기분이 지속되고 외로움에 사무쳐 이런 데다가 하소연 할 뿐이다
메아리조차 치지 않는 혼자 만의 세상에서 말이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단란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가족들을 보면 부럽다
옆 집 D씨 네가 부럽다
부부가 매일 같이 외출을 하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나는 투개월이 넘도록 마드리드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아직 cochinillo asado도 못 먹어봤다
나만 먼저 맛보기 미안해서 오빠를 기다리느라 말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라면 언제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
하루종일 쇼핑하려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두 시간 같이 보내는 것 만으로도 들떴었는데,
40분 만에 돌아와 검은 눈물 범벅이 되어 이불 속에 처박히니 너.무.서.럽.다
달리 갈 데가 없어 보기 싫은 사람이랑 한지붕에 있는 것도 서럽다
16 November, 2011
diez y seis de noviembre
어제 hipercor에 들러서 'campo real' 이라는 올리브를 사왔다
진한 청록색을 띠며, 다른 pickled 올리브 종류들과는 달리 시큼하지 않다
시고 짠 맛이 없기 때문에 음식에 곁들이기 보다는 식전 또는 술안주로 어울리는 올리브
드문 드문 잎사귀가 달려있어서 귀엽다 ㅎㅎ
어제의 Z양에 이어서 오늘은 이 올리브를 소개해 준 사람을 탐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손가락이 쉽게 움직여주질 않아서 포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안타깝고, 그래서 할 말이 많은데도 그게 오히려 독이 될 것만 같다
내가 그 사람을 안쓰럽게 여긴다고 자각 할 수록
앞으로 그 얼굴을 볼 때 마다 연민의 감정만 눈덩이처럼 불어날테니까
'안쓰럽다'라는 생각 자체가 무의식 중에 내가 그를 무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러고도 남는다
은연 중에 사람을 무시하는 것
이게 나에게만 있는 병인지, 내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병인지,
아니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모두 지니고 태어나는 필수 요소의 하나인지 매우 궁금하다
아 물론 mother theresa나 gandhi 같은 위인들은 안 그랬을거야
잠깐- 위인으로 격상되기 전에는 혹시 그랬는지도?
본디 평범한 인간이었다가 자기 성찰과 적절한 계기로 인해 마음의 여유를 얻었을지도 몰라
사람의 마음 속에는 천사와 악마가 house sharing을 하고 있다
악마가 원체 힘이 세고 가진 게 많기 때문에 (천사를 쫒아내고) 악마 혼자 사는 집은 꽤 되지만
천사 혼자 넓고 쾌적하게 사는 집은 드물거다
gandhi네 살던 악마는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병사했겠지
'안쓰럽다'라는 감정의 뿌리는 천사의 이타심일까, 악마의 근자감일까
누구라도 좋으니 "그건 네 안의 천사가 행하는 거야"라고 말해준다면 죄책감이 덜 할텐데
15 November, 2011
quince de noviembre
요즘 블로긩에 맛들인 옛 친구 Z양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녀는 내 주위에서 큰 가슴 best 5 안에 들기도 하지만 촌스러운 얼굴로는 no. 1 이다
어쩜 저렇게 촌빨 날릴 수 있는지, 볼 때 마다 감탄스럽다
10년 째 고수하는 바가지 머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광대뼈에 내려앉은 자잘한 주근깨,
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촌년병(=빨간 볼때기), 길게 찢어진 외꺼풀 눈
가슴은 크지만 어깨가 좁고 머리는 큰데 키가 작다
항상 깊은 팔자 주름을 만들며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그녀
그런 큰 웃음을 지으면 광대뼈도 덜 보이고 외꺼풀도 가려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서울에서 산 지 벌써 7~8년이 되어가는데도 그녀에겐 도회적인 구석이 없다
여전히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나마 충청도 태생이라 서울말을 자연스럽게 잘 해서 다행이지만)
Z양의 패션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빈티지'
문제는 외모 때문인지 chloe sevigny와 같은 삘이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 끝부터 얼굴을 타고 내려가 발 끝까지 그냥 구제 가게에서 주워 온 아이처럼 보인다는 것
물론 그녀에게 3.1 phillip lim을 입힌다면 어울릴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좀 더 쿨한 옷을 입는다면 -땡땡이 초록 타이즈 말고!- 더 예뻐 보이지 않을까
그러나 Z양은 돈이 없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았던 2003년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항상 돈이 없다
가방끈이 짧아서 페이가 높은 일자리는 구할 수가 없다
상경한 고졸 처녀일 때는 한 사진관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고, 전문대 사진과를 졸업한 지금은
홍대의 오랜 인맥에 기대어 근근히 일을 따내는 것 같다
그녀를 보러 사진관에 놀러가면 우리는 쟁반짜장을 하나 시켜서 나누어 먹곤 했다
슬프고 괴로운 일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월 20만원으로 얹혀 살던 친구네 집에서 쫒겨난 후 이사 한 옥탑방에는 도둑이 들고
유일하게 사치하던 화장품 파우치는 잃어버리는 게 연중 행사
밥벌이 도구인 카메라가 고장나 월급에 맞먹는 견적이 나오고
5년 째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J씨는 음악 밖에 모르는 착하지만 무능한 남자
그의 부친이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셔서 집안이 한참 기울었기 때문에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즐거워 보인다
여전히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을 수 있고, 많은 사람이 머리에 피가 말라 홍대 바닥을 떠나도
꿋꿋이 공연장을 지키고 꾸이골목에서 뒷풀이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살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쟁반짜장 하나를 나눠 먹던 우리는 이제 너무 다른 길을 걷는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지난 여름 pentaport festival의 뻘밭
오랜만에 만나도 스스럼없이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Z는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앞으로 우리가 마주 앉아 오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14 November, 2011
catorce de noviembre
요즘 즐겨보는 네이년 웹툰 중에 <패션왕>이라는 병맛 만화가 있는데
최근 4주에 걸쳐 연재한 특집편에서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다
(특집편의) 주인공 곽은진은 (실제) 주인공인 우기명을 짝사랑하는 평범한 여고생
좀처럼 우기명에게 접근 할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요즘 아이들답게 카톡으로 메세지를 보낸다
"뭐해?"
이런 거
놀랍게도 우기명에게서 답장이 온다
"걍 있지ㅋ"
답장은 받은 곽은진은 심장이 터져나가는 기쁨에 눈에서 자꾸만 땀을 흘리고
그 이후로 수시로 -또는 매일 매일- 우기명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뭐해?"
"뭐하삼?"
"우기 모해?"
"모행?"
처음 한 두번 간단하고 짧은 -사실 성의와 관심이 담기지 않은- 답장을 날려주던 우기명에게선
더이상 연락이 없고 카톡 대화창에는 곽은진이 보내는 노란 말풍선만 줄줄이 남았다
곽은진과 같은 기분, 누구나 한번쯤 느꼈을 법 하다
전화벨도 푸시도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불쌍한 영혼의 모습
<bridget jones's diary>에서 jude가 그랬다
전화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몰려 있기 때문에 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잠시 정신을 딴 데로 돌리면 그 사이에 분명 새로운 연락이 와 있을 것이라고
이 소설에 맹목적인 사랑을 쏟는 나는 이 말 역시 맹목적으로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관심을 쏟지 않으려고 해도' 요즘 나의 페북 푸시 리스트에는 새로울 게 없다
늘 리플을 달고 반응을 하는 사람들 몇몇 뿐, 새로운 사람의 소식은 없다
그저 새로우면 왠지 반가울 것 같다
곽은진처럼 사랑에 빠진 소녀도 아니면서 그냥 막연히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
몇 년 간 너무 평화로운 삶이 계속 되어서 지루하단 말이다
20대 초반의 매일 밤을 함께하며 리플 놀이를 하던 깐돌이 친구들 같은 이가 쨔쟌! 하고 나타나서
나를 마구 마구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다
가볍고 재미난 사람이 아니라 진지한 몽상가라도 좋다
소재가 고갈된 나의 대화 풀(pool)을 넓혀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 육아, 어린이집, 그릇, 야근, 돈이 배제된 이야깃거리를 가진 이라면 누구든 좋다
대화에 목 마르고 솟아나는 감성을 주체할 수 없는 내가 이 공간에 매달리는 게 당연하다
내 마음대로 타이핑 할 수 없는 이 곳 마저 없으면
나는 언제, 어디에 내면을 토해낼 수 있을까
지칠 줄 모르는 '쓰기 본능'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차라리 cyworld 미니홈피에서 일기를 쓰던 때가 좋았다
내 일기를 매일 매일 보러 오는 팬들도 있었는데...
