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November, 2011

quince de noviembre




요즘 블로긩에 맛들인 옛 친구 Z양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녀는 내 주위에서 큰 가슴 best 5 안에 들기도 하지만 촌스러운 얼굴로는 no. 1 이다
어쩜 저렇게 촌빨 날릴 수 있는지, 볼 때 마다 감탄스럽다
10년 째 고수하는 바가지 머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광대뼈에 내려앉은 자잘한 주근깨,
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촌년병(=빨간 볼때기), 길게 찢어진 외꺼풀 눈
가슴은 크지만 어깨가 좁고 머리는 큰데 키가 작다
항상 깊은 팔자 주름을 만들며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그녀
그런 큰 웃음을 지으면 광대뼈도 덜 보이고 외꺼풀도 가려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서울에서 산 지 벌써 7~8년이 되어가는데도 그녀에겐 도회적인 구석이 없다
여전히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나마 충청도 태생이라 서울말을 자연스럽게 잘 해서 다행이지만)

Z양의 패션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빈티지'
문제는 외모 때문인지 chloe sevigny와 같은 삘이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 끝부터 얼굴을 타고 내려가 발 끝까지 그냥 구제 가게에서 주워 온 아이처럼 보인다는 것
물론 그녀에게 3.1 phillip lim을 입힌다면 어울릴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좀 더 쿨한 옷을 입는다면 -땡땡이 초록 타이즈 말고!- 더 예뻐 보이지 않을까

그러나 Z양은 돈이 없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았던 2003년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항상 돈이 없다
가방끈이 짧아서 페이가 높은 일자리는 구할 수가 없다
상경한 고졸 처녀일 때는 한 사진관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고, 전문대 사진과를 졸업한 지금은
홍대의 오랜 인맥에 기대어 근근히 일을 따내는 것 같다
그녀를 보러 사진관에 놀러가면 우리는 쟁반짜장을 하나 시켜서 나누어 먹곤 했다
슬프고 괴로운 일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월 20만원으로 얹혀 살던 친구네 집에서 쫒겨난 후 이사 한 옥탑방에는 도둑이 들고
유일하게 사치하던 화장품 파우치는 잃어버리는 게 연중 행사
밥벌이 도구인 카메라가 고장나 월급에 맞먹는 견적이 나오고
5년 째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 J씨는 음악 밖에 모르는 착하지만 무능한 남자
그의 부친이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셔서 집안이 한참 기울었기 때문에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즐거워 보인다
여전히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을 수 있고, 많은 사람이 머리에 피가 말라 홍대 바닥을 떠나도
꿋꿋이 공연장을 지키고 꾸이골목에서 뒷풀이 사진을 찍으며 즐겁게 살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쟁반짜장 하나를 나눠 먹던 우리는 이제 너무 다른 길을 걷는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지난 여름 pentaport festival의 뻘밭
오랜만에 만나도 스스럼없이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Z는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앞으로 우리가 마주 앉아 오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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