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November, 2011

veinte y cinco de noviembre




우리집은 쾌적하다
신나게 외출했다가도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집에 왔다'라는 안도감, 아니 기쁨(!)이 솟구친다
항상 24.5도를 유지하는 우리집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reed diffuser의 은은한 향기만 맴돌 뿐 음식 냄새나 먼지 냄새도 나지 않는다
매일 쓸고 닦는 마룻바닥은 뽀얗고 보송보송하며 가구 위의 먼지도 늘 말끔히 치워져 있다
침실은 좁지만 정돈이 잘 되어 있고 큰 창문으로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ipod docking speaker로 기분에 맞는 음악을 틀어놓고 읽을 만한 책도 책장에 한가득
요리를 하고 나면 즉시 청소를 하기 때문에 부엌에도 기름 튄 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냉장고와 (창고로 쓰는) 다용도실에는 항상 맥주와 와인, 안주가 떨어지지 않고
illy 커피 캡슐이나 tea 종류도 다양하게 구비해놓았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맛있는 커피와 과자를 예쁜 그릇에 즐길 수 있어서 좋은 우리집

60년이나 나이를 먹은 벌레가 나오는 목조 아파트에서 살다 온 우리와
한국의 최신식 새 아파트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가지는 기대치는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다
나에게는 충분히 넓은 이 아파트 부엌도 J양에게는 좁고 답답할 뿐이다
개인 세탁기 없이 2년이나 지낸 나에게 다용도실에 딸린 세탁기와 건조기는 은혜롭다
브랜드가 무엇인지, 세탁기 용량이 너무 작은 게 아닌지 고민해본 적 조차 없다
세탁만 잘 되면 되지 않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무거운 세탁 바구니를 들고 지하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했었단 말이다
아파트 주차장이 어둡고 좁다고 싫다는 고귀한 분도 계시던데,
엘리베이터 타고 곧바로 내려 갈 수 있는 지하주차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cctv가 24시간 감시하는 한국의 아파트 주차장에만 익숙한 사람은 모른다



미국에서 우리가 살던 아파트가 얼마나 열악했는지 돌아보면 눈에서 땀이 흐른다
사실 당시에는 잘 몰랐다
컨디션은 병맛이었지만 렌트는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아파트라도 더 다를 것 같지 않았고
세탁 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비 새는 천장 아래 바께쓰를 놓아두는 생활도 은근 재미있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에서 오는 막연한 설레임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재미야 몇 달 가지 못하고 신세 한탄으로 변질되었지만..)
나도 한국에서는 최신 시설로 무장한 좋은 아파트에 살았다
그리고 그 때는 그게 얼마나 편하고 소중한 것인지 미처 몰랐던거지
세상에는 다람쥐가 벽을 긁어 부수고 부엌 찬장에 생쥐가 뛰어다니며 마루 밑에 실버피쉬가 사는
납성분이 함유된 페인트로 칠해진 천장 여기 저기서 물이 새는 집도 있더라
70s 스타일의 가스레인지에선 항상 미량의 가스가 새고
부엌에는 환풍기나 환풍구가 없어 음식 연기가 거실로 날아가 소파에 냄새가 밴다
낡은 마룻바닥에 숱하게 구멍이 나 있고 철이 되면 그 안에서 딱정벌레가 올라오는 집
떠나온 지 4개월 정도가 지났구나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픈 안락한 새집에 자리잡고 돌이켜보니 아뜨윽-하게 느껴진다

내일 오전에는 베큠을 돌리고 물걸레질을 한 번 해야겠다
청소를 좋아하는 성격이 결코 아닌데, 집이 하얗고 밝다보니 더러움이 눈에 잘 띄기도 하고
옆집 A언니가 유난히 깔끔한 성격이라 부끄러운 일 없으려고 더 열심히 쓸고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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