12 November, 2011
doce de noviembre
화장을 하다보니 몇 년씩 동고동락한 화장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산 지 3~4년이 지난 묵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똑같은 제품을 또 사고 또 사고...
새삼스레 나의 브랜드 충성심이 얼마나 강한지 놀라게 된다
화장품들의 면면을 훑어보자면
mac이 가장 많고 chanel과 lancome도 꽤 된다
아이라이너는 무조건 mac powerpoint pensil을 쓰기 때문에 색색깔로 구비되어 있고
bobbi brown의 bone 컬러 섀도우는 아마 지금까지 5통은 썼을 거다
signature color로 선택한 립스틱은 rouge coco chance, 앞으로 3개는 더 사겠지
곧 죽어도 clarins의 fix 없이는 못 살고 블러셔는 무조건 shu uemura
l'occitane의 shea butter cleansing milk를 꾸준히 써 왔는데 단종이 되어 버려서
급한대로 immortelle 라인으로 바꿔봤는데 괜찮더라고.. 정착하기로 결정 ♥
화장솜은 한국 브랜드인 skinfood의 코튼 실크 어쩌고가 가장 잘 맞는다
정확히 10년 째 쓰는 origins의 checks and balances 역시 당당히 세면대를 지키고 있다
(번외편으로) california baby의 calendula cream과 sensodyne pronamel 치약 역시
내 화장실에서 한 자리씩 꿰찬 당당한 제품들
부엌으로 옮겨봐도 가관이다
우리집 부엌은 어딜 봐도 oxo 천지, 미국에서 걸린 불치성 전염병이다
레몬스퀴저 미트텐더라이저 뒤집개 패스트리브러쉬 BBQ집개 거름망 샐러드스피너 스패튤러
키친타올롤러 계량컵 보존용기...
빨간색 oxo 로고만 보면 눈이 뒤집히고 이성이 달아난다
앞으로 아이스크림 스쿱과 뒤집개만 몇 개 더 사면 될 것 같은데 ㅎㅎ
IT 기기는 말 할 것도 없이 apple, 진공 청소기는 dyson, 카메라는 leica
디너웨어는 villeroy & boch, 와인 글라스는 riedel, 선글라스는 tom ford
스키니진은 j brand, 스니커즈는 converse, 플랫슈즈는 repetto, 골프 용품은 titleist
한 제품만 파고들다보면 다른 더 좋은 것에 눈을 돌리지 못해서 도태 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기준 덕분에 충동 구매를 방지하고 쇼핑 시간이 절약된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꼽은 브랜드들은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에서 상위군에 속하는 것들이 많아
구매 후 만족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lanvin의 스니커즈는 완벽하지만 내 신발장을 전부 그것으로 채우기엔 너무 비싸다
가격대가 affordable 하느냐 아니냐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
이렇게 길게 썰을 풀게 된 동기는 사실,
오늘 놀러 나간 alonso martinez 근처에서 마음에 쏙 드는 샵을 발견한 것
malababa라는 로컬 브랜드 샵인데 앙증맞은 주얼리나 밀리터리 부츠가 내 혼을 빼앗았다
왠지 앞으로 야금야금 사모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하는 얘기였다 ㅎㅎ
11 November, 2011
once de noviembre
거실 창문으로 바라보이는 밤하늘이 숨 막힐 듯 아름답다
빠르게 지나가는 길다란 바게뜨 모양의 구름에 가려있던 보름달이 얼굴을 내밀자
순간 하늘이 환해지고 겹치고 겹친 구름의 입체적인 구조가 드러났다
달빛이 비치는 곳의 밝은 구름과 그림자 진 어두운 부분이 연속적으로 이루어내는
입체감이 대단하다
하늘이 얼마나 높고 넓게 펼쳐져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원근감은 마치, cirque du soleil의 <O>가 보여주는 무대의 깊이만큼 신비롭다
구름이 tony sly의 'stunt double'에 발 맞춰 달린다
글을 쓰는 지금도 구름의 사이 사이로 달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급히 사진을 찍었지만 똑딱이로 이 밤하늘의 광활함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 리 만무하고
이 우주가 느껴지는 순간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다
한국을 떠나 사는 삶은 외롭지만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넓은 하늘의 모습을 실컷 볼 수 있다는 점에 위로를 받는다
오늘의 밤하늘은 웅장해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에
이보다 더 밝을 수 없는 보름달이 하늘 한가운데 떠올라
내가 있는 곳은 그저 하늘 아래 작은 점일 뿐이라고
저 달을 함께 보고 있다면 한 하늘 아래 있는 것이라고
잊고 있던 기쁜 사실을 확인해주는 고마운 하늘이야
또한 나만 홀로 너무 멀리 있다고 알려주는 무서운 하늘이야
지금 당신도 tony sly를 듣고 있다면 좋을텐데
... 라고 누구에게 적어 보내면 좋을까
심지어 함께 달을 볼 수 없는 시간대에 있을 지도 모르는, 있지도 않은 사람
요즘 나를 지배하는 대부분의 감정은 외로움이다
아무도 초록불이 켜지지 않은 페북의 첫 페이지를 멍하니 들여다보는 외로움이다
한 지붕 아래라도 두꺼운 문으로 가른 두 개의 공간에 따로 있을 뿐인 외로움이다
사실 나는 감성적이고 때론 나약하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외로움이다
사람이 그리워서 관심을 보였을 뿐인데 집착이라고 오해 받은 외로움이다
달리는 삶에 지쳐 힘들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느긋히 공상하는 외로움이다
아직은 조금 남아있는 희망에 즐거워하는 tony sly의 모습이
이제 전부 망가져서 "it ends like this"라고 읖조리는 joey cape로 변하는 것과 같다
이 남자는 어찌 이렇게 구슬프게 기타를 칠까
2011년 11월 11일
100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이 날은 정말 doomsday 인지도 모르겠다
10 November, 2011
diez de noviembre
이런 날이 있구나
글도 안 써지고 머리가 붕 떠서 쉽사리 가라앉질 않는다
페북에 간간히 뜨는 푸시만 확인 할 뿐 다른 활자는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지금 나는 무엇이 문제인걸까
09 November, 2011
nueve de noviembre
삶의 모습 하나 하나가 전부 아름다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왠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으니까, 일상이 화보인 셀렙이라도 영국 왕족이라도
off the record의 모습은 별 반 다를 것 같지 않다
고르고 골라 입은 전투복에 화장을 곱게 하고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 마다 드는 생각이다
클러치를 감아쥐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구두를 또각거리던 모습은
현관문을 닫고 킬힐에서 내려오는 순간 유령처럼 사라지고
홈웨어 -라고도 부를 수 없는 그냥 편한 옷- 에 수면양말 차림으로 갈아입고
밀린 설거지와 빨래에 치여 짜증 난 채로 집 안을 부산히 돌아다니는 주부만 남는다
귀찮아서 미처 못 지운 풀메이크업이 홈웨어와 심한 대조를 이루는데;
사는 게 다 그러치
... 그렇지?
07 November, 2011
siete de noviembre
대충 해먹으려고 했던 저녁 메뉴가 콜라 찜닭이 되고
남은 닭뼈 쓰레기 치우고 제일 큰 사이즈 all clad 팬까지 설거지하고 나니 녹초가 되었다
찜닭하고 남은 콜라캔을 들고 작전 본부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부터야 내 시간 ♥
lamucca에서 먹은 런치는 너무나도 맛있었지만
그 전에 들른 favorit에서 크림을 과하게 올린 choco caliente를 먹어 속이 불편하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페북 패스워드를 바꿨는데도
여전히 무언가 빠뜨린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든다
부디 café bómbon과 콜라의 카페인 콤보 공격 때문이기를...
긴 긴 저녁 시간을 외롭게 만드는 한국과의 시차가 불만이다
미국에서 있을 때 보다 백배 천배 불편해! 더군다나 day light saving이 끝나면서 더더욱!
오후 6시가 지나가면서부터 페북의 초록불도 점멸등처럼 껌벅거리다 서서히 사라지고
카톡의 푸시도 드문 드문하게 되어서
마드리드 한 구석에 혼자 남은 처지를 강조한다
나는 저녁밥을 먹고 부엌을 치우고 난 후에 얻어지는 이 적막한 시간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채팅을 하며 온갖 썰을 풀고 싶은데
이리 저리 궁리를 해봐도 깨어 있는 사람이 없다
5년 전만 해도 서로 '북극곰'이라고 자칭하는 폐인들과 서로의 밤을 위로하며 즐거웠는데
그 사람들도 이젠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고 직장인이 되어
밤 10시가 되면 TV를 끄고 (싫어도) 잠자리에 드는 일반인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역시나 나만 홀로 남겨진 기분이다
이제 나도 그만 일반인이 되는 편이 맞을까
06 November, 2011
seis de noviembre
얼마 전에 강사장이 '아이러브스쿨'과 동창회는 난잡하고 위험하다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페북에서 우연히도 아니고 의도적인 것도 아니게 중학교 친구를 만났다
일부러 그 이름을 검색한 건 아니지만 다른 친구를 찾다가 낚은 부산물(미안;;;)이니까
우연도 필연도 아닌 재회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no군과 새로이 페북 친구가 되면서
깊숙히 봉인해뒀던 어린 시절의 원천 기억의 일부가 밑바닥에서부터 가물 가물 피어올랐다
no군과 나는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담임 선생이 누구였는지도 뭔가 특별한 사건이 있었는지도 이젠 알 수가 없지만
반평생을 아웅다웅 하면서 지내는 JY군과도 같은 반이었던 시절이다
나와 JY는 워낙 각별(?)했던 터라 나란히 앉아 노는 -수업을 듣는- 시간이 많았고
no군은 종종 내 뒷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을 그려보자면 창가 쪽 1분단 뒤에서 두번째가 본래 내 자리
뒤에서 네번째였던 JY가 내 짝을 내쫒고 옆자리로 놀러와 같이 앉았고
1분단 맨 뒷자리에 키다리 no군이 잔뜩 웅크리고 앉아 나랑 쪽지 돌리기를 했었다
no군의 자리가 원래 그 곳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으로서는 나와 놀기 위해 일부러 바꾼 건지 알 길이 없고
어렴풋이 늘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JY와 알력이 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no군은 중학교 졸업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냐고 했지만
내 기억엔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잠깐 그를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역시 확인 불가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기도 뭣하니 영영 미확인 사실로 남겠지
온통 뿌옇게 안개 낀 추억 뿐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no군은 반갑다
어디서 뭘 하고 잘 지내는지 문득 문득 궁금한 사람들 중 하나였으니까
there are some people you may know 라며 바람나 도망친 구남친이나
회사에서의 웬수덩어리, 친구의 구남친의 새 여친 등등 쓸데 없는 인간 관계를 조장하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페북이지만,
가끔 이렇게 재밌는 일을 만들어주니 기특하기도 하다
사실 no군과 친구를 맺은 것 뿐 긴 대화를 하며 서로 추억을 나눈 것도 아닌데도
오늘 하루 잊고 지냈던 오래된 일들을 떠올리며 잠시 설레였다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04 November, 2011
cuatro de noviembre
우산 쓰고 버스 타는 생활은 이제 안녕
마드리드 입성 후 꼭 두 달을 채우고 다시 자차족이 되었습니다 ♥
양파가 떨어지면 어느 때고 사러 나갈 수 있고
우체국 볼 일도 미루지 않고 갈 수 있고
일요일 오전 미사를 보고 브런치를 먹으러 갈 수도 있고
차가 있고 없고로 삶의 질이 얼마나 달라지는가
평범한 20대 초반 뚜벅이들은 아직 모른다
시린 손을 불어가며 밤거리를 걸어도 행복했던 여자는 남친이 차를 사는 순간,
눈 앞에 처음 맛보는 세상이 열리며 기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오르게 되고
준중형 다음엔 SUV, 국산 다음엔 수입차를 필수 조건으로 내세운다
(소형 따윈 원래 계산에 없는 거다)
자동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리어카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오너의 자존감을 조율하는 신이 내린 도구이다
대놓고 자랑 뿐인 블로그를 싫어해도, 자동차 관련 블로그 -돈자랑의 결정체인- 는 괜찮다
(그게 설사 '세차형'이라도;;)
차는 자랑 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크게 크게 지르는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미리 사둔 세차 용품을 들고 나가 블랑카 -뽕카 2호기의 코드네임- 의 속살을 싹싹 닦아줬다
뽕카 1호기가 물려준 아이폰 충전기와 아이팟 케이블로 단장을 마치자
블랑카는 훨씬 '우리차'다워졌다
03 November, 2011
tres de noviembre
어제가 좋은 날이었다면 오늘은 "미친날"
(부제 : 날씨 너 때문에 내가 미쳐)
weather.com 앱에 뜨는 열흘에 걸친 떼비구름을 보고 겁에 질려
뽕카 2호기를 데리고 오는 데 관련된 일이 아니고선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손도 근질근질 발도 근질근질
오늘도 역시 90%에 육박하는 비 예보에 일찌감치 시내 나들이를 접고
집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걸린 닭 마냥 꾸벅 거리고 있었다
무심코 '영화나 한 편 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처음으로 혼자 티플 웹사이트에 들어가 영화 다운로드를 걸었다
고화질 블루레이면 다 좋은 거겠지?
arc 파일이라고 올라와 있는데 이게 뭐지?
우리 TV로 볼 수는 있는 건가?
압축 못 풀면 680포인트는 버리는 거야?
훗- 내 돈도 아닌데 버리라지 뭐 ㅋㅋ
더듬 더듬 다운로드 버튼을 클릭하고 어쩌고 있는데 창문에서 무언가 푸드득 푸드득 했다
순간 떠오른 생각은 '비둘기?'
...비둘기일 리가 있나 이 동네는 까치네 구역인데
범인은 BB탄 만한 우박이었다
'ㅅ'
아 그래 여긴 유럽이었지
우박의 나라 유럽
유럽의 나라들은 모두 우박의 나라
푸드득 푸드득 비둘기가 몸 털 때 탈출하는 벼룩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우박에 신이 나서
옆집 지윤에게 카톡을 날렸지만,
미처 send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우박 종료
다시금 해가 납니다
-_-
아 그래 여긴 유럽이었지
변화무쌍한 날씨를 가진 유럽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유럽의 경제
"우박이다 우박이 온다아아아" 하고 헛뻐꾸기를 날린 양치기 소년이 된 듯 하여
살짝 의기소침해지려는데 이번엔 돌풍과 함께 엄청난 소나기가!
또 다시 신이 나서 새로 바른 창고 벽의 비닐이 충분히 역할을 다 하는지 확인도 하고
집 구석 구석을 뛰어다니며 비 구경을 했지만 또 5분 후 종료
=_=
아 나 오늘 정말 심심한가봐요
02 November, 2011
dos de noviembre
"좋은날"
꼭 이렇게 적고 싶은 하루랄까
어제는 보험 알아보다가 스스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저녁 먹고 심하게 체했다
비몽사몽 하다가 (무려) 밤 10시 쯤 쓰러져서 자버렸던 걸로 기억
그렇게 고민하고 신경 썼던 것이 무색하게
아침 일찍 linea directa라는 보험 회사로부터 영국녀성 에이전트의 전화가 와서
너무 좋은 견적을 받고 기쁜 마음에 그대로 계약을 완료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에이전트를 찾기 위해서 마드리드 곳곳을 헤매며
눈에 보이는 모든 보험 대리점 문을 다 두드려 볼 각오까지 했던 게 바로 어젯밤
그러니 밥이 얹힐 만도 하지
한국에서 가져온 국제 면허가 통과가 안 될까봐 전전긍긍했던 부분도
펜실베니아 면허증으로 단번에 해결 (정말 한국 면허증은 무용지물이었다...)
미국에서의 운전 경력 2년에 no claims point까지 인정 받아서
예상했던 1,500유로 이상의 금액이 총 493유로로 확 줄어버렸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이 금액은 스페인 국민들과도 거의 차이가 안 나는 수준
expat program을 운영하기 때문에 모든 업무를 영어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전화를 끊고 5분 만에 날아온 보험 계약서 역시 영문판과 스페인어판 두 가지
생년월일이 잘못 됐길래 전화로 수정했더니 역시 1분도 못 되어 새 서류가 날아왔다
결과적으로 나는 잘 되었지만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씁쓸하기도 하다
한국과 스페인은 운전 면허 상호 교환 협정이 있어서 한국 면허는 따로 시험보고 할 것 없이
스페인 면허로 1:1 교환이 가능하다
미국 면허만 가진 미국인이라면 여기서 필기 & 주행 시험을 보고 새롭게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 회사들은 한국에서 발급한 운전 면허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영국이나 미국의 면허는 보지도 않고!!! 보험 가입을 시켜준단 말이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에 비해서 좀 더 고군분투 해야 하는 게 현실
그렇지만 어쨌거나 1,000유로를 절약한 나에게 오늘은 좋은 날 :)
01 November, 2011
uno de noviembre
11월의 첫 날은 all saints' day
마치 내가 '죽은 자'인 것 마냥 집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하루를 보냈다
halloween도 없는 듯이 보냈는데 가톨릭의 휴일 조차 특별한 일이 없구나
쉴 새 없이 공부에 치이는 오빠가 밉고 자동차니 보험이니 나한테 떠넘기는 오빠도 밉다
그리고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엔 당연히 밥 하기도 싫은 법이다
수십 개의 자동차 보험 회사 웹페이지를 읽고 gps 리뷰를 검색하다보니
훌쩍 해가 지고 벌써 저녁을 먹을 우중충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 전에 딱 30분 만 내 시간을 갖기로 하자
뭐가 좋을까? 책을 읽을까?
요즘은 <비밀의 요리책>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빨리 읽히는 편은 아니다
환상 스릴러라고 믿고 펴들었더니 잔잔한 감동이 있는 뻔한 이야기
맛있는 요리를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컨셉인데
누가 지금 나에게 배배 꼬인 속을 풀어낼 수 있는 멋진 요리를 좀 해주면 딱인데
31 October, 2011
treinta y uno de octubre
여기는 metro ciudad lineal 근처 alcalá-norte라는 몰에 있는 까페
중고차 딜러쉽에 왔다가 담당자 부재로 세 시간을 길에서 때워야 하는 상황이다
café con leche 두 잔 시켜놓고 공부가 바쁜 오빠는 수학 공식과 씨름 중
나는 멀뚱히 사람 구경..
하기엔 서울 강북 변두리 쇼핑센터 수준의 가게 몇 개만 있을 뿐이라 볼 게 없다 ㅠㅡㅠ
서울에선 구질구질한 동네에 가는 거 정말 질색했었는데,
여기선 뭐 나 역시 이런 이민자 동네에 어울리는 노오란 유색 인종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latino들보다 못할 지도;
이번 주 중으로는 꼭 차를 샀으면 좋겠다
두 달 남짓 대중교통 타고 '참 잘 다녔지만', 사실 꾹꾹 참는거지 좋아서 했을 리가 있나
달리 방도가 없었을 뿐이다
매일 버스를 두 세번 갈아타며 다니는 것과,
차는 있지만 복잡한 시내 주차를 피하려고 가끔 버스를 타는 건 천지 차이
한국 떠날 때 보다 몸무게가 2kg 빠진 것도 대중교통이 갉아먹은 게 틀림없다
아직 계약을 한 것도, 한국에서 송금이 도착한 것도, 보험 문제가 해결 된 것도 아니지만
벌써부터 rear-view mirror에 다는 fuzzy dice를 어디서 구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dice 사러 런던 가겠다 하면 혼나겠지? ㅋㅋ
지난 두 달 동안
bmw 1, alfa romeo giulietta, mito, vw polo, golf, fiat 500, mini clubman 등
온갖 모델을 넘나들며 새 차를 사네 중고를 사네
(언어적 한계를 커버하기 위해) 컨설턴트를 쓰네 마네
수십 개의 메일을 보내고 영어 메일은 다 씹히고
차를 고르는 데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건 인정
마음을 비우고 seat의 ibiza로 결정했다면 적은 금액에 빨리(9월 중?) 새차를 뽑을 수도 있었다
얄팍한 budget을 가진 주제에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뽕카 1호기에 비교하고 엔진 성능이 어쩌구 저쩌구..
부끄러운 모습임은 잘 알고 있지만
어쩌겠어?
나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동차를 보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살았는 걸
...
그리고 정말 운전 하는 걸 좋아한단 말이에요 ♥
(누구한테 항변하는 건지 ㅋㅋ)
4 hrs later
finalmente, 우리는 차를 예약하는 데에 성공했다
(신차를 계약 하는 게 아니고 중고차 예약금을 치뤘으니까 '예약'이 맞다)
2010 VW golf 1.4 tsi 122cv dsg sport
가솔린을 먹는 1.4리터 미니사이즈 엔진 -클릭이나 아반떼보다 작아!- 에 7단 자동변속기
추가금이 안 드는 정통 흰색(candy white)에 16" 알로이 휠이지만
내장은 무려 가죽이다, 베이지색 가죽 시트!!!
유럽에서 도통 찾아보기 힘들다는 가죽 시트 가죽 시트 º ㅁ º
뒷 범퍼가 좀 까이고 왼쪽 휠 하나가 갈린 것만 빼고는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딜러쉽 매니저를 옆에 태우고 시승에 나섰다
pueblo nuevo 지역은 어찌나 골목 많고 언덕도 많고 길은 좁고 사람이 바글바글 한지
실제로 운전한 시간은 5분? 길에 서 있던 시간은 10분?
그래도 작지만 강하다는 1.4 tsi 엔진은 굉장한 토크빨을 발휘하며
오르막길에서 기본 50cm는 뒤로 밀리는 수동의 나라에서 언덕을 마구 기어올라..
가 아니라 그저 다행히 밀리지는 않고 제 자리에
만족스러운 시승.. 이고 나발이고 빨리 차를 계약해버려야 마음이 편했던 우리는
내리자마자 매니저를 끌고 사무실로 들어가서
현금 박치기 -그래봐야 300유로ㅋㅋ- 로 예약금을 건네고 차량 정보를 받아왔다
이번 주 중으로 재빨리 운전자 보험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면허는 보험 가입 승인이 잘 안 나온다길래 마음이 급하다 ㅠ)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오래 걷고 버스도 몇 번을 갈아타는 강행군 후 집에 돌아오니
손 떨리고 다리도 후들거리고 구역질까지 났지만
그래도 좀 통키통키한 마음으로 청소도 하고 저녁 식사 준비도 했다
두 달 기다린 보람이 이번 주에 멋진 모습으로 나타날 것 같다는 설레임에...
30 October, 2011
treinta de octubre
'마드리드 답지 않은' 우중충한 날씨가 잠시 물러가고
파란 하늘에 작은 구름만 드문 드문 있는 밝고 화창한 주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바람이 세서 창문을 열어놓으면 춥다 =_=
건조한 기후에 주변은 온통 바싹 마른 모래밭이라 바람이 불면 바람 반, 먼지 반 이다
거실과 베드룸 창문은 "창문"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커서
환기 좀 해볼까 하고 문을 열었다간 집 안으로 광풍이 휘몰아친다
더군다나 밝은 햇살 아래 문틈으로 들어오는 미세먼지까지 똑똑히 보이고
□ 모양으로 가운데를 뚫어놓고 여러 유닛이 싸고 도는 이 나라 특유의 건축 구조 때문에
우리집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다 (환풍기도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연풍으로 환기를 시켜 음식 냄새나 화장실 냄새를 뺄 수 없다보니
인공적인 방향 시스템에 더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내가 향초를 처음 접한 건 2005년 런던, ikea에서 무려 무향!인 조그마한 초를 몇 개
사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는 향초를 어떻게 켜는지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을 뿐 아니라
좁아터진 방 안에 초를 올려놓을 자리도 마땋찮아서
행여나 불이 날까봐;; 몇 번 켜보지도 못하고 남은 건 옆방 언니에게 줘버렸다
향초를 다시 만난 건 2009년 미국
양놈초 -yankee candle- 의 나라 답게 어딜 가나 향초, 디퓨저, 에어졸 스프레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브랜드도 수백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좋은) 향초는 비싼 아이템이기 때문에 제 값 주고 큰 사이즈 초를 사는 게 부담스러워서
처음에는 할인 매장까지 굴러 내려온 yankee candle을 애용했다
향초의 노예로 종신 계약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제 값 주고 좋은 걸 사자'라는 주의로
정식 매장에서 favorite fragrance를 정해두고 꾸준히 사다 썼지만 ㅎㅎ
내가 좋아하는 초는 jar가 깊은 것 보다는 옆으로 넓게 퍼지고
wick이 2~3개 쯤 꽂혀 있어서 초의 표면이 골고루 녹아 내려 갈 수 있도록 된 것
이런 모양의 초는 yankee candle(2 wicks)이나 bbw(3 wicks)에 많다
2년 내내 큰 불만 없이 두 브랜드의 초를 번갈아가며 사용했는데
사실 향이 좀 싸구려..라고 해야 하나 톡 쏘거나 멀미 날 정도로 달달한 게 많아서
향을 고르는 데 굉장히 신중해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렀던 pottery barn에서 방향제 섹션을 구경해보니
은은한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향이 주를 이루는 게 왠지 우아하게 느껴져!!!
패키지 디자인도 고급스럽고!!!
그래서 미국에서 스페인까지 긴 항해를 마치고 내 품에 안긴 이삿짐 속에는
yankee candle의 pink sands 향초와 pottery barn의 pomegranate diffuser,
섬세한 tuber rose 미니 향초들이 즐비했고
환기를 포기한 이 집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거실에는 디퓨저를 놓아서 항상 달콤한 향이 유지가 되도록 하고
냄새가 강한 생선 요리 같은 걸 먹은 날은 큰 사이즈 pink sands를 두시간 정도 켜놓는다
손님이 왔을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부드러운 tuber rose에 불을 붙이고 ♥
이렇게 매일 같이 애용하다보니 쟁여둔 초가 마구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인다 ㅠ.ㅠ
여기엔 yankee candle이나 bbw는 당연히 없거니와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문화 덕분에(?) 고급 향초 전문점도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남은 초를 다 쓰고나면 isolée에 가서 diptyque를 사게 되지 않을까
300g에 40유로가 넘는 값비싼 몸이지만.. ㅎㄷㄷ
diptyque에서는 타고 남은 심지를 다듬을 때 쓰는 wicktrimer(23유로)도 파는데
이건 누가 선물해줬음 좋겠다 :P
28 October, 2011
veinte y ocho de octubre
한국에서는 x japan이 첫 -그리고 마지막이 될 듯한- 내한 공연이 있었다
그의 팬들에게는 역사적인 날이 되겠지
hide도 없고 taiji도 없지만 그래도 팬들은 we are x 를 외쳐대며 감동했으려나
일음은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는 편이고
더군다나 (내 기준에서) 촌스럽기 그지 없는 비주얼의 x는 '꼭 공연을 보고 싶은' 밴드가
아니긴 했지만 워낙 힘들게 내한했다고 하니 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 하루 전에 검색해보니 s석 티켓이 40%나 할인되어서 올라와 있고..
그래 뭐 대형 밴드이고 전설이긴 하지만, 전설은 전설이니까
이미 그들도 과거로 치워지고 만거다
과거의 밴드로 분류되는 뮤지션들이 현재로 넘어와 공연을 하는 걸 보면
솔직한 심정으로 안쓰럽다
짠하기도 하다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30대 이상이었다는 목격담도 짠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의 영화를 현재까지 유지할 능력이 안된다면 공연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저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건데..
하지만 현실에서 뮤지션이란 본디 전성기가 있고,
그 후에 초라해지고 싶지 않으면 요절(혹은 미스테리어스한 죽음)을 택하거나
갑작스런 기자회견과 해체를 감행해야 한다
그리고 잘 쌓아올린 공든 탑을 오랜만의 재결합 따위로 무너뜨리지 말 것
음악의 역사의 흐름과 함께 꾸준히 다져진 관행이니 지키는 편이 좋다
hide는 최고의 전설이 되었지만 혼자 남은 yoshiki는 억지로 애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잖아
<양철북>에 나오는 소년 마냥 그는 무엇을 위해 북을 두드리는 걸까
26 October, 2011
veinte y seis de octubre
chloe's most lovely spots in madrid 리스트에 한 곳 더 추가하련다
"cacao sampaka"라고 하는 chocolatería
평소에는 갈 일이 없는 alonso martinez역 바로 뒤에 있는 유명(?)한 초콜렛 전문점
두바이나 오사카에도 지점이 있다고 하길래 한껏 기대하고 찾아가봤다
사실 가기 힘든 동네까지 굳이 나섰을 리 없지 않나
지난 한 달 반 동안 군말 없이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잘 돌아다니긴 했지만
사실 나는 대중 교통 타는 게 너무 너무 싫다 ㅠ.ㅠ
특히나 볼 일을 다 보고 오후 시간 콩나물 버스에 끼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건...
오늘은 n.i.e.를 받으러 무려 aluche라는 남서쪽 동네까지 억지로 가야 했기 때문에
지하철 5호선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cacao sampaka에 들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오빠랑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해서 마음도 통키 통키!
n.i.e. 받은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자면
aluche 메트로 역에서 가까운 노란 건물(정확히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에
도착해보니 한 눈에 '중남미 이민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역에서 건물로 향하는 길 내내 내용을 알 수 없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삐끼들도 많았다
tarjeta de estudiante를 받으러 왔을 뿐인 우리는 이민자 집단과는 다른 통로로
건물에 들어가 5분도 안 되어 카드를 찾아 올 수 있었으니까
분위기가 스산하고 껄끄럽긴 해도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다만 앞으로 매년 n.i.e.를 갱신 할 때 마다 이 곳을 찾아와야 한다니
역시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건 그다지 환영받을 만한 일은 아닌가 보다
어쨌거나 고대하던 카드를 손에 쥐고 목적지에 도착
다크 초콜렛 컬러로 통일한 모던한 디자인의 간판과 인테리어
샵과 까페가 분리되어 있는데
샵에서는 초콜렛 뿐만 아니라 달콤한 술(샴페인, PX 쉐리, 소테른 귀부 와인 등등)도 팔고
초콜렛이랑 짝이 되는 다양한 종류의 티와 커피도 준비되어 있었다
카페 메뉴는 단촐한 편
choco caliente, choco frío, 커피, 젤라또, booze, 간단한 음식
아주 thick하고 질감이 풍부한 핫초콜렛을 기대하며 choco caliente tradicional을 주문!
몇가지 종류가 있었지만 점원은 tradicional이 가장 달다고 말해줬다
(초콜렛 전문점에 와서까지 cafe con leche를 시키는 오빠는 무엇인가..)
cacao 함량이 45% 라고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딱 봐도 아주 거무튀튀한 색에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thick! thick!을 외쳤는데 다행히 같이 나온 cucharita로 떠먹어야 할 정도의 농도 ♥
마드리드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핫초콜렛이라고 하면
i) 멀미 날 정도로 기름기가 많거나 ii) 그저 cola cao를 탄 초코우유가 전부였는데
마른 땅에 단 비를 내려주셔서 누군지 몰라도 무척 감사 ㅎㅎ
25 October, 2011
veinte y cinco de octubre
썩 괜찮은 쇼핑 스팟이 없다고 단정 짓고 있었는데
오늘 c/ coello에 있는 isolée에 다녀오고 나서 마드리드를 좀 더 사랑하기로 했다
사실 이 곳은 나중에 natura bissé를 사기 위해서 찾아놓은 가게였는데
오늘 alex언니와 시내 쇼핑을 나갔다가 본격적으로 둘러봤다
"www.isolee.com"
moda shopping 안에 있는 지점은 작아서 그런지 화장품만 취급했지만
여긴 화장품, 옷, 식료품에 생활 소품까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정말 빠지지 않고 다 모아 놓은 게 아닌가
lékué의 실리콘 제품들, 귀여운 bodum과 the laundress new york
de cecco의 파스타와 harney and sons의 홍차 세트
aēsop, natura bissé 몽땅이랑 diptyque와 memo의 부내나는 향초와 퍼퓸
특히나 aēsop은 한국이랑 가격이 비슷해서 다음 화장품 라인은 이걸로 결정했다
(비싼 natura bissé 따윈 집어 치워 ㅋㅋㅋ)
벼르고 있던 tam dao를 시향해보고 - 아 근데 내 취향은 아니네
의류 섹션도 둘러봤는데 오빠에게 꼭 사주고 싶은 너무 예쁜 스니커즈 발견 ♥
점원들도 친절하고 분위기도 편안해서 실컷 구경하다가 나왔다
다른 사람에겐 일러주지 않고 꼭꼭 숨겨뒀다가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은 전부 여기서 해결하면 될 것 같다
아 그리고 bimba y lola에서 다인이에게 보낼 pendant necklace를 하나 샀는데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나는 도저히 좋아할 디자인이 아니지만 그녀에겐 어울릴 듯)
스페인에서 사서 보낼 만한 게 정말 없어서 - 올리브 오일을 보낼 순 없잖아?!
그나마 bimba나 uterqüe의 악세사리는 희소성도 있고 부피도 작으니까
선물로 보내기엔 좋은 아이디어다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우체국에 갈 생각을 하니 귀차니즘이 ㅠ.ㅠ
산마니의 생일 선물도 찾아봐야 하는데, 당장 더 급한 숙제가 하나 생겼다
tokyo 사는 dobek에게 <어린 왕자> 보내주기
castellano와 catalán, 가능하면 euskera 버전까지
그는 언젠가부터 이 재미없는 철학서의 각 나라 출판본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구했는지 신기할 정도의 아프리카 출신들도 가지고 있으면서
막상 스페인 판이 없더라고
오래 전이지만 신세 진 일도 있고 하니 선물로 보내줘야지
24 October, 2011
veinte y cuatro de octubre
A&J 언니들과 함께 a-1도로 변에 있는 carrefour planet에 가서 장을 봤다
주말 내내 양파, 우유, 과일 따위가 똑 떨어져서 텅텅 빈 냉장고를 보며 한숨을 쉬었는데
언니네 차를 타고 나가는 김에 많이 사야겠다는 생각에 카트까지 끌고 출정
평소에 잘 사지 않는 디저트랑 처음 사 보는 문어, 송어, 홍합 따위도 잔뜩 쟁여 왔다
kaki라고 적힌 커다란 단감도 괜찮아 보이는 걸 몇 개 골라왔다
송어는 버터 바르고 마늘 올려서 화이트 와인 뿌려가며 구우면 되겠지만
혹시 더 화끈한 레시피가 있을까 싶어서 네이버 검색 go go-
마침 스페인에서 어학 연수 중인 아가씨가 올린 레시피가 검색 결과 첫 줄에 떠오른다
바야돌릿이거나 그라나다에 살고 있는 것 같으니 나랑 마주칠 일은 없겠구나
돌아오는 길 alex언니와의 대화 중에
A언니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는 근처에 사는 한국 사람이
alex언니로부터 유아용품을 얻어갔던, ikea에서 카트 바꿔치기를 당한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법관 연수로 왔다고 했으니 한국에 계신 mo family와 아는 사이 일지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드리드 도착 후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어
두뇌 속 인간 관계를 관장하는 뉴런에 과부하가 걸렸다
한국 사람이랍시고 끈끈한 정을 유지하고 상부 상조, 또는 무조건적인 베품을 행하는
분위기라면 학을 떼고 싫어하는 나의 치졸한 개인주의에 위협을 느낀다
그렇지만 마드리드의 한국인 사회는 너무 좁고
나 역시 한 해, 두 해 살다 보면 싫어도 아는 사람이 더 늘어 가겠지
안락한 우리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주말 내내 사람에게 시달려서 신경이 예민해졌나보다
조용한 휴식을 가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초콜렛 무스를 떠 먹으며 침대에 엎드려
<그 후에>를 마저 읽었다
팔꿈치와 어깨가 아파질 때 까지 꼼짝 않고 책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득 방이 어두워진 것 같아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니 언제 비가 왔는지 땅이 젖어 있다
오전에는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점심 나절에는 파란 하늘에 해가 났었는데..
어느새 다시 추적 추적 비가 내린다
오빠는 우산을 가지고 갔으니 괜찮을 거고, 귀가 시간에 맞춰서 난방을 켜야지
난방을 켜지 않으면 수면 양말을 신어도 발이 시렵다
저녁 메뉴는 trucha(송어) 구이
머리, 지느러미와 내장을 제거한 송어를 반을 갈라 호일을 깐 쿠키롤 팬에 놓고
민물 고기인 만큼 비린내가 심할테니 화이트 와인을 골고루 뿌려야 좋다
감자, 양파, 파프리카, 아스파라거스를 굵직하게 썰어 마구 섞어 올린다
EEVO도 넉넉하게 갖은 허브도 넉넉하게 뿌리고
송어 살에는 녹인 버터를 듬뿍 바른 뒤 소금을 뿌리고 마늘 슬라이스를 얹어 준다
20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20분, broil로 10분 더 구우면 끝
심플하면서도 다이나믹한 요리
나는 손이 너무 많이 가면서 먹을 건 없는 치장만 요란한 요리 보다는
모양새도 푸짐하고 버리는 부분 없이 다 먹을 수 있는 신나는 요리가 좋다
민물 송어의 비릿한 흙내음이 어린 시절을 불러왔다
낚시로 잡은 무지개 송어를 손질하던 아빠의 어깨 너머로 배웠는지
오늘 송어를 손질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역시 뭐든 많이 알아두는 편이 좋다 :D)
내일은 집에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오늘의 송어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다
23 October, 2011
veinte y tres de octubre
어젯밤 guillaume musso(기욤 뮈소)의 <그 후에>를 읽다가 잤다
삼십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졸려 자버렸지만, 사건의 배경이 뉴욕 맨해튼이라는 게 좋았다
5th ave와 52nd st의 교차점이나, park ave 를 가로 막은 메트라이프 빌딩을 싸고 돌며
컨베이어 벨트가 돌 듯 로어맨해튼으로 내려가는 차량 행렬
32nd st에서 내린다고 하자 "아 ESB에 가는 모양이네"라고 딱 찝어 맞출 수도 있고
오랜만에 뉴욕을 떠올리며 즐거웠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퀸즈 사는 diane이 결혼을 할 때? 우리는 안 불러 줄텐데
경진이가 뉴욕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오게 되면 졸업식에나? 그런데 뭐 합격을 해야;;;)
맨해튼과 퀸즈 구석 구석을 아이폰도 없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데에는
어쨌거나 뉴욕과 차로 2시간 거리, 필리에 감사해야 하는 모양이다
앗 오늘, 마드리드의 첫 비 ♥
며칠 전 예보부터 비가 온다고 되어 있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헌터부츠를 꺼내 보았다
3개월 동안 관리를 안 했더니 표면이 전부 하얗게 일어났어 ㅠ_ㅠ
당장 오늘 신을 지도 모르니까.. 라며 buffing spray를 가져다가 반짝 반짝 광을 냈다
그런데 정말 비가 오다니!!!
(비 오는 날씨는 정말 싫어하지만 오랫만에 헌터는 신고 싶고..)
하지만 비는 5분 만에 그쳐버렸다
22 October, 2011
veinte y dos de octubre
어젯밤 늦게 -정확히는 오늘 새벽 2시- 집에 돌아와보니 새로운 책장이 눈에 띄었다
ikea에 갔던 오빠가 사온, 개당 18유로 짜리 날씬한 책장
미국집에 ikea expedit 라인의 5x5 사이즈 대형 책장을 버려두고 오는 바람에
이삿짐이 도착하고 나서도 책장이 없으니 책 정리를 할 수가 없어 7~8개에 달하는
책 상자들을 그대로 공부방에 쌓아두는 수 밖에 없었다
(공부방 '구석'에 쌓아놨다고 쓰고 싶지만 상자를 쌓고 보니 방 절반을 차지)
차가 없으니 ikea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고
habitat이나 el corte inglés(nuevos ministerios 지점) 가구 섹션을 다 돌아다녀봐도
예쁘면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적절한 가격이면 디자인이 ikea와 별 차이가 없는
뻔하디 뻔한 상황에 치여 내내 책장을 구입하지 못했더니
결국 정신 사나운 공부방 상태를 견디다 못한 오빠가 직접 나서고 말더라는 것 ♥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나 역시 커다란 책장에 책을 잔뜩 갖고 싶다는 로망이 있기는 하다
다만 가구점 카탈로그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간지가 묻어나려면 책장도 책장이지만
꽂아두는 책 역시 디자인과 배열을 신중하게 고려해서 구비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전집이 효과가 좋다)
조그마한 싸구려 책장 -베이스가 좁아서 흔들흔들 한다 ㅎㅎ- 두 개를 들여놨을 뿐인데
책을 이리 꽂았다가 저리 옮겼다가 새로 한 칸을 들어내고 다른 책으로 채워보고
한참을 고민하면서 조금 더 나은 배열을 찾았지만,
어떻게 해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예쁜 모양새가 나오질 않는다
아무래도 이런 정도로 '서재의 로망'을 실현한다는 건 가당치도 않을 테니까...
21 October, 2011
veinte y uno de octubre
요즘 아침이나 점심 메뉴로 pan con tomate를 애용하고 있는데
매번 토마토를 으깨는 게 귀찮으니 놔두고 먹을 요량으로 퓨레를 잔뜩 만들어 버렸다 ♥
며칠 전에 사온 토마토가 껍질이 좀 두꺼운 종이라 손으로 으깨기 어렵길래
푸드프로세서를 써서 갈아버리고 나머지 재료 넣어서 완성
(너무 오래 갈아서 죽이 되어 버렸지만 ㅠ)
paleta ibérico 남은 걸 쪽쪽 찢어 올리니까 만족감 두 배!
오늘 밤엔 거의 한 달 전부터 계획하던 ladies' night out이 있는 날이다
오랜만에 차려 입고(?) 나가는 일이나 뭘 입을까 틈틈히 고민을 해놨었는데
고민을 해봤자 사실 차려 입을 만한 옷이 없다보니 답이 안 나온다
더군다나 요 며칠 사이 날씨가 너무 추워져버려서
맨발에 힐을 신고 나가면 발등이 얼어붙고 피부가 갈라지는 꼴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바람막이 삼아 두르려고 LV의 커다란 숄을 꺼냈는데
3개월 동안 이삿짐 구석에 끼어 있느라 구깃구깃해져 당장 다림질이 필요했다
(실크인데다가 크기도 너무 커서 다리느라 무지 고생 ㅠ)
오빠가 늦은 밤에 배고플지도 몰라 beef stew를 끓이고 새로 밥도 짓고
그 사이사이 화장 하고 드라이 하고 옷 꺼내 입어 보고
이렇게까지 했는데 오늘 가는 레스토랑이 별로거나 입고 간 옷이 마음에 안 들면
완전 우울해질텐데...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지요
...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

astrid y gastón
페루가 낳은 가장 유명한 셰프인 gastón acurio가 이름을 걸고 만든 레스토랑
물론 메뉴는 peruvian이지만 상당히 현대화되고 퓨전에 가깝다
레스토랑 내부 인테리어는 깨끗하기만 할 뿐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입구 한 편으로 있는 waiting bar는 작지만 모던하고 조명을 잘 쓴 것 같았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물이 -sparkling을 따로 주문하지 않는다면- solán de cabras라서
그 부분에서부터 합격점!
(혹시 solán 물통에 탭워터를 채워뒀을까 잠깐 의심했지만 물맛은 옳았다 ㅎㅎ)
6명이 cava 한 병, 애피타이저 3, 메인 6(각각), 디저트 3 종류를 주문
메뉴 하나하나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welcome dish : 크림치즈가 들어간 캘리포니아 롤
쌀이 쫀득 쫀득한 게 찰밥에 가깝고 겉에는 깨가 발라져 있었다
causas clásicas : 매쉬드 포테이토로 만든 타워에 참치살과 달걀 조각, 소스로 모양을 냈다
감자는 약간 신맛이 나고 소스와 참치와의 궁합이 좋다
한 접시를 시켰더니 3 unidades라고 친절히 일러주길래 곧장 한 접시 추가 ㅎ
cebiche clásico : 페루식 회무침
코리앤더+레몬 드레싱에 흰살 생선살(회!)과 각종 해물을 섞은 것인데
생선살이 탄력있고 고소한데다 상큼한 드레싱이 식욕을 마구 자극
anticuchos : 꼬치구이, 보기엔 무난해 보였지만 무려 소 염통! 소 심장!
saltado de otoño : see bass를 구워서 quinoa를 뭉친 크러스트에 얹은 요리
lomo saltado : 바싹 구워진 스테이크를 생각했는데 야채와 함께 끓인 스튜 스타일이었다
alex 언니의 주문으로 많이 익혀 나왔지만(hecha bien) medium 정도?
고기가 부드럽고 소스도 좋았는데 배불러서 야채는 손도 못 댔다
asado de tira : beef rib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한국의 찜갈비와 일맥 상통
고기 밑에 깐 감자가 신기했는데, 얇게 저며서 레이어처럼 층층이 쌓았다
버터향이 많이 나고 각 층끼리 딱 붙어있던데 어떻게 요리한거지?
ají de ganilla : 아랍 돋는 닭고기 요리 (그냥 닭고기 커리)
밥이랑 같이 나오는데, 분명 길쭉한 쌀인데 찰지고 끈끈한게 대체 뭔지...
(J언니가 먹은 돼지고기 요리는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페루 음식이라는 걸 처음 먹기도 했지만, 낯선 식재료가 많아서 이것 저것 신기해하며
식사를 하느라 사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옥수수알은 엄지 손톱 만큼 컸고 바나나도 고구마도 아닌 맛을 내는 것도 있었고
여기에도 quinoa, 저기에도 quinoa
뭐 먹고 왔냐고 묻는다면 "김밥, 회무침, 꼬치구이, 갈비찜에 밥 먹었어"라고 할 만큼
한국 음식과 일맥상통한 점이 많다
그리고 이 집이 postre를 정말 잘 하더라고
다른 사람에게 여길 추천한다면 디저트 메뉴 하나쯤은 꼭 시켜보라고 해야지
19 October, 2011
diez y nueve de octubre
18일 어제는 축구 경기를 보러 다녀왔다
물론, 당연히, estadio santiago bernabeú에서 열리는 real madrid의 경기
champs 조별리그, 홈으로 olympique lyonnais가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la liga 경기 중 인기 없는 팀과의 대전이나 champs 초반의 조별리그 경기라야
표값이 싼 편이다 - affordable한 가격이라고나 할까
... 총알이 넉넉하다면 왜 el clásico를 못 보겠어
TV로 축구 보는 걸 썩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특히 한국 축구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신기하게도 유럽 축구에 대해서는 꽤° 아는 편이다
어떻게 아는 걸까... 게임?
(° 꽤는 '보편적인' 한국 여성이 가진 축구에 대한 지식의 평균 이상이라는 얘기)
그리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시리 마음을 주는 팀은
barcelona, manchester united, bayern münchen, inter milan
좋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르샤는 잘 해서, 맨유는 가봤으니까, 뮌헨은 옷이 예뻐서, 인테르는 피렐리 ♥
축구 매니아들이 보기엔 얼토당토 않겠지만
원래 호감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꽃 피는 법이다
호감형 리스트에 real madrid가 없다
바르샤가 좋다고 하면서 레알도 좋아요 라고 하기 어렵거니와
유니폼에 박힌 스폰서 bwin의 무식한 로고가 심한 시각적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맨유 스폰서가 더이상 vodafone이 아니라는 사실이
맨유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을 좀먹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마드리드 이주를 계기로 좀 더 연고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축구를 사랑하는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kaká의 이름을 새긴 공식 져지도 구입했다
사실 연고팀이 별 볼 일 없는 팀이었다면 과연 응원할 수 있었을까?
연고팀이 real betis라면 과연 누가 나를 부러워할까?
그런 만큼, real madrid인 만큼, 무조건적인 응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여름 한 술자리에서 아이폰으로 찍은 citizens bank stadium(phillies 전용 구장)
사진을 꺼내 자랑 한 적이 있었다
축구 못지 않게 야구도 좋아하는 G사장과 S집사는 그 작은 사진 한 장에 감동해서
곧 santiago bernabeú에까지 입성할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사실 다른 이들의 부러움은 그다지 대수로운 건 아니지만
가끔은 오랜 떠돌이 생활에 부스터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경기 관람 소감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미치도록 재미나고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지는 감동이 있었다
85,000명이 가득 들어찬 푸른 빛깔의 대형 구장
짧게 깎인 파란 잔디에 깔린 거대한 champs 로고
각각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을 등에 새긴 깨알같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가장 저렴한 좌석에는 '내려다본다'라는 동사가 적합하다)
"드디어 왔다"라는 성취감에 도취되었지만
시작 휘슬과 종료 휘슬 사이의 100분 남짓한 시간은
우와아 아아 앜 꺄아아아 우우우 아후 와아 하악하악 에이 으아아아아
의 메아리만 남기고 공기 중에 분해되어 버렸다
경기를 보는 내내 자잘한 이야깃거리 하나 하나까지 다 기록해야지 라고 다짐했는데도
경기장을 떠나는 사이에 두리뭉실한 감동과 흥분만 남아버려서
무언가 자세히 적고 싶어도 적을 거리가 없다
엄청나게 좋은 공연이나 장면을 보고 '할 말을 잃는다'라는 게 이런 걸까
18 October, 2011
diez y ocho de octubre
이웃 언니들 -A여사와 J여사- 을 따라 처음 가보는 마트에 다녀왔다
이름은 mercadona
스페인어로 시장을 mercado라고 한다
그러므로 무의미한 어미 변형을 한 mercadona는 '마트'나 별 반 다를 게 없다
5분에 한 번씩 "mer-ca-do-o-na, merca-dona-a"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내 귀에는 "마트으 마아트으~"로 들린다
미국보다 규모도 적고 물품의 가짓수도 적지만
구석 구석에 진동하는 jamón 냄새 때문에 나는 스페인의 마트를 좋아하게 됐다
jamón과 salchichón, chorizo 등을 파는 코너를 지날 때 마다
콤콤하고 짭짜름한 냄새가 두텁게 깔리면서 콧속을 마구 자극하는데
주렁 주렁 줄지어 매달린 수백 마리 돼지 뒷다리들의 시각적 자극까지 더해져
왠지 오늘 하몽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라고 세뇌가 된다
물론 마트를 나오는 장바구니에 한 팩 정도 담겨 있게 마련이다
쉬운 내용도 어렵게 쓰기 으뜸인 알랭 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 중에
학회 참석 차 마드리드를 여행 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몇 장 읽다 말고 묵혀 두었던 것인데
여기 와서 너무 심심한 나머지 이틀 만에 다 읽어 버렸다)
... 호텔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 주변에 식당들이 있었지만
소심한 나는 나무 널을 댄 어두컴컴한 식당에 혼자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식당에는 천장에 햄까지 대롱 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런 식당에 들어가려면 호기심과 연민의 대상이 될 위험을 각오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호텔 방 냉장고에 들어 있는 파프리카 맛이 나는 감자 칩 한 봉을 먹고
위성 방송의 뉴스를 본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
이 곳의 마트나 바, 레스토랑에 거대한 돼지 뒷다리들이 삭은 기름을 떨구며
벽이나 나무 서까래에 박쥐 떼 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풍경은 가히 스페인적이다
거칠고 물론 예쁘지 않고
(jamón 특유의) 칙칙한 색감에
그 앞에는 밍밍한 café con leche를, 또는 작은 mahou 맥주잔을 앞에 둔 노인이
삐걱대는 철제 스툴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것이다
예민하고 섬세한 보통씨에게는 두려운 자극이겠지
마트에 진열된 jamón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는데
처음에는 등급이나 분류법도 잘 모르고 관련 단어의 뜻도 잘 모르다보니
슬라이스 한 팩을 사기 위해 코너를 수십 번 맴돌면서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이제는 de bellota(도토리)가 표기되어 있으면 상급이구나 하고
paleta는 정식 jamón이 아닌 앞다리로 만든 생햄
jamón serrano는 이베리코 흑돼지가 아닌 평범한 흰돼지...
더듬 더듬 라벨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jamón을 고르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이렇게 사 온 jamón은 그냥 손가락으로 죽죽 찢어 먹어도 맛있지만
지방이 적어 빳빳한 부분은 EEVO를 뿌려주거나
가위로 잘게 썰어 EEVO와 perejil(파슬리)에 살짝 버무려 토스트 위에 얹어도 좋다
참, 염분이니 콜레스테롤이니 하는 건 귀찮으니 따지지 말자고
17 October, 2011
diez y siete de octubre
이 곳에서의 아침은 미국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미국 살던 시절엔 늘 10~11시 까지 늦잠을 자는 편이었는데
9시 부터 들려오는 잔디 깎는 소리에 잠을 방해받기 일쑤,
잔디 깎는 소리 뿐 만 아니라 흙이 섞인 풀내음과 먼지를 함께 흩뿌리기 때문에
싫어도 몸을 일으켜세워 온 집안을 돌며 창문을 닫아야 했다
(물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 썼지만 ㅎㅎ)
san luis 25번지는 잡지사 또는 케이블 방송을 제작하는 회사인 것 같다
업의 특성 상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아 아침이고 밤이고
끊임 없이 차가 드나들고 걸어서 통근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침 해는 8시가 지나야 스물 스물 올라오지만
회사 정문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도로는 출근자들을 위해 불을 환히 밝히기 때문에
커튼도 없고 persiana가 고장나 침실 창문을 가리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그 불빛이 번거롭다
시끄럽다 싶을 정도의 새 울음소리에 풀내음이 진동을 하던 그 곳과
밤새 자동차 전조등 불빛으로 검은 벽이 순간 순간 환하게 빛나는 이 곳의 거리감은
도시 여행을 떠난 시골쥐가 낯선 호텔에서 잠을 청할 때의 기분이 들게 한다
16 October, 2011
diez y seis de octubre
일요일이니 만큼 느지막히 일어나고 싶었지만
(고장난 persiana가 막아주지 못하는) 강렬한 아침 태양빛으로 9시 반쯤 눈을 떴다
하루를 여는 집청소를 해치우고 샤워를 한 뒤
아침 식사로 pan con tomate와 potato rösti를 요리하고 오렌지주스를 마셨다
이 곳의 대표적인 아침 메뉴인 pan con tomate(토마토 빵)를 만드는 건 간단하다
까끌거리는 바게뜨나 프렌치롤 슬라이스를 바싹 굽고
생마늘을 손으로 집어 빵에 가볍게 문지른다
생토마토의 껍질과 가운데 심지를 분리하고 대강 대강 으깨서
EEVO를 뿌리고 가볍게 소금이랑 허브를 치고
쓱싹쓱싹 섞어서 마늘을 문지른 빵 위에 올리면 완성
마늘, 올리브 오일, 토마토
간단한 조리법, 예쁘지 않은 모양새
어느새 상당히 "spainized"한 우리의 일상에서 마늘과 올리브 오일 냄새가 난다
오늘로 마드리드에 도착한 지 꼭 한 달 하고 열흘이 되었다
인간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를 감탄하기 보다는
분위기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강력한 관성의 힘에 놀란다
españa, madrid, hortaleza, pinar del rey, avenida san luis 27번지
구름 한 점 없는 마드리드 하늘 아래 유럽식 구조를 가진 아파트에 앉아 있지만
손때 묻은 2009년식 imac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는
이 공간이 서울 도곡동의 어디라도, 미국 필라델피아 근교 마을이라도,
설사 바깥 세상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북알래스카라도 괘념치 않을 것이다
다른 언어가 들려오지 않는 이 고요함이 유지되는 한
내가 있는 곳은 나라와 대륙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일정할 수 있다
빵에 문지른 마늘이 좀 매웠는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입 안이 얼얼하다
다인이에게서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라는 에세이집을 샀다는
메세지를 받았을 때 나는 스페인어 공부 중이었다
(스페인에 있으나 스페인에 있는 줄 모르겠다고 적은 건 내가 맞지만,
짬 나는 대로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건 나의 생존 본능이다)
antoni gaudi의 고향
투우의 고장
온 천지에 올리브가 자라는 땅
태양과 정열의 이베리아 반도
나를 알기 위해 800km를 걷는다는 camino de santiago가 있는 나라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전부 스페인에서 살다니 부럽다 라고 하는 이 나라
나는 아직 스페인이 좋다거나 싫다고 말 할 수 없다
여전히 버스를 타고 닿을 수 있는 거리 내에서만 돌아다니고
미국 물건으로 가득찬 집에 들어와서 한국 브랜드 라면을 먹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생활은 어때? 라던가 미국이 좋아, 스페인이 좋아? 라던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또는 그저 그런 인사치레인 이런 물음에는
정말 좋아
아주 잘 살고 있어
porque todavía no conozco españa
그리고 다인이는
내년 즈음 나를 만나러 온다며 무작정 여행 에세이집을 사고 꿈에 젖었다
"누군가 스페인에 대해 안좋게 말한다면, 그건 스페인 사람이다"
꿈을 꾸는 친구를 위해
다른 이들의 꿈을 대신 충족시켜주기 위해
나는 항상 좋은 이야기를 하고 항상 잘 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업로드 한다
하기야,
내가 사는 공간이 항상 일정하게 행복 할 수 있다면
그 곳이 마드리드인지 필라델피아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